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th 붸조트 하브라카

וְזֹאת הַברָכָה

그리고 그 축복은 이러하다

파라샤 Deuteronomy (신) 33:1-34:12

하프타라 Joshua (수) 1:1-18

브리트 하다샤 Revelation (계) 21:9-22:5 / Acts (행)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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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신명기 32장이 흠이 있고 비뚤어져 지혜와 지식(분별)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을 고발하며 시작한 증거의 노래라면 33장은 이스라엘 지파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예언적으로 선포한 축복의 노래입니다. 모세가 각 지파를 향해 하나님의 축복을 예언적으로 선포한 것은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이 열두 아들들을 축복한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모세는 자신의 삶을 마치고 조상들에게로 돌아가기 전에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아버지의 충만한 사랑을 담아 축복하였습니다. 신명기 32장에서는 자녀를 엄하게 훈육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 있다면 33장에서는 자녀를 한없이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신명기 33:1-5절의 이스라엘을 향한 축복의 서문에서 모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셨던 영광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축복을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추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에 강림하셨고 그의 오른손으로부터 그들을 위한 불 같은 법령이 나왔도다(신 33:2)

이 말씀은 모세가 어디서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보았는지를 설명해 주는 장면입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영광스럽게 천사들과 함께 내려오신 여호와께서 머무시던 시나이 산 정상에서 모세는 오순절부터 대속죄일까지 120일 동안 3번의 40일 금식 시간을 보내면서 두 번의 십계명과 율례와 법도, 성막의 식양과 제사법과 절기들에 대한 세부사항들을 전해 받습니다.32 이스라엘 백성은 에돔 지역인 세일 산을 지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싸우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가나안 땅을 향해 올라왔습니다. 광야 생활 42개의 정류지점 중 18번의 지점들이 속해 있었던 바란(파란פָארָן, 영광스럽게 하는 장소, 아름답게 꾸며주는 장소) 광야는 혹독한 훈련의 장이기도 했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은 영광으로 그들을 호위하시며 비추시고 자신의 신부 이스라엘을 단장시켜 주시고, 꾸며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던 광야였습니다.

바로 이 모든 과정 가운데 여수룬(이스라엘의 애칭)과 함께 왕이 계셨는데 그 왕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신 33:5). 이스라엘의 왕 여호와 하나님은 그 백성을 사랑하셨고 모든 거룩한 자들은 그의 발 아래 앉아 말씀들을 받았습니다(신 33:3). 하나님은 모세가 전해준 토라를 이스라엘의 소유로 주셨고 이스라엘의 유업이 되게 하셨습니다(신 33:4; 롬 3:2).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맡겨 주신 토라를 잃어버리는 것은 곧 하나님이 그들에게 소유로 주신 기업(基業) 또는 유업(遺業)과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시는 모든 축복의 기초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임재가 현존하는 지성소의 언약궤 곁에 기록된 토라의 책을 두게 하셨습니다(신 31:26).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나님의 임재가 말씀과 함께 한다는 것을 알게 하셨고 그 임재와 말씀이 자신들의 유업이며 축복이며 보호와 안전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셨습니다. 말씀은 언약 안에 들어온 모든 자들의 유업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축복, 물질적인 축복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흘러 들어옵니다. 그래서 말씀과 축복은 언제나 함께 합니다(시 1:1-2; 119:1-2). 

토라의 말씀을 유업으로 받은 이스라엘의 각 지파를 향해 모세는 다음과 같이 축복하였습니다.

르우벤을 향해서 지파의 인구 감소로 인해 지파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르우벤 지파가 약해지겠지만 죽지는 않고 살아 존재하기를 축복합니다(신 33:6). 르우벤은 장자였지만 아버지의 침상에 오름으로 스스로 더렵혀서 장자권을 잃어버렸습니다. 장자권은 머리가 되는 왕의 직분과,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의 직분과, 두 배의 몫의 땅과 유산을 분배받는 더블 포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르우벤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린 근친상간으로 인하여 머리가 되는 왕의 직분은 유다에게로(창 49:8-10), 장자로서 아버지를 섬기는 제사장의 직분은 레위에게로(신 33:8-10), 두 배의 몫(더블포션)은 요셉에게로 넘겨졌으며 삼중 장자권을 다 넘겨주게 된 르우벤 지파는 세력도 약해져서 간신히 존재하게만 됩니다. 모든 장자는 아버지의 기력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탁월함을 가지지만, 르우벤은 물의 끓음과 같은 단기적인 열정으로 영원한 축복을 놓치게 됩니다. 비록 장자권을 잃어버렸지만 모세는 르우벤 지파가 영원히 존재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노는 잠깐이지만 은총은 영원합니다(시 30:5). 하나님은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합니다.

이스라엘의 진영이 움직일 때 언제나 모든 진영의 가장 앞에서 행하고, 전쟁 때에도 찬송함으로 가장 앞서 행할 유다를 향해서는 탁월한 지도력과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한 축복이 선포됩니다. 모세는 유다(찬송)의 소리를 들어주시고, 유다가 이스라엘 백성을 앞장서게 하시며, 그의 두 손이 크고 강하여져서 그의 대적들을 칠 권세를 더하시고 원수들로부터 유다 지파를 도우시는 주의 도움이 있기를 축복합니다(신 33:7).

모세는 레위에 대해서는 다른 지파에 비해 더 긴 축복을 해줍니다.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가 쓴 칼이 폭력의 도구였다고 말하며(창 34장 세겜의 강간 사건 후 시므온과 레위의 도륙 사건) 그들이 야곱 중에서 나뉘고 흩어질 것이라 예언하였습니다(창 49:5,7). 과연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 땅 가운데서는 기업을 받지 못하고 모든 지파 안으로 나뉘어지고 흩어졌지만 그의 단호하게 잘라 내버리는 성품이 하나님의 편에서 쓰일 때 그는 사람의 인정을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것들을 하나님을 위해 가차없이 잘라버렸습니다. 레위인들은 금송아지 사건 때 모세가 여호와의 편에 설 자들은 나오라고 할 때도 모세 옆에 섰던 자들이었고(출 32:26) 또 레위의 자손 중 비느하스는 미디안 우상숭배 사건 때 족장과 음란한 미디안 여인을 창으로 한 번에 찔러 죽임으로 거룩한 이스라엘 진영 가운데 음란으로 인해 일어난 전염병의 심판을 멈추게 하였습니다(민 25:7-8). 그래서 모세는 부모와 형제들까지도 보지 않고 사람이 아닌 하나님에게만 연합(레위)하였던 레위 지파를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고 언약을 지키는 자라고 높이 평가합니다(신 33:9).

하나님은 사람의 타고난 본성을 잘 다듬어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편에서 하나님을 위해 사용되어 축복이 되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그것이 사람을 향한 하나님이 선한 뜻입니다. 모세는 레위의 불같은 성정이 다른 사람들을 죽일 수도 있는 성질이었지만 그것이 다듬어졌을 때 단호하고 결단력 있는 성품으로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유용하고 충성되게 쓰임 받게 되는 것을 보았고 그러한 레위 지파에게 하나님의 완전함(툼밈תמִים)과 하나님의 빛(우림אוּרִים)이 항상 있기를 축복했습니다(신 33:8). 그리고 하나님의 완전함과 빛으로 이스라엘 지)파들 안으로 흩어져 살면서 율례와 법도, 토라를 가르치고 예배를 드리는 일로 섬기도록 축복하였습니다(신 33:10). 또한 레위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꺾으셔서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해주시기를, 레위 지파의 재산을 풍족케 하시기를 구하였습니다(신 33:11).

야곱의 예언에서 시므온과 레위를 향한 나누임과 흩어짐의 예언은 모세의 축복을 통해 레위에게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으로 아름답게 변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레위를 온 지파로 흩으셔서 각 지파 안에서 이스라엘의 장자로서 하나님을 섬기고 말씀을 가르치는 자로 서게 하셨고 이를 통해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도록 명령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와 말씀 중심의 삶을 살 수 있는 통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입장에 선 자들에게 하나님은 동일한 축복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말씀에 붙어 있는(레위, 연합) 자들에게 말씀을 통해 흐르는 유업과 축복을 모두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반면 시므온과 레위가 똑같이 분노와 혈기로 칼을 잔해하는 기계로써 사용하며 휘두르는 잔인한 성질이33 있었어도 금송아지 숭배자들의 도륙 사건으로 하나님의 입장에서 섰던 레위가 나아간 방향과 그렇지 않았던 시므온이 나아간 방향은 시간이 흐르면서 완전히 다른 결과로서 나타나게 됩니다.

시므온 지파는 모압 평지에서 모세의 축복으로부터 빠졌고 그 이름도 언급이 되지 않는 당황스럽고 난감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모세의 신명기 설교 직전에 싯딤에서 있었던 바알브올 사건 때문입니다. 민수기 25장의 바알브올 음행 사건에서 시므온 지파는 음행과 바알브올 우상숭배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며, 가문의 지도자였던 시므이는 온 회중과 모세의 눈 앞에서 미디안 지도자의 딸(공주)과 음란에 빠져 큰 천막으로 들어갔으나 반면, 비느하스는 여호와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손에 창을 들고 따라 들어가 그들의 배를 꿰뚫었습니다. 이 사건은 두 지파의 극단적인 대조를 보여주는 사건이었고, 이 사건은 얼마 후 모세가 이스라엘 지파들을 축복하면서 시므온 지파를 언급도 하지 않게 된 원인을 제공한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이후 시므온 지파는 축복을 선포하였던 그리심 산에 선 6지파에 속하기도 했지만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가 분배 받은 땅에 둘러싸인 네게브 지역의 몇 도시에 거하게 되었고, 결국은 유다 지파로 흡수 병합되면서 야곱의 예언대로 나뉘어지고 흩어지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서 시므온 지파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말에 12지파로서 다시 회복되어 나타납니다(겔 48:24, 25, 33과 계 7:7).

하나님의 거처인 예루살렘은 원수와 대적자들을 향하여서 물어 뜯는 늑대인 베냐민 지파에게 맡겨졌습니다. 그러한 베냐민에 대해서는 그가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로서 하나님 곁에서 안전함을 누리며 주님의 어깨 사이에 거하면서 여호와께서 온종일 덮어주시고 막아주실 것이라고 축복합니다(신 33:12).

요셉에게는 하늘과 땅의 탁월하고 충만한 보물과 복이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 계셨던 분의 선하고 기쁘신 뜻으로 인하여 요셉의 머리에게 즉, 그 형제들의 나실인(구별되고 성별된)인 요셉의 정수리에 임하게 해달라고 축복합니다. 그리고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통해 그 자손들이 열방으로 확장되어 땅 끝까지 이를 것을 축복합니다(신 33:17). 샘 곁의 무성한 가지인 요셉은 야곱으로부터 그의 가지가 담을 넘어 뻗어 나가는 복을 받았습니다. 받은 사명과 예언이 큰 만큼 형제들로부터 날아오는 화살도 많고 학대와 적개심과 시기 질투도 심했지만 요셉의 활이 더 강했고 요셉의 팔이 더 힘이 센 것은 요셉이 이스라엘의 전능자의 손을 힘 입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받은 복들이 영원한 산들의 정상이 한이 없이 크고 높은만큼 뛰어난 복들이며 그러한 영원하고 무한한 복들이 이제는 요셉의 머리의 정수리에 임할 것이라는 예언적 축복을 하였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자신이 받은 최고의 복이 요셉의 정수리에 임할 것이라고 축복했듯이 모세도 이에 더하여서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자신을 찾아와 만나 주셨던 하나님의 선하고 기쁘신 뜻으로 요셉의 정수리에 최고의 하늘과 땅의 최고의 것과 충만한 것이 임하도록 축복합니다.

모세는 해변가의 땅을 분배 받고 바다를 접하고 살게 될 스불론과 잇사갈이 바다의 풍부한 것과 모래에 감추어진 보물을 빨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축복합니다(신 33:19). 스불론과 잇사갈은 지중해 해변과 갈릴리 바다 사이에 거주하면서 항구를 통한 상업이나 무역업과 관련되게 되는데 스불론은 들어오고 나가는 출구의 역할을 기뻐하고, 잇사갈은 장막을 치고 머무는 역할을 기뻐하라고 축복합니다. 예슈아의 제자들은 갈릴리 땅의 스불론 지역에 살던 자들이었고 그들은 기쁜 소식을 전하러 나가는 복음의 사도로서 보냄을 받았습니다. 잇사갈은 밖으로 나가는 스불론과는 달리 야곱으로부터 장막에 거하기를 기뻐하며 쉼을 좋게 여기고 땅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양의 우리 사이에 엎드린 힘센 나귀와 같다는 예언을 받았습니다(창 49:14-15). 힘센 나귀와 같은 잇사갈의 모든 종족은 다 큰 용사였으며(대상 7:5) 다윗 시대에는 잇사갈 지파 중에 시세를 잘 아는 것으로 인해 인정을 받아 형제들을 통솔하는 우두머리들이 200명이나 나왔습니다(대상 12:32).

성경에서 장막은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 약속의 말씀과 유업을 자손들에게 전하는 장소입니다. 장막에 거하기를 기뻐했던 잇사갈 지파는 장막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누며 그것을 통해 받은 영적인 통찰력으로 시세를 꿰뚫어보는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지파에 비해 시세를 아는 통찰력이 뛰어난 지파가 되었습니다. 장막에 머물기를 기뻐했던 야곱은 하나님의 킹덤의 장자권을 얻고 이스라엘 민족을 낳았습니다. 모든 축복의 비밀은 장막에 있습니다. 세상을 상징하는 들로 나가 세상의 기술과 힘인 사냥에 익숙한 것이 사람의 눈에 보기에는 더 탁월한 지도력을 가지고 세상에 대한 권세를 얻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킹덤에서는 장막에 앉아 하나님 앞에 머물 때 하늘의 유업인 영적인 축복을 받게 되고 영적인 축복은 영적 권위와 함께 물질적 축복을 가져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인 축복을 받고 이 땅을 다스리는 자들이 되길 원하십니다. 영적 기류가 급하게 바뀌면서 전쟁이 치열한 지금은 시세를 아는 통찰력이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필요한 때입니다. 이런 때 잇사갈 지파처럼 영적인 시세를 아는 축복을 가진 자들은 장막에 머물기를 기뻐하는 자들일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하늘에서 지혜와 통찰력이 흘러올 것이며 이로 인해 시세를 알게 될 때 지혜롭고 전략적으로 행동함으로써 물질적인 축복과 번영도 함께 받게 될 것입니다.

갓은 암사자가 먹이를 취하듯 요단 동편에 먼저 기업을 정했고 모세는 갓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공의와 법도를 행하는 지도력을 갖출 것을 축복합니다(신 33:21). 야곱은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고 축복했고 모세는 ‘갓을 광대하게 하시는 분에게 찬송을 부를지어다 갓이 암사자 같이 엎드리고 팔과 정수리를 찢는도다’라고 축복합니다. 모세는 자기 지파를 위해 먼저 기업을 택하는 갓을 보며 그들이 그 후 다른 지파들을 위해 약속의 땅의 나머지를 얻어 주기 위해서 함께 싸워 이겨낼 용맹을 가졌음을 알았습니다. 모세는 용맹함을 갖춘 갓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의와 법도를 행하는 지도력도 갖추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실제로 다윗이 사울을 피해 시글락에 있을 때는 갓 자손이 군대 지휘관이 되어 그 작은 자는 백부장이 되었고, 큰 자는 천부장의 역할을 감당했으며(대상 12:14), 다윗이 왕국을 세우고 군대 체계를 정비하여 각 지파에서 군대를 소집했을 때 다른 지파가 적게는 몇 천에서 많게는 몇 만 명의 용사들이 소집된 반면 갓 지파에서는 자그마치 12만명의 용사가 소집되었습니다.

단 지파는 약속의 땅을 분배 받았으나(수 19:40-48) 그것을 아모리 족속에게 빼앗기고 나서(삿 1:34) 거할 기업의 땅을 찾아 가는 중에 에브라임 미가의 집 제사장과 신상들을 미가의 집안으로부터 위협하여 강탈하였습니다. 그리고 북쪽 지역(레센=라이스=단)에 가서 싸워 땅을 얻고 그곳에 자기들을 위하여 그 신상들을 세우고 단 지파의 땅을 우상숭배의 중심지로 삼았습니다(삿 18장).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삿 18:31) 단 지파는 에브라임 산지에서 만들어진 신상들을 단에 세워 경배의 중심지로 삼고 이스라엘 지파 안에 우상숭배의 문을 활짝 여는 큰 죄악을 주도하였습니다. 이후 북이스라엘 여로보암은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웠고 금송아지 우상이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올린 신’이라며 이스라엘이 경배하도록 하는 장소로 만들었습니다.

단은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 새끼라는 축복을 받습니다(신 33:22). 유다도 단도 ‘사자 새끼’라는 축복의 예언을 받았지만 유다는 새끼 사자에서 원수의 목을 잡으며 대적을 치는 용맹함을 발휘하며 이스라엘을 지키는 왕으로서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이 되었고 반면 단은 새끼 사자로 시작하였지만 그 용맹을 사용해야할 때는 사용하지 못하고 철없는 새끼 사자처럼 날뛰 기만 하고 남을 해치며 일을 망치는데 그 용맹을 사용하게 됩니다. 사자 새끼로 시작하였지만 뱀과 독사가 된 단 지파는 역대상 2장부터 9장까지의 이스라엘 왕국의 족보에서 제외되었고, 요한계시록 7장의 인 맞은 열두 지파의 명단에도 빠집니다. 뱀과 독사가 되어 말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할 단을 예언적으로 바라보면서 야곱은 여호와께 외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니이다(창 49:18)

야곱의 중보로 단 지파는 그나마 천년왕국 안에서 북쪽 끝의 땅을 분배 받아 한 지파로 존속하게 됩니다(겔 48:2).

은총을 풍성히 받고 주님께서 주시는 복을 가득 받은 납달리는 후에 예수님의 주 사역 무대가 될 갈릴리 바다의 서쪽과 남쪽을 차지할 것이라고 축복받습니다(신 33:23). 아셀은 그 이름처럼 형제들 가운데서 더 복을 받고 기쁨이 될 뿐 아니라 그의 발을 기름에 담그게 될 만큼 또한 왕의 진수를 공궤할 만큼 기름진 식물의 복을 받습니다. 철이나 놋으로 만든 빗장으로 성문을 잠그고 그러한 견고함이 그 삶에 평생 있을 것을 축복받습니다(신 33:25).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세는 이스라엘을 ‘여수룬ישׁרוּן’이라고 부르며 온 이스라엘 지파를 향해 축복합니다(신 33:26). 여수룬ישׁרוּן은 ‘바른 자, 올곧은 자’라는 뜻으로 히브리어 야샤르יַָׁשׁר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야샤르יַָׁשׁר는 ‘정직하다, 곧다, 바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기름지고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면 하나님을 버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신 32:15). 또 이들이 흠이 있고, 비뚤어진 세대, 꼬여있는 세대임도 알아보았습니다(신 32:5). 그리고 이들이 패역하고 진실이 없고, 모략도 분별력도 없는 자녀들임을 알았습니다(신 32:20,28). 그러나 여전히 연약함투성인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모세는 ‘여수룬ישׁרוּן’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의 현재 상태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그들을 향한 원래의 의도(original design)와 최종 목적(destiny)을 바라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원래의 의도(original design)와 최종 목적(destiny)은 ‘하나님 앞에서 바른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른 자들이 될 뿐 아니라 바른 길로 사람들을 이끌게 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땅을 차지하게 하기 위해 명령한 것은 오직 한가지 ‘말씀’이었습니다(수 1:7-8). 말씀을 떠나지 말게 하고(무쉬מוּׁש, 제거하다), 묵상하고(하가הָגה, 읊조리다, 묵상하다), 지켜(샤마르שַׁמַר, 지키다), 행하는 것(아싸עָָׂשׂה, 행하다, 달성하다, 만들다)이 하나님의 자신들을 향한 원래 의도(original design)대로 살게 하고 최종 목적(destiny)에 이를 수 있게 하는 방법입니다(수 1:8).

여수룬은 신부의 정체성입니다. 신부는 말씀을 통해 ‘바른 자’가 됩니다. 신부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말씀입니다. 말씀에 붙들리고, 말씀을 붙드는 자가 최후 승리를 얻고 주님이 주신 것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여수룬에게는 왕이 있었고, 또 앞으로 있을 것입니다(신 33:5). 주님은 이스라엘을 이끄실 때 그들의 왕이 되셨고 장차 세상 모든 민족이 함께 모일 때 또한 왕이 되실 것입니다.

여수룬의 왕이신 하나님은 그들을 돕기 위해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셨습니다(신 33:26). 하나님이 친히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시는 처소가 되어 주셨고 또한 영원한 처소가 될 것입니다. 그 강한 팔로 모든 대적을 멸하셨고 또 멸하실 것입니다(신 33:27). 모세는 모든 지파를 향해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 강한 힘, 영토와 세력의 증가와 확장을 예언하며 감격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이 받은 축복을 바라보며 탄성을 지릅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 33:29)

이스라엘이 가장 행복한 이유는 그들이 여호와의 구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 구원(예슈아יֵשוּע)이 예슈아이고 예슈아는 방패와 칼이 되셔서 모든 대적을 무릎 꿇게 하시고 원수들의 높은 곳을 밟게 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예슈아이십니다

약속의 땅으로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하니 여호수아는 지혜의 영으로 충만하게 됩니다(신 34:9). 안수는 머리에 손을 얹고 나의 것을 전가하는 행위입니다. 모세의 영적 권위와 지도력은 여호수아에게 이양되었고 여호수아는 지혜의 영, 성령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세대 교체와 지도력의 이양이 있을 때 하나님은 반드시 새로운 기름부음을 더하십니다. 기름부음은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영적 권위를 상징합니다. 그리하여 성령으로 충만한 여호수아의 명령을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명령에 순종하듯 따르게 됩니다.

모세가 죽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여호수아를 준비시키는 하나님은 그에게 약속하십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수 1:5-6)

약속하신 그 땅에 들어가는 것이지만 한 번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전쟁이 여호수아 앞에 놓여 있기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임재를 약속하시고 여호수아의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세우십니다. 그리고 약속이 완전히 성취될 때까지 직면해야 할 과업 앞에서 여호수아를 강하고 담대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모세가 써서 남긴 율법책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하기 위해 율법책을 떠나지 않게 하고 묵상하고 지켜 행하라고 명령하십니다(수 1:8). 그 율법책이 여호수아를 평탄하게 하고 형통하게 할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평탄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짤라흐חַלַ ָצָ는 ‘번영하다, 성공하다’는 뜻이고 ‘형통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싸칼שקל은 ‘신중하다, 지혜롭게 이해하다, 통찰력이 있다’와 함께 ‘번영하다, 성공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책을 항상 옆에 둘 때 여호수아가 가는 길은 성공적일 것이며, 성공 뒤에 번영이 따라올 뿐 아니라 그의 판단과 결정은 신중하며 지혜롭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통찰력을 가지고 결정함에 따라 모든 일을 성공적으로 이룰 것입니다.

말씀을 옆에 두고 묵상하고 지켜 행하는 자의 축복은 성공과 번영입니다. 성공은 주어진 임무를 끝까지 완성해서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잘 먹고 잘 살면서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인정받는 삶이 우선 순위가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들에게 먹고 마시는 문제 이상의 성공과 번영이라는 축복을 더하실 것입니다(마 6:33).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의 호위를 약속받은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준비시킵니다. 그리고 먼저 땅을 차지함으로 안식에 들어간 르우벤, 갓, 므낫세의 지파의 절반에게 다른 형제들이 그들과 같이 안식에 들어가기까지 함께 싸우라고 명령합니다(수 1:14-15). 여호수아는 땅을 정복하고 차지하는 것을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것을 히브리서 기자도 안식으로 묘사하며 그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합니다(히 4:11).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 정복 전쟁을 하는 것은 삶의 모든 구석 구석까지 악한 영의 영향력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가 모든 삶과 영과 혼과 몸에 적용되게 하는 것을 예표합니다. 그 땅에서 그들이 누리는 안식은 새 피조물의 삶을 살며 영원을 미리 맛보는 삶을 보여줍니다. 마찬가지로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 ‘안식에 들어가길 힘쓰라’는 말씀은 인류 역사의 마지막 날 이스라엘 땅을 중심으로 온 세상에 임할 천년 왕국과 또한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안식으로 들어가길 힘쓰라고 하면서 안식으로 들어 갈 수 있도록 돕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대해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을 향해 율법책을 주시며 말씀으로 무장하라고 하심같이 천년왕국에서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으로 들어가길 준비하는 모든 자들은 말씀으로 분리하고 분별하여 자신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말씀의 검의 능력은 어두운 것을 분리하고 잘라내는 힘이 있으며 또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분별케 하고 드러나게 하고 다듬고 깎아 줍니다. 천년왕국에서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완전한 새 피조물로 살아가게 되고 연속선상 안에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자들은 말씀으로 분리되어 거룩하게 구별된 자들, 말씀으로 자신을 쪼개고 깎고 다듬은 자들이 될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땅으로, 에덴-동산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하시면서 율법책, 말씀을 강조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혼 안에 있는 잘못된 계획과 의지, 맹세와 다짐을 다듬고 잘라내야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안식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 대제사장이신 예슈아를 힘입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하리니 이는 아무도 그와 같은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없도록 하려 함이라(히 4:11) 그리고 이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는 것을 이 땅에서 훈련하기 위해 하나님은 샤밭(안식일)을 주셨습니다. 6일 동안 열심히 살아온 우리에게 제 7일, 샤밭에는 모든 것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하던 모든 일과 생각과 감정까지도 멈추도록 하심으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을 연습하는 날로, 영원을 미리 맛보는 날로 삼게 하셨습니다.

요단을 건너 그 땅에서 안식을 누리기 위해 우리에게 남겨진 과업은 하나님을 대적하며 가증한 일을 행하여 그 땅을 더럽혀 온 가나안 일곱 족속과 그들의 문화를 멸하고 하나님의 통치와 문화를 세우는 것입니다. 가나안 일곱 족속의 퇴치는 우리 삶과 내면과 혼 안에서 일어나야 하고 또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우리에게 맡겨진 모든 영역에서도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안에 섞여 있는 가나안적인 것들을 쫓아내고 하늘의 것들로 채우는 것, 우리가 일하고 있는 영역에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악한 영들을 쫓아내고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게 하는 것, 이것이 안식을 누리기 위해 우리가 싸워야 할 전쟁입니다. 하나님은 이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도록 앞장서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승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으며 강하고 담대함으로 나아갈 때 취해지게 될것입니다. 사탄을 말씀으로 이기신 예슈아의 말씀의 권세가 모든 성도와 신부들 의 삶에 부어지길 소망합니다.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이스라엘, 열방으로 나아간 교회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영적 권위를 위임하고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영적 권위를 위임하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부어주셨던 영으로 충만하여 토라의 말씀을 붙들고 약속의 땅으로 전진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의 권능을 받고 사도가 되어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된 복음을 들고 열방으로 나아갔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을 차지하고 있던 악한 족속들로부터 하나님의 땅을 다시 되찾았고, 사도들과 복음을 믿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많은 성도들은 열방으로 나아가 교회를 세우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기 시작했으며, 사도들과 복음을 따르는 수많은 성도들은 열방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약속의 땅으로 들어왔던 하나님의 말씀(토라)은 복음과 함께 열방으로 나아갔고, 이제 열방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만왕의 왕 메시아 예수님 안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여호수아도, 사도들도 성령의 충만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전진했습니다. 메시아닉 킹덤 직전에도 하나님은 대대적인 성령을 온 세계에 부으실 것입니다. 대추수와 대부흥의 때가 멀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조상들과 예수님의 사도들, 예수님을 믿고 증거한 허다한 증인들도 하늘에서 메시아 왕국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나라와 그 날은 속히 올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천사가 보여주는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봅니다(계 21:9).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었습니다(계 21:10). 새 예루살렘은 온갖 종류의 보석과 가지각색의 색깔들을 가진 12보석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보석은 원석을 어떻게 깎고 다듬는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새 예루살렘을 이루는 이 보석들은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원석과 같아서 아직 보석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깎고 각을 잡아 다듬으셔서 우리의 가치를 뛰어나게 해 주십니다. 예루살렘 성의 성문이 된 열두 지파와 열두 기초석이 된 열두 사도 역시 하나님이 깎고 각잡아 다듬으심으로 거룩한 성을 이루는 보석이 되게 하셨습니다.

새 예루살렘의 열두 문은 열두 진주로 되어 있는데 문마다 한 진주로 되어 있습니다. 진주는 바다에 사는 조개 속에 이물질이 들어가서 상처를 계속 주면 조개의 몸 속에서 액체가 분비되어 그것을 감싸는 긴 과정을 통해 결국 진주가 형성됩니다.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모든 자들은 반드시 진주문을 통해서 들어가게 됩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상처를 받지만 그 아픔을 아름답게 승화시켜서 진주를 만들어 낸 자들은 새 예루살렘의 문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의 길은 정금으로 깔려 있는데 정금은 투명한 금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예루살렘 성의 길을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라고 묘사하였습니다(계 21:21). 금은 모든 다른 금속과 달리 녹슬지 않아 영원히 변하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의 길은 영원성을 상징하는 금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한 수정같이 맑은 강이 보좌로부터 길 가운데로 흐르는데 이것은 생명을 공급하는 성령을 의미합니다(계 22:1-2). 그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고 열두 가지 열매를 달마다 맺는데 그 열매의 잎사귀는 만국을 치료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생명의 강 주위에 있는 만국을 치료하는 생명나무는 생명의 공급이신 예슈아를 상징합니다. 만국을 치료하시며 생명을 주시는 예슈아로 인해 새 예루살렘의 생명의 확장은 끝이 없고 영원히 증가합니다.

생명의 강이 흐르고 생명나무가 있던 에덴-동산의 비손 강이 흐르던 하윌라 땅의 금은 정금이었고 그곳에는 베델리엄(진주)과 호마노(보석)도 있었습니다. 새 예루살렘의 길과 성은 정금이고 문은 진주이고 성곽의 기초는 열두 보석이며 성곽은 여러가지 색의 보석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새 예루살렘은 성령과 성자와 성부와 연합하여 하나(에하드אחד)된 하나님의 신부 곧 한 새 사람이 영원히 거하시는 지성소입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창 2:1)

창세기 2:1의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이 다 이루니라’의 선포를 통해 우리는 마지막 날 새 하늘과 새 땅이 다 이루어져 새 피조물이 온전히 하나된 상태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세기에서 천지와 만물을 다 이루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함께 하나됨을 누렸고 아담과 하와가 하나됨을 누리고 있는 그 하나됨(에하드) 안에서 하나님도 함께 안식하셨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인류 역사 7천 년의 모든 세대를 지나면서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모든 성도들로 이루어지는 살아 있는 구성체입니다. 하나님의 킹덤의 최종적이며 마지막 단계인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가 될 것이고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나됨을 누리며 영원히 안식할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시작한 하나님의 킹덤의 역사는 사탄의 끊임없는 방해와 공격 속에서도 한 사람, 한 민족을 택하시고 이끄심을 통해 열방으로 확장되어 흘러갔고 다시 에덴-동산의 자리로 돌아와 완성될 것입니다. 이 장엄한 역사의 과정을 하나님의 섭리 아래 감출 것은 감추시고 드러낼 것은 나타내셔서 당신의 신부들이 말씀을 순종하고 행함으로 그 역사에 참여하고 함께 완성할 수 있도록 계획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 29:29)

출처: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적 관점으로 읽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Quoting from Reading the Torah Portion from the Hebrew Perspective in Jerusalem (Gen. Exod. Lev. Num. De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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