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th 르에

רְאֵה

보라

파라샤 Deuteronomy (신) 11:26-16:17

하프타라 Isaiah (사) 54:11-55:5

브리트 하다샤 John (요) 7:37-52 / Matthew (마) 9: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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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르에רְאֵה)! 축복과 저주가 네 앞에 있다 –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태초에 허락하신 ‘토브, 축복, 번영, 행복, 기쁨’을 되찾아 주시기 위해 ‘쉐마’를 명령하시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라(르에רְאֵה)’고 외치시며 그들 앞에 두 가지를 놓으십니다. 그것은 축복과 저주입니다. 축복과 저주 사이에는 하나님의 명령과 사람의 선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앞에 축복과 저주를 놓으시고는 ‘자,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나의 명령을 지키면 복을 받겠지만 내 명령에서 떠나면 저주가 따를 것이다’고 말씀하시며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너희 스스로 결정하라’는 선택권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습니다(신 11:26-28). ‘놓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탄נַָתַן은 ‘주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앞에 복과 저주를 놓으시고는 그들에게 선택권을 주셨습니다.

이집트에서 친히 이끌어 내신 하나님의 큰 구원을 경험하였고 그들 마음 가운데 자리 잡고 있던 이집트의 신들과 우상숭배를 버리게 하기 위해 40년을 광야에서 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뿌리 뽑히지 않는 교만과 죄성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가나안의 신들을 쉽게 따라갈 수 있게 할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은 미리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을 따르는 순간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경고하십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면 먼저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라고 명령하십니다(신 11:29). 그들 앞에 놓여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이 선택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늘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어깨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세겜שְׁכֶם에는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이 있습니다. 이 두 산은 그 땅의 이름처럼 마치 두 어깨의 모양으로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요단을 건너 차지하게 될 산지 중에서 가장 먼저 밟게 될 세겜에 있는 두 산에서 하나님은 각각 축복과 저주의 선포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바라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복과 저주가 너희의 어깨에 놓여 있으니 너희 스스로 옳은 것을 선택하여 축복의 주인공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에덴-동산에 생명나무와 선악나무를 두신 것과 같습니다. 스스로 선택을 요구하신 것은 하나님이 사람의 창조주이시기에 조종자가 되지 않고 사람 스스로 자발적인 선택을 통해 축복을 얻고 누리는 주체가 되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자발적인 선택으로 하나님과 하나됨을 누리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선택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우상입니다. 우상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심겨져 있습니다. 사상과 철학, 문화와 예술, 정치와 경제, 사회와 미디어 등 각 영역에서 하나님보다 높아져 있는 모든 것이 우상입니다. 우리 삶을 에워싸고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에 심겨져 있는 우상은 우리의 삶에 자연스럽게 그리고 집요하게 침투해 들어옵니다. 이 우상들이 우리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경계(boundary)를 세워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종과 주인 관계 안에서 무조건적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이 만드신 완벽한 창조 질서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질서 안으로 들어와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와 기쁨 가운데 번영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정해주신 법입니다.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고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게 하는 선포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길을 제시하시고 그 선택을 인간의 자유의지에 맡기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의지는 번번이 하나님의 명령에서 벗어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 우상이 인간 안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선택 이 후 인간은 죄와 우상이 침범해 들어오는 것을 스스로 막을 방법이 없었고 아주 쉽게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우상의 영향력을 철저히 차단하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 우리의 생명을 살리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규례와 법도로 경계(boundary)를 정해주신 것입니다. 정해주신 규례와 법도는 우리 삶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고 이것은 끊임없이 ‘쉐마’를 통해 지켜지고 행해질 수 있습니다. 쉐마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따를 수 있도록 돕는 시작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됩니다(롬 10:17).

축복과 저주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 사이에는 하나님의 명령과 우리의 선택이 주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고 축복을 받을 것인지, 하나님의 명령을 떠나고 저주를 받을 것인지는 우리의 어깨 위에 맡겨져 있습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를 때 우리에게 바른 길을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쉐마하고 그것을 지켜 행하기를 기뻐할 때 우리는 토브를 회복하고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마콤הַמּקום,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그 곳에서 드려지는 예배

축복과 저주를 우리의 눈 앞에 보이게 놓으시고 선택권을 주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타락한 자유의지가 축복이 아닌 저주를, 생명이 아닌 사망을 선택할 수 있음을 아시고 저주와 사망을 선택하게 하는 근원을 완전히 차단하도록 명령하십니다. 근원 자체를 차단하지 않으면 아무리 힘과 에너지를 써도 똑같은 문제가 또 발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의 선택이 저주와 사망이 되도록 하는 근원이 되는 것을 아껴보지 말고 완전히 덮어 숨기지 말고 진멸하고 파괴하도록 명령하십니다. 그 근원은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름다운 땅은 오랜 시간 동안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악하고 음란한 방법으로 우상 신들을 섬겨온 가나안 족속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음란한 우상숭배 의식은 그 땅의 높은 산이든 낮은 산이든 푸른 나무 아래이든 곳곳에 산당과 제단을 쌓고 행해져 오고 있었고 제단에는 온갖 모양의 조각한 신상들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제단들은 파멸하고 헐며 신상들은 불사르고 찍어 멸하여 눈 앞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하도록 명령하십니다(신 12:2-3). 하나님이 이와 같이 명령하시는 것은 악하고 음란한 종교적 제의가 행해진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결단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며 하나님은 그런 예배를 받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상숭배의 제사 방식을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 이스라엘이 따라하기를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신 12:4).

예배는 온 우주의 창조주이자 거룩하신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제사이자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왕 앞에 엎드려 그분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그 백성을 당신 가까이로 오게 하시고 영광과 임재를 보여주시며 하나님의 백성을 자신과 하나되게 하십니다. 예배는 엎드려 절하는 경배이자 하나님과 나누는 사랑의 교제이기 때문에 하나님께만 온전히 바쳐지고 드려져야 할 우리의 중심과 사랑은 그 어떤 우상과도 나눌 수 없으며 빼앗겨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어떤 우상과도 나눌 수 없는 예배, 온전히 자신이 사랑하시는 백성들과 하나되는 예배를 위해 한 장소를 택하십니다. 하마콤הַמּקוֹם, 바로 그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라고 명령하십니다(신 12:5).

히브리어 헤이ה는 정관사 the의 의미로 '정해진 어떤 것'을 의미하고 마콤מּקוֹם은 ‘장소’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마콤ַהַ ָּמּקוֹם은 ‘정해진 바로 그 장소’라는 뜻입니다.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려 하나니 반드시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 거주할지라(신 11:31)

하나님이 그 땅을 반드시 차지하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그 곳에 하나님이 태초부터 정해 놓으신 하마콤הַמּקוֹם, 바로 그 장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장소를 미리 택하신 이유는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그 곳에 두기 위해서입니다(신 12:5, 11).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을 하 마콤, 그 장소에 두시겠다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그 곳에 두겠다는 선포입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거하도록 택하신 그 곳이 약속하신 그 땅의 중앙에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많은 땅 가운데서 약속의 땅을 정하시고 약속의 땅에서도 왜 한 장소를 택하셨을까요? 그 곳이 하늘과 땅이 하나되었던 첫 지점 에덴-동산의 중앙이기 때문입니다. 그 곳에서 하나님은 사람과 에하드אֶחָד, 하나됨을 누리셨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이 하나되듯 하나님과 사람이 에하드אֶחָד, 하나되었던 곳 그 곳에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를 두시고 다시 하나됨을 누리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땅을 차지하고 하마콤, 그 장소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그 곳이 지성소가 되게 하고 그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신의 이름을 두시고 거하실 그 곳은 어디일까요? 시온, 예루살렘, 예루샬라임יְרושַׁלִַיִם입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주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시 132:13-14)

예루살렘, 예루샬라임יְרושַׁלִַיִם은 하나님이 정하시고 택하신 그 곳, 하마콤입니다. 이곳 ‘택하신 곳’에서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구별된 백성들, 거룩한 백성들이 올려드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이 예배를 원하신 이유는 자신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신 12:7)

‘즐거워하다’는 뜻의 싸마아흐שׂמֵח는 ‘기뻐하다, 즐거워하다, 행복하다’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리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참 기쁨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우리의 영, 혼, 육을 모두 만족시키는 기쁨입니다. 사탄이 주는 기쁨은 육체를 만족시키는 쾌락과 음란이며 혼적인 탐욕과 이기심을 충족시켜주는 거짓 기쁨입니다. 사탄이 주는 기쁨은 순간적이어서 그 순간이 지나면 공허하게 되고 그래서 또 다른 것을 찾게 합니다. 이런 기쁨은 육체와 혼을 피폐하게 하고 결국엔 영을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아름다워서 그 기쁨은 또 다른 생명을 낳고 살게 합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영원한 생명이지만 사탄의 기쁨은 파멸과 죽음입니다.

사탄은 사람으로부터 기쁨과 생명을 빼앗아 가서 그것을 알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탄은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됨 안에서 기쁨을 누리지 못하도록 하나됨의 장소, 하나님이 택하신 그 장소, 하마콤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곳이 예루살렘, 예루샬라임입니다.

에덴-동산의 중심인 이 곳에서 사람이 쫓겨난 이후 사탄은 사람이 다시는 이 곳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정확히는 하나님이 이 곳에 거하시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선수치고 들어와서 차지해 버렸습니다.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 사람을 속였던 사탄은 사람이 하나님이 택하신 그 장소를 알지 못하게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지금도 속이고 있습니다. 신학과 종교의 틀로 예루샬라임을 가려 놓았고 정치적 이권으로 누구도 함부로 이 땅을 건드릴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사탄은 온 우주를 다스리며 통치하실 예슈아가 하마콤의 그 보좌에 좌정하실 것을 두려워하여 예루샬라임을 논쟁과 분쟁의 예민한 이슈들로 가리고 덮고 거짓으로 치장해 버렸고 예루살렘의 중심성을 인식하지도 못하도록 적그리스도의 영으로 온 세계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사탄은 자신의 통치가 계속될 거라 생각하겠지만 결국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사탄을 심판하셔서 무저갱에 던져 잠그시고 그 통치와 권세를 지극히 높으신 이와 성도들에게 허락하실 것입니다(계 20:10; 단 7:18).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는 예슈아의 재림과 함께 정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예슈아의 재림과 메시아 왕국의 통치를 기다리며 끝까지 싸우며 믿음의 경주를 달린 성도들은 예슈아와 함께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온 땅을 다스리며 섬길 것입니다. 그리고 그 통치의 중심은 태초부터 택하신 그 곳, 하마콤, 예루샬라임이 될 것입니다. 예루샬라임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기쁨을 누리고 하나님과 에하드를 누리는 하늘 에덴(즐거움과 기쁨과 행복)이 땅으로 내려온 하부 에덴의 중심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에덴과 땅의 하마콤이 에하드 되는 곳, 하나님과 사람이 에하드 되는 곳에서 황금길을 거닐게 될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으로 초대하시는 하나님

예슈아는 초막절이 끝나고 모든 절기가 마무리되는 제 8일의 큰 성회 때 성전에 서서 외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7b-38)

여기서 쓰인 ‘배’의 헬라어 코일리아κοιλία는 ‘속이 비어 있는 장소’를 뜻합니다. 육신적으로는 음식이 들어가서 나오는 배를 말하면서 동시에 사람의 가장 깊은 내면, 중심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여성에게 쓰일 때는 자궁, 생명이 잉태되는 배를 뜻하기도 합니다. 히브리어로 ‘배’는 케레브קֶרֶב와 베텐בֶּטֶן 두 가지가 있는데 케레브קֶרֶב는 ‘가까워지는 곳, 전투가 일어나는 곳, 내면 깊은 곳’을 뜻하며, 베텐ֶּבֶּטֶ ן은 ‘육체의 배’를 말합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에서 볼 수 있는 ‘배’라는 단어의 공통점은 ‘중심, 무엇인가 들어왔다가 나가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중심이 배라면 땅의 중심은 에덴-동산입니다. 그 동산의 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선악나무가 있고 생명의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생명의 강은 동산을 적시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며 이것은 성령을 뜻합니다. 이런 에덴-동산의 이미지를 사람에게 적용한다면 이것은 마치 셋째 하늘의 에덴에서 내려오는 생수의 강이 그 동산 하마콤을 적시고 흘러 가듯이 하늘에서 성령이 내려오셔서 그 사람의 영이며 중심인 하마콤을 적시고 흘러가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슈아는 ‘나를 믿고 내게로 와서 나로부터 생수를 마시는 누구든지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성경이 말했던 것과 같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의 어느 부분을 인용하신 것일까요?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창 2:10)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겔 47: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계 22:1-2a)

예슈아는 에덴-동산에 흐르던 생수의 강들과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와 새 예루살렘의 보좌로부터 흐르는 생수를 예슈아를 믿어 사람 성전이 된 자, 즉 ‘사람 에덴-동산’이 된 자와 연결시켜서 이해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에덴으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 내려와 그 동산, 하마콤, 그 중심, 그 영으로 흘러 들어옵니다. 그리고 다시 그 곳에서부터 네 강이 흘러 나아갑니다. 이것이 예슈아가 요한복음 7:37-38을 외치실 때 가지고 계셨던 개념이었습니다. 예슈아는 성경이 말하는 이러한 개념으로부터 ‘개념 인용’을 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늘 에덴에서 흘러 내려오는 생수가 흘러 들어가는 사람의 가장 깊은 근원, 그 곳은 또한 그 사람이 그 생수를 흘려 보내는 출처가 되는 사람의 중심이며 사람의 배입니다. 배는 영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사람으로부터 흘러가는 출처가 항상 배가 되진 않습니다. 머리, 이성일 수도 있고 가슴, 감정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으로부터 맑은 영이 흐를 때 주변 사람들은 생명과 평안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으로부터 불안, 두려움, 음란, 어두움, 사망, 분노, 짜증, 미움, 혼란 등이 흘러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왜 어떤 사람으로부터는 에덴과 천국이, 어떤 사람으로부터는 사망과 어둠이 흐르는 것 일까요? 그것은 그 사람 안에 얼마만큼 가나안 일곱 족속을 쫓아내고 우상을 불태우고 산당을 파괴했는지의 문제이며 그 사람의 중심이 하나님께 완전히 드려졌는지, 지방 산당들을 통해서 우상숭배가 여전히 허락되고 있는지의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사기를 살고 있는 사람, 어떤 사람은 통일 왕국을 살고 있는 사람, 여로보암을 기준 삼은 북이스라엘의 어느 왕국 시대처럼 살고 있는 사람, 다윗을 본받은 남유다의 어떤 왕국 시대처럼 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예배의 상태와 우상숭배의 상태, 그 사람의 영의 상태와 그

사람의 혼의 정화 수준에 따라서 그 사람이 흘려보내는 것은 달라집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나 느끼는 감정 중에는 허상이고 실제가 아닌 것이 많습니다.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림자를 실재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믿어버릴 때 그것이 우리 안의 거짓 선지자, 혹은 거짓 교사가 되며, 우상숭배로 안내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우리 안의 곳곳에 포진되어 있는 가나안 일곱 족속을 철저하게 쫓아내지 않고 곳곳에 남겨뒀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잘못된 출처가 되는 것을 쫓아내고 우상을 불 태우고 산당을 파괴한 후에 우리의 배, 영으로부터 성령과 생명이 깨끗하게 흘러가도록 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미혹되어 있으면서 예슈아가 메시아라는 진리를 발견한 자들을 향해 미혹되었다고 말합니다(요 7:47). 자신들이 주류라고 생각하면서 주류 중에 너희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비웃습니다. 그러나 주류,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이 아니며 현재 보편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다 옳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진리가 아닌 것을 말하는 주류를 향해 진리를 말하면 그들은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인정하고 회개하든지, 아니면 강한 저항을 하며 분노와 저주를 퍼붓습니다. 그들로부터 분노와 저주의 에너지가 쏟아 나오는 이유는 그들 속의 민감한 출처, 잘못된 근원이 건드려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면 우상숭배하게 하는 모든 것을 파멸시키고 우상숭배하게 하는 근원을 막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마콤הַמּקוֹם, 바로 그 장소, 중앙에서만 경배의 행위가 있게 하라고 하십니다. 하마콤에서만 흐르게 하고, 하마콤이 아닌 곳에서는 흐르는 것이 있게 하지 말며 하마콤만 근원이 되게 하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배, 그 중심, 그 영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 여기에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지니라(신 12:8)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 광야의 시간에서는 하나님은 그들이 각기 소견대로 하도록 어느 정도는 허락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땅에 들어가서는 중앙, 택하신 그 곳, 바로 하마콤에 가면 소견대로 하지 말고 광야에서 가르쳐 주신 이 모든 규례와 법도를 듣고 지키고 예배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생수를 흐르게 하는 생수의 근원이 되는 하마콤으로 나아오라고 초청하십니다(사 55:1). 돈 없이 와서 값없이 먹고 마시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땅은 하나님이 권고하시는 땅이며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입니다. 다른 어떤 것을 흡수하여 근원이 되게 하는 땅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것을 흡수하여 그것으로 근원이 되게 한 땅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늘에 속한 것을 흡수하여 그것으로 우리의 근원이 되게 하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아무 대가 없이 와서 마음껏 그 근원, 중심으로부터 흐르는 생명의 물을 마시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그 배, 깊은 곳, 영에서 생명수가 터져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이 생명수는 흘러서 사람과 땅을 회복하고 살려서 하나님 생명이 흐르는 천국의 통치가 이뤄지게 할 것입니다.

출처: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적 관점으로 읽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Quoting from Reading the Torah Portion from the Hebrew Perspective in Jerusalem (Gen. Exod. Lev. Num. De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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