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th 아하레이 모트

히브리어 אחרי מות

죽은 후에

파라샤 Leviticus (레) 16:1-18:30

하프타라 Amos (암) 9:7-15

브리트 하다샤 1 Corinthians (고전) 6:9-20 / Mathew (마) 1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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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분리와 죄의 전가

모세의 토라는 5권으로 잘 정돈되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성경(구약과 신약)의 기초입니다. 토라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하늘에서 내려 주신 지침’으로 토라의 중심에는 레위기(봐이크라 ויקרא)가 있습니다. 레위기가 토라의 핵심인 이유는 제사장이 백성을 대표해서 하나님 가까이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지,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이 무엇이며 정체성을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은 레위의 이름 뜻처럼 ‘하나님과 연합한 자’이며 그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거룩’입니다. 그러나 ‘죄’는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연합할 수 없도록 정체성과 거룩을 훼손합니다. 죄는 번번이 우리를 실패자가 되게 합니다. 이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신 하나님은 종국에는 인류로부터 죄악을 완전히 분리시키시고 그 근원으로 돌아가도록 하심으로 땅과 인류에 완전한 구속을 적용하시고 만물을 회복케 하시는 천년왕국을 시작하실 것입니 다. 이것이 바로 ‘대속죄일(욤 키푸르 יום כפור)’입니다. 그래서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은 레위기의 모든 메세지의 정점이 됩니다. 모든 성경의 중심에 토라가 있고, 토라의 중심에 레위기가 있으며, 레위기의 절정은 16장 ‘대속죄일’입니다

하나님은 매년 티슈레이 월 10일(일곱째 달 십일)에 대속죄일을 지키도록 명하셨습니다. 대제사장은 일 년 중 이 날 하루만 지성소에 들어가도록 허락되었고, 이 날 하루에 하나님은 세 가지를 위해 속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첫 번째는 아론과 그의 집안을 위해, 두 번째는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해, 세 번째는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을 위해 속죄하도록 하십니다.

일 년에 단 한 번만 허락된 지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아론은 먼저 자기 자신과 집안을 속죄하기 위해 수송아지의 예물로 속죄제를, 숫양의 예물로 번제를 드립니다. 아론이 자신과 그의 집안을 위해 속죄해야 하는 이유는 일 년 동안 그들이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 하나님 앞에 나아갔기에 그들이 짊어진 백성들의 죄가 집안에 남아있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대제사장은 가장 거룩한 지성소에 다가가야 하기 때문에 지극히 거룩한 곳에 다가갈 때 부정함으로 그가 죽지 않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보호입니다.

아론이 자신과 집안을 위한 속죄의 제사가 끝나면 이스라엘 자손의 속죄를 위해 그들로부터 두 마리의 숫염소를 속죄제물로 숫양을 번제물로 가져오게 합니다. 속죄제물로 가져온 두 염소 중 한 마리는 여호와를 위해, 한 마리는 아사셀을 위해 제비를 뽑습니다. 여호와를 위해 제비 뽑힌 숫염소는 속죄제로 먼저 드리고 아사셀을 위해 뽑힌 염소는 산 채로 살려둡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깨끗이 씻고 대제사장의 의복을 거룩하게 차려입은 뒤 향로에 여호와의 제단의 거룩한 불로 채워서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가지고 휘장 사이에서 분향하여 휘장 안에서 그 향기와 연기가 속죄소(법궤, 시은좌)를 가리게 함으로써 지극히 거룩한 곳에 다가갈 때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합니다. 그리고 아론과 자기 집안을 위해 속죄제물로 바쳐진 수송아지의 피를 속죄소의 동쪽과 속죄소 위에 뿌리고, 백성을 위해 속죄제물로 드려진 숫염소의 피를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립니다. 그리고 그 피를 제단의 뿔들에 바르고 일곱 번 뿌려 제단을 성결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은 거룩한 곳이라고 하셨고 아무나 들어갈 수도 없고 만져서도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룩한 곳에는 죄가 없을 것 같은데 하나님은 일 년에 한 번 이 거룩한 곳들을 속죄하라고 하셨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처리하기 위해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에 그 죄들이 붙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들이 달라붙어 있었던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을 위해 일 년에 한 번 속죄의 시간을 갖게 하셨고, 그 후 인류와 땅의 죄악을 그 뿌리째 뽑아 멀리 옮겨 제거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날이 바로 대속죄일입니다.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레16:30)

“지성소를 속죄하며 회막과 제단을 속죄하고 또 제사장들과 백성의 회중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이는 너희가 영원히 지킬 규례라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위하여 일 년에 한 번 속죄할 것이니라.” (레16:33-34)

이렇게 속죄의 시간이 끝나면 아론은 두 손으로 아사셀을 위해 제비 뽑힌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입술로 쏟아내며 염소의 머리에 옮긴 후 미리 정한 사람의 손에 맡겨 그 염소를 접근하기 어려운 광야의 험한 절벽으로 끌고 데려가게 합니다. 미리 정한 그 사람은 염소의 두 앞발을 잡고 뒤로 밀어서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며 “인류의 모든 죄들의 책임을 아사셀에게 돌리노라”라고 말합니다. 대속죄일의 이 아사셀 의식은 인류와 땅을 더럽힌 죄와 불의의 제공자인 아사셀에게 모든 죄를 되돌림으로 인류로부터 불의와 비뚤어짐과 악함을 완전히 분리시키고 제거하는 의식입니다.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들עֲוֹן과 그들의 모든 죄들חֲָטָּאת에 속한 모든 범죄들פֶּשׁע을 고백하고 그 모든 것을 염소의 머리에 옮겨주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레16:21)

‘모든 불의들과 그들의 모든 죄들에 속한 모든 범죄들’이라는 본문에서 불의는 아본עֲוֹן, 죄는 하따앝חֲטָּאת, 범죄는 페샤פֶּשׁע로 쓰였습니다. 아본עֲוֹן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게 하는 인간 내면의 비뚤어지고 왜곡되고 뒤틀린 상태를 의미하며 주로 불의나 죄악으로 번역 됩니다. 아본עֲוֹן과 페샤פֶּשׁע는 죄의 두 가지 결과입니다. 모든 범죄(페샤פֶּשׁע)는 그 기본 의미가 ‘넘어서다, 넘어가서 밟다’는 의미로 반역과 거역과 불순종과 월권을 의미하며 하나님이 정해주신 바운더리를 넘어서서 하나님의 영역이나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모든 행위들을 뜻하는 단어로 범죄, 반역, 패역으로 번역됩니다. 페샤פֶּשׁע가 죄로 말미암아 겉으로 드러난 여러 결과들이라면, 아본עֲוֹן은 죄로 말미암아 비뚤어지고 왜곡된 내면의 상태이며, 이 모든 것의 뿌리는 하따앝חֲטָּאת(죄)입니다.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 우리의 죄는 용서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남겨져 있는 죄의 뿌리는 완전히 뽑히지 않은 채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 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인류가 죄를 짓도록 한 사탄에게 모든 불의와 범죄와 죄들을 전가시키는 의식을 하도록 이스라엘에게 명하셨습니다. 대속죄일은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 땅에 의와 평강의 시대인 메시아닉 킹덤을 시작하실 때 인류의 죄의 뿌리를 제거하시고 인류를 회복된 에덴-동산으로 데리고 들어가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계획을 담아 두신 것입니다. 특별히 희년이 되는 해의 대속죄일에는 대속죄일의 하루가 끝날 무렵 마지막 나팔이 불리면 빼앗겼던 모든 것들을 원상태로 복귀시키면서 회복과 자유를 선포하는 희년이 시작됩니 다.

나팔절 후 10일이 지난 뒤에 오는 대속죄일은 우리의 죄가 용서받고 덮어지는 날이라 는 의미를 넘어서 의와 평강의 시대인 메시아닉 킹덤의 시작을 알려주는 종말론적 절기이자, 성도들이 공중으로 들림 받은 후 공중에서 예슈아와 함께 땅의 중앙인 예루살렘의 재림의 무대로 내려오시며 예슈아께서 예루살렘으로 좌정하시는 시간을 예표하는 절기입니다.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은 단순한 절기 삽입장이 아니라, 모든 죄악의 근원을 뽑아내시고 분리 제거시킴으로 인류와 땅을 정결하게 하시고 인류가 전 지구적인 안식으로 들어가게 하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깊은 사랑과 놀라운 계획이 비밀스럽게 계시되어 있는 장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레위기 16장은 레위기의 절정이며 인류 역사의 클라이막스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각 개인의 죄의 용서를 위해 예슈아가 초림으로 오셨고, 전 인류의 죄의 완전한 분리 제거를 위해 예슈아가 재림으로 오실 것입니다. 속죄의 사역, 죄 사함과 용서의 사역이 초림 예슈아를 통해 이루어졌고 마지막 날 죄를 인류로부터 완전히 분리하여 제거하고 사탄에게로 그 죄악의 근원을 돌리는 일이 대속죄일에 재림 예슈아를 통해 이뤄질 것입니다. 죄는 사탄으로부터 인간에게 들어와 왕 노릇 하였습니다. 예슈아는 죄가 인간에게 왕 노릇 하지 못하도록 거룩한 피로 죄를 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인간에게는 분리되지 못한 아본עֲוֹן(불의, 왜곡되고 비뚤어짐)과 죄악의 뿌리들이 있으며, 각 개인은 몸을 불의를 행하는 도구로 죄에게 내어 줄지, 몸을 의를 행하는 도구로 하나님께 드릴지, 죄의 종이 되어 마귀에게 눌려 살지, 의와 진리 안에서 자유의 아들이 될지의 기로에서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싸움에서 때로 인간은 속수무책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슈아께서 우리의 죄를 이미 대속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죄의 뿌리와 불의(아본עֲוֹן, 왜곡되고 비뚤어짐)를 뽑아서 그 출처인 사탄에게로 되돌려주실 심판을 집행하러 오실 것입니다.

몸의 정결과 땅의 정결

레위기 11-15장에 걸쳐서 하나님이 가르쳐 주고 계신 먹는 것, 입는 것, 몸에 나는 피부병, 나병, 집안의 곰팡이, 그리고 몸에서 밖으로 흐르는 유출, 이 모든 주제는 우리의 몸과 관련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에 무엇이 들어오고, 무엇이 나고 있으며, 무엇이 흘러가고 있는지, 우리 몸의 안과 밖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에 대해 세세하게 말씀하십니다. 거룩은 몸을 지키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의 몸이 더러워지면 생각도, 감정도, 영도 더러워집니다. 우리의 혼과 영을 담고 있는 그릇이 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몸을 지키지 못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 쉬울 뿐만 아니라 쉽게 다른 어둠에 노출되어 죄를 범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몸의 거룩을 말씀하십니다.

레위기 11-15장이 몸의 거룩을 말씀하신다면 17-18장은 몸의 거룩을 통한 땅의 거룩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 예물을 죽일 때 반드시 먼저 회막 문으로 끌고 와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서 예물로 드려야 한다고 명령하십니다. 만약 이 명령을 지키지 않고 아무데서나 예물을 잡으면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 경고하십니다 (레17:4).

그리고 하나님은 피를 먹지 말 것을 명령하시는데 이것은 당시 우상숭배의 도축 이후 동물의 피를 먹는 행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피는 생명이며 피가 죄를 속한다고 하셨습니다(레17:11,14). 피와 생명은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생명을 거룩하게 다루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경고하시고 명령하신 또 한 가지는 이스라엘 자손이 살던 이집트 땅의 풍속이나 혹은 앞으로 하나님이 이끌고 들어가실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를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따르라고 하신 것입니다(레18:3-5). 이집트나 가나안의 풍속과 규례는 온갖 종류의 음행함으로 사람의 몸뿐만 아니라 땅을 더럽히는 것이었습니다. 음행은 각종 경계를 넘어가는 행위입니다. 온갖 종류의 근친상간(레18:6-18), 월경하는 여인의 피의 근원을 드러내는 음란, 다른 사람의 아내와의 동침, 자녀를 몰렉에게 마치는 유아인신제사, 동성애, 동물과의 수간(레18:19-23)은 모두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어긋나는 것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행위들입니다. 특별히 몰렉에게 자녀를 바치는 인신제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을 태움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조롱하는 사탄적인 행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레18:21).

하나님이 가나안 족속을 그 땅에서 쫓아내시고 이스라엘 자손을 그 곳으로 들여보내시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음행들로 인해 가나안 땅이 더럽혀졌고 그래서 그 땅이 견디지 못하여 스스로 그 주민들을 토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레18:25). 그래서 만약 이스라엘 자손들이라도 그 땅에서 그들의 가증한 일들을 따르게 되면 그 땅이 이스라엘 자손들도 토해 낼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레18:27-28). 가나안 땅 즉, 에덴-동산의 땅은 하나님이 거하시기로 정하신 땅이고, 자신과 언약한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땅이며, 하늘과 땅이 하나되는 곳이자, 하나님의 킹덤의 통치의 중심으로 정하신 곳이기에 하나님은 사람들의 음란함이 그 땅을 더럽히는 것을 두고 보지 않으십니다. 그것이 자신이 선택한 이스라엘 자손이라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음행은 섞이는 것이고 질서를 파괴하는 문란한 것입니다. 섞이면 미혹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미혹을 받지 말라고 합니다(고전6:9). 미혹을 받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고전6:13)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고전6:17)

“주님은 우리 몸을 값을 주고 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몸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몸은 더 이상 우리 것이 아니고 주님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은 하나님의 영광의 통로입니다.” (고전6:19-20, 진리의 집 의역)

하나님에게 있어서 몸은 단순히 썩어져 없어질 것이 아니고 그분이 직접 만드시고 거하기로 결정한 장소(집, 처소, 성소, 성전)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성막과 성전을 통해 하나님이 직접 거하시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셨고 결국엔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과 같이 존귀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게 하셨습니다(시82:6, 요10:35).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먹는지, 무엇을 입는지, 어떻게 화장하는지, 무엇을 보는지, 무엇을 듣는지, 이런 모든 감각들이 내 정욕을 위해 다루어져야 할 것이 아니라 주님이 계신 성전인 내 몸이 거룩하게 되기 위한 방법으로 행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거룩한 영을 우리에게 부어주시고 우리 안에 함께 하시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에 모세를 통해 몸의 거룩을 지키기 위한 규례를 자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분 스스로 우리 안에 들어와 사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거룩하지 못한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미 거룩하지 못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철저하게 광야에서 거룩함을 배웠습니다. 거룩한 시간을 지키고(샤밭), 거룩한 장소에서 예배하며(성막), 거룩한 것을 먹고(레 11장), 거룩한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규례들과 법을 배우면서(토라와 계명)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해 갔습니다. 우리 자신을 거룩하게 지키는 이 모든 과정은 땅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과 같으며 하나님은 거룩한 백성과 거룩한 땅에서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약속

“내가 구름 가운데서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레16:2) ִ

כי בענן אראה על־ הכפרת

키 베아난 에라에 알 하카포렡

속죄소는 히브리어로 카포렡כפרת이라고 하는데 카포렡כפרת은 카파르כפר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로 ‘덮어주다’는 의미입니다. 속죄소는 하나님이 덮어주시는 곳입니다. 우리의 죄를 덮어주시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덮어주시는 곳입니다. 그래서 속죄소는 은혜의 보좌Mercy Seat 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죄를 속해주기로 결정하신 그곳에 하나님의 쉐키나가 은혜로 머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성소의 휘장 안 지성소에 속죄소를 두시고 그 안에 머무시면서 제사장을 향해 속죄소로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속죄소 가운데서 나타나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구름 가운데 속죄소 위에서 영광의 임재로 나타나셨습니다. 구름은 하늘의 영역에서 땅의 영역으로, 땅의 영역에서 하늘의 영역으로 전환되는 경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땅에 있는 하나님의 발등상인 속죄소에 하늘의 영역을 닿게 하심으로 하늘과 땅이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자신의 백성과 하나되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되기 위해 예슈아의 피와 죽음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은혜와 자비로 덮어주시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속죄소 앞에 담대히 나아와 친밀함을 누리라고 초청하셨습니다. 예슈아를 믿는 누구에게나 열린 휘장 안, 영광의 임재 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우리에게 열렸습니다.

약속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그 날의 회복을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모스를 통해 3가지 회복을 약속하시는데 다윗의 장막의 회복, 예배의 회복(암 9:11), 그리고 땅의 회복을 통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차고 넘치는 추수를 약속하십니다(암 9:12,13). 이런 것들이 회복될 때 물리적으로도 나라와 땅이 회복되고 그 지경이 넓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암9:14).

예배의 회복으로부터 땅이 복을 받아 추수가 넘치게 되고 나라가 부강하게 됩니다. 다윗의 왕국은 하나님 나라를 가장 잘 예표하는 상징적인 왕국인데 그 나라의 시작과 부흥의 기초는 예배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모든 순간 속에서 예배함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나라가 하나님 나라를 예표하는 왕국이 되게 한 것입니다. 사울을 피해 다닌 그 광야의 시간이 다윗이 평생 예배를 사모하고 갈급하게 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광야를 거치고서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킹덤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후에(아하레이 모트אחרי מוֹת)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한 백성으로 쇄신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더 깊은 계시를 가르치시는 기회로 삼으신 것처럼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게 되는 이유는 주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이겨내는 훈련을 하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쇄신하기 위함입니다. 대속죄일에 백성의 죄는 예슈아의 피로 사함을 받아 덮어지고 죄의 근원은 분리되어 아사셀에게 되돌려보내집니다. 예슈아의 피로 대속 받은 우리는 그것에 머무르지 말고 죄의 깊은 뿌리와 불의와 죄악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겸손히 엎드리는 것입니다. 대속죄일에 하나님은 스스로를 괴롭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어 아나עֲֲנִָה는 ‘괴롭게하다’는 뜻과 더불어 ‘겸손하다, 낮아지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날은 나를 가장 낮추고 하나님 앞에 겸비하는 날입니다. 또한 대속죄일은 안식일 중의 안식일로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멈춰야 하는 날입니다. 모든 것을 멈추는 중에서도 더욱 멈춰야 하는 날입니다. 이 특별한 절기(모에드)에 우리가 멈추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날 우리를 멈추게 하심으로 ‘너희가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안에 머물러 있으라 내가 친히 이루리라’고 하심으로 하나님이 하실 일을 하십니다.

마지막 때의 절정에 이를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세상을 몰아치는 어둠의 힘이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예루살렘을 치러 모여 오려고 하는 것을 볼 그 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바로 그 때가 하나님이 거룩함과 영광스러운 위엄으로 위대한 일을 행하실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 날, 위대하고 두렵고 영화로운 날에 하나님은 죄와 어둠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저히 낮아져 엎드려 하나님 앞에 머물러 예배함으로 깨어 기도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뜻을 알아가며 우리의 몸과 혼을 단장해야 합니다. 신부를 취하기 위해 신랑이 곧 오십니다.

출처: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적 관점으로 읽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Quoting from Reading the Torah Portion from the Hebrew Perspective in Jerusalem (Gen. Exod. Lev. Num. De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