53rd 하아지누

הַאֲזִינוּ

귀를 기울이라

파라샤 Deuteronomy (신) 32:1-52

하프타라 2 Samuel (삼하) 22:1-51

브리트 하다샤 Romans (롬) 10:17-11:12, 12:19, 15:9-10 / John (요) 6:2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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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오는 가르침 토라

모세는 언약의 말씀을 모두 기록한 뒤 언약궤를 메는 레위 사람에게 율법책을 언약궤 곁에 두어 증거로 삼으라고 명령합니다(신 31:25-26). 모세는 자기가 살아 있을 때도 거침없이 하나님을 반역한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가 죽은 후에는 더할 것이라 말하며 이스라엘의 장로와 관리들이 모인 총회에서 그들의 부패함을 증거의 노래로 만들어 듣도록 합니다(신 31:28-30). 모세는 증거의 노래를 시작하면서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신 32:1)’라고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며 하아지누의 노래שׁירָת הַאֲזִִינוּ(쉬랕 하아지누)를 시작합니다. 이사야도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선포하기 전에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사 1:2)’고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며 선포합니다. 모세도, 이사야도 백성들을 향해 선포하기 전에 만물을 증인으로 세우고 함께 귀 기울여 들으라고 선포합니다. 이들이 백성들을 향해 들으라고 하기 전에 하늘과 땅을 향해 먼저 들으라고 선포한 이유는 목이 곧고 반역의 질병이 있는 이 백성보다 하나님의 질서 아래 온전히 순종하고 있는 존재가 하늘과 땅,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늘과 땅을 향해 들으라고 선포한 뒤 이 백성이 얼마나 흠이 있고 비뚤어져 있는지에 대해 책망합니다(신 32:5). 이사야도 하늘과 땅을 향해 선포하며 이 백성이 하나님을 거역하여 떠난 것에 대해 책망합니다(사 1:2). 이사야는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의 구유를 아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모르고 깨닫지도 못하고 행위가 부패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떠났다고 말합니다(사 1:3-4). 만물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질서 아래 순종하는데 인간만은 불순종하며 교만하고 부패하여 하나님을 떠납니다. 모든 만물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데 인간만은 듣지 않음에 대해 모세도, 이사야도 탄식합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듣지 못하는 백성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고자 자신이 받은 교훈과 말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를 말하며 하아지누의 노래שׁירָת הַאֲזִִינוּ를 이어갑니다.

내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 내 말은 이슬처럼 맺히나니 연한 풀 위의 가는 비 같고 채소 위의 단비 같도다(신 32:2)

‘내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에서 ‘교훈’이라는 히브리어는 레카아흐לֶֶַקַח인데 이 단어는 ‘취하다, 가져오다’는 의미의 라카아흐לַָקַח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입니다. 하늘에서 폭우 (마타르מָטַר)처럼 떨어져 내리는 가르침(토라)을 받아서 가르치는 것이 레카아흐לֶֶקַח입니다. ‘내리다’는 히브리어는 아라프עַָרַף로 물방울이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표현합니다. 모세는 자신이 받아서 전하는 교훈이 하늘로부터 내려오고 있음을 묘사하기 위해서 나의 레카아흐לֶֶקַח(교훈)는 폭우(마타르מָטַר)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계시가 폭포처럼 모세에게 쏟아부어지고 있는 이미지를 떠오르게 합니다. ‘내 말은 이슬처럼 맺히나니’에서 ‘맺히다’라는 히브리어 나잘נַָזַל은 줄줄 흘러내리는 것을 뜻하여 맑고 깨끗한 이슬이 맺히다가 흘러내리는 것처럼 맑고 깨끗한 계시가 맺히고 흘러내리는 모습을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연한 풀 위의 가는 비 같고’의 ‘가는 비’ 쎄이림שְׂעִירִִם은 비가 머리카락처럼 가늘게 내리는 모습을, ‘채소 위의 단비같이’의 ‘단비’ 레비빔רְבִיִבִים은 두껍게 내리는 무거운 소낙비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표현들은 모세가 말씀의 계시를 받을 때 영적으로 민감하게 감지되는 감각들을 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는 여러가지 비의 이미지로 감각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때로는 지표면의 흙을 쓸어버릴 만큼 내리는 폭우처럼(마타르), 때로는 언제 맺혔는지도 모르게 맺힌 영롱한 이슬 방울이 줄줄이 흘러내리는 것처럼(나잘), 때로는 부드럽고 가벼운 보슬비처럼(쎄이림), 때로는 두툼하고 묵직하게 떨어지는 소나기처럼(레비빔) 모세는 하늘에서 자신의 영으로 내려오는 계시의 말씀들을 받습니다. 비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고,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하늘의 생명의 물이 땅으로 흘러내린 것이 말씀이고, 또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땅으로 내려주신 가르침, 이것이 바로 토라입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비처럼 내리다’는 의미인 야라יָרָה 동사를 어근으로 가지고 있는 토라תורָה는 ‘하늘에서 땅으로 쏘아 내린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비가 내릴 때 땅은 비를 흡수합니다. 영감 있게 가르치는 사역자가 비처럼 하늘로부터 내려온 교훈인 토라를 취하고 받아서 가르칠 때 듣는 이는 이것을 흡수합니다. 가르치는 자가 성령 충만한 만큼 듣는 이도 성령 충만해져서 더 적셔지고 흐르게 됩니다. 전하는 자와 듣는 자 모두가 영감으로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하게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령 충만하게 듣는 것도 중요하게 여겨야 할 부분입니다.

예슈아는 우리의 마음을 밭으로 비유하셨는데 땅에 돌이나 가시덤불처럼 불필요한 것들이 제거되고 땅이 잘 경작되어 있는 만큼 그 땅은 비를 잘 흡수하여 씨앗이 잘 자라게 할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교훈인 토라를 하아지누הַאֲזִִינו, 귀 기울이고 또 기울여 들은 뒤 땅에서 티쉬마תִשְמַע, 듣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흐르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뤄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끊임없이 쉽게 망각하는 자신의 백성을 향해 들으라, 순종하라를 반복적으로 외칩니다. 결국 귀 기울여 듣고 들음으로부터 우리의 믿음이 완성될 것입니다(롬 10:17).

열방의 기쁨

신명기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메시지는 ‘쉐마, 들으라’ 입니다. 귀를 기울여 계속 듣고, 듣게 할 때 꼬인 생각과 뒤틀린 마음과 왜곡된 역사관, 잘못된 입장에 서 있는 세계관과 가치관, 부패하고 패역한 행동으로부터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도 그 조상에게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에 한 일이 백성을 향하여 말씀(드바림דּבָרִים)을 전하고 또 반복하여 듣게 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얼마만큼 자주 자녀들에게 말씀을 듣게 합니까?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서 30분 동안 말씀을 듣는 것으로 우리가 자녀에게 말씀을 잘 전하고 듣게 하고 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세상으로부터 더 많은 것들에 노출되어 듣고 있는 자녀들을 향해 그들이 말씀으로 바른 기준을 확고하게 가지기 전까지 날마다 말씀을 듣게 하는 아비 세대가 되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자녀에게 들려주는 쉐마와 가정 중심으로 보내는 샤밭(안식일)에 말씀으로 하브루타하는 쉐마교육을 통해서 자녀들에게 말씀을 듣게 하였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2천 년 동안 나라없이 이 나라 저 나라 떠돌아다니면서도 믿음의 유산을 지켜올 수 있었고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말하고 듣게 하는 것입니다.

약속의 땅 앞에서 모세가 가르쳐서 부르게 한 이 노래는 이스라엘의 배신과 패역에 대한 예언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신 32:5-26). 그러나 이방인 중에 구원받을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 이스라엘 중에 얼마는 완악한 채로 있게 될 것이지만 이스라엘을 다시 긍휼히 여기시는 때가 이르면(시 102:13)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돌이키시고 이스라엘 백성의 권리를 옹호하시고 그 종들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며 이방 나라들과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즐거워하도록 대적에게는 원수 갚아주시며, 이스라엘 백성은 덮어주실 것입니다. 모세는 신명기 32:27-43에서 이러한 구원 계획 즉, 이방 나라들도 이스라엘 백성도 결국 둘 다 함께 구원받고 즐거워할 것임을 ‘귀를 기울이라’는 쉬랕 하아지누שׁירָת הַאֲזִינו로 노래하였습니다.

내가 그들을 흩어서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에 대한 기억이 끊어지게 하리라 하였으나 혹시 내가 원수를 자극하여 그들의 원수가 잘못 생각할까 걱정하였으니 원수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수단이 높으며 여호와가 이 모든 것을 행함이 아니라할까 염려함이라(신 32:26-27)

참으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권리를 옹호하시고 그 종들을 불쌍히 여기시리니 곧 그들의 무력함과 갇힌 자나 놓인 자가 없음을 보시는 때에로다(신 32:36)

너희 민족들아(고임גויִם, 이방 나라들) 주의 백성과(아모עַַּמו) 즐거워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들에게 복수하시고 자기 땅과 자기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 (신 32:43)

모세의 노래는 이스라엘 백성의 패역과 심판을 담고 있지만(신 32:5-26) 그 결론은 열방과 이스라엘이 함께 하나님을 즐거워할 것이며 하나님이 친히 모든 원수를 갚으시고 백성을 덮어주실 것으로 마무리합니다(신 32:27-43).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열방과 이스라엘이 함께 한 하나님을 섬기며 즐거워하게 될 구속의 역사를 위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오랫동안 패역한 것조차 섭리하셨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한 자들에 의해 통제되고 움직여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주권에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계획하신대로 경영되고 있습니다. 세상 군왕들의 모략은 하나님께는 웃기는 일입니다.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깊고 높은 생각에 대한 바울의 감탄과 탄성은 우리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롬 11:33)

열방의 구원을 위해 넘어진 자가 된 이스라엘

하나님은 이 백성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을 따르는 것을 실패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서도 실패할 것을 아셨지만(신 32:15-34) 그들이 이 노래를 통해 하나님을 기억하고 다시 돌이킬 때 반드시 구원하시겠다는 약속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증거의 노래는 이 백성이 실패할 것이라는 부정적 예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이 이 백성과 늘 함께 하겠다는 약속의 노래입니다. 이 약속은 한 번도 잊혀진 적이 없어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11장에서 유대인을 향한 구원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선포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을 잘 알고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언약의 말씀과 모세의 증거의 노래(쉬랕 하아지누)를 들었고 그 내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말씀, 토라를 들음이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라는 것을 그의 삶을 통해 경험하였기에 잘 알고 있었습니다(롬 10:17). 그러나 또한 바울은 그 말씀을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 얼마만큼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았는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가 듣고 외운 그 말씀대로 신명기 32:21의 모세의 노래를 통해 그들의 패역함이 결국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 자들을 일으키는 기회가 되었음을 상기시킵니다(롬 10:19).

그러나 바울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말하면서도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다 버림받지는 않았음을 강력하게 말합니다(롬 11:2). 하나님이 남겨두신 칠천 명을 말하면서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들을 이야기합니다(롬 11:4-5). 그리고 바울은 확신 있게 선포합니다.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롬 11:12)

맞습니다. 이스라엘의 넘어짐과 실패가 이방인에게 복음의 비밀이 전해지는 기회가 됨으로써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풍성한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물며 이스라엘이 충만하게 되면 얼마나 더 놀라운 축복이 이방인에게 흘러가게 되겠습니까! 이방인의 충만한 수를 위해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해졌습니다(롬 11:25). 그러나 결국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롬 11:26). 왜냐하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제사장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제사장 나라 되어 열방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예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들의 부르심이기 때문에 이 부르심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될 천년왕국의 시대가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서 점진적인 회복의 과정을 이미 시작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롬 11:29, 쉬운 성경)

그래서 우리는 이스라엘(유대인)을 향하여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교만하게 말하거나 교만하게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사도 바울은 꺾여져 나간 원가지들을 얕보며 자만해서는 안 된다고 권면합니다. 오히려 교회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원 가지들이 꺾여 나간 이유는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입니다(롬 11:19, 쉬운 성경)

우리는 접붙임 받은 가지이고 이스라엘(유대인)은 꺾여져 나간 원가지입니다(롬 11:17-18). 우리는 그들이 꺾여져 나간 자리로 접붙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죄악을 향해 달려가는 이스라엘 백성이 원가지였음에도 아끼지 않고 잘라 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교만하고 말씀으로부터 돌아서면 언제든지 동일한 준엄한 심판 가운데 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시며 원가지들이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그들이 돌아서면 언제든지 다시 받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가지인 이들이 예슈아를 통해 참감람나무에게로 돌아와 다시 접붙임 되도록 중보해야 하며 축복하는 마음으로 이들과 함께 서야 합니다. 비록 바울은 자신의 부르심에 따라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지만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향한 뜨거운 마음을 절대 놓치지 않고 교회를 향해 이스라엘을 축복하라고 강력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생각,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과 열방을 향한 이 놀라운 구원 계획을 알고 있던 바울은 그래서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라고 고백합니다.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왔으며 그분을 통해서 존재하고 있으며 다시 그분에게로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그 마지막 자락에 가까이 서 있습니다. 영광이 세세토록 주님께 있을 것입니다(롬 11:36). 아멘.

출처: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적 관점으로 읽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Quoting from Reading the Torah Portion from the Hebrew Perspective in Jerusalem (Gen. Exod. Lev. Num. De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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