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th 쇼프팀

שׁפְטִים

재판장들

파라샤 Deuteronomy (신) 16:18-21:9

하프타라 Isaiah (사) 51:12-52:12

브리트 하다샤 Matthew (마) 3:1-17 / John (요) 14: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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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살겠고(하야 חיה) 차지하리라(야라쉬 ירש)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가 차지하고 살아가야 하는 땅은 하나님이 택하신 곳으로 하나님이 왕이 되어 친히 통치하시는 왕국의 보좌가 놓일 땅입니다.

그 때에 예루살렘이 그들에게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모든 백성이 그리로 모이리니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 모이고(렘 3:17)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고 나오실 때부터 이미 이 백성의 왕으로 그 어떤 거짓 신이나 사람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이 이 백성의 왕이심을 그들에게 보이시고 알게 하셨고 세상의 그 어떤 거짓 신이나 왕과 비교할 수 없는 참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왕이 되어 친히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킹덤의 시작을 택하신 땅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기로 결정하셨고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의 킹덤이 온 열방으로 확장될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사명은 온 열방의 축복이 되어야 할 제사장 나라요,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구별된 거룩한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어 다스리는 나라에서 왕국 통치의 기초는 의와 공의입니다.

의(쩨뎈צֶדֶק)와 공의(미쉬파트מִשְׁפָּ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헤세드חֶסֶד)과 진실함(에메트אֱמֶת)이 주 앞에 있나이다(시 89:14)

주님의 보좌는 하나님이 왕이 되어 다스리는 통치의 중심이고 통치의 중심인 보좌를 이루는 기초는 의와 공의입니다. 의는 히브리어로 쩨뎈צֶדֶק이며 공의는 미쉬파트מִשְׁפָּט입니다. 의, 쩨뎈은 하나님과 사람의 바른 관계를 뜻합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을 알고 그 뜻에 따라 생각하기 때문에 바른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 의(쩨뎈)의 관계에 있는 사람은 사람의 기준을 따르거나 혹은 자기 기준대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기준은 흔들려서는 안 되는 것인데 사람의 기준은 상황과 때에 따라 흔들리고 공평할 수 없기에 결과적으로 혼동과 혼란을 야기시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은 변함이 없으며 언제나 질서와 안정으로 땅을 평안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택하신 땅을 하나님과 함께 그리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릴 대리인들을 세우시고 그 땅을 질서와 안정, 평안으로 다스리기 위해 하나님의 대리인들에게 통치의 기초인 의와 공의(정의)를 실현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의와 공의(정의)를 실현할 하나님의 대리인들로 백성들의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관들과 지도자들을 각 성에서 지파별로 세우도록 하십니다(신16:18). 하나님의 킹덤이 의와 공의(정의)로 다스려지기 위해서는 중앙 정부뿐 아니라 각 성과 지파들이 건강하게 세워져야 하기 때문에 각 지역과 공동체를 다스리는 지도자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각 성과 지파별로 재판관들과 지도자들을 세우게 하셔서 그들에게 백성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재판하게 하십니다. 재판은 히브리어로 미쉬파트로 바른 판단과 결정을 의미합니다.

바른 재판, 미쉬파트를 위해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세 가지를 명령하십니다.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고 뇌물을 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신16:19). 첫째, ‘굽게 하다’라는 히브리어 쌀라프סָלַף는 ‘꼬이다, 비뚤어지게 하다, 왜곡하다, 뒤집다, 망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른 미쉬파트를 내려야 할 재판관이 꼬이고 비뚤어진 마음으로 판결을 하면 누군가는 반드시 억울함을 당하게 될 것이고 이것은 공평과 정의를 실현할 수 없게 할 것입니다. 둘째, ‘외모로 보지 말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나카르נַָכַר는 ‘인식하다, 인정하다, 존중하다’는 뜻으로 사람의 의도를 하나님의 뜻보다 더 인식하고 존중함으로 사람 중심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는 행위로 재판장이 자신이 아는 사람, 자신이 존중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편파적으로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의견과 생각은 언제나 흔들리고 중심이 없기에 재판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사람의 어떠함에 따라 기준을 바꾸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중심을 두고 판결을 내릴 것을 명령하십니다. 셋째, ‘뇌물’이라는 히브리어 샤하드ָׁשׁחַַ ד는 ‘선물’이라는 뜻으로 순수한 마음이 아닌 어떤 의도를 이루기 위해 주어지는 것은 선물이 아니라 뇌물이 됩니다. 하나님이 의도성을 가진 선물인 뇌물을 받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은 뇌물이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즉 꼬이고 비뚤어지게 받아들여지게 하며 왜곡시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이 바른 미쉬파트를 위해 세 가지를 지켜야 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하나님의 의, 쩨뎈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צֶדֶק צֶדֶק תרדּף

쩨뎈 쩨뎈 티르도프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신 16:20)

‘마땅히 공의만을’이라고 번역된 말씀은 히브리어 쩨뎈을 두 번 강조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의, 의를 따를 것이니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왕국의 의와 공의(정의)의 실현을 위해 하나님의 대리인들로 백성의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장들이 삶의 우선순위로 가장 따라야 할 것은 의, 쩨뎈입니다. 삶에 쩨뎈을 이룬다는 것은 진리에 자신이 잘 조율된 상태에 있다는 것이며 하나님과 바른 관계 안에 있다는 것이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잘 서있는 사람은 사람의 입장에 먼저 서서 생각하거나 판단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삶의 기준으로 두기 때문에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흔들림없는 바른 판단과 결정을 위해, 그리고 공정을 위해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에게 하나님과 바른 관계 위에 서 있을 것을 명령하십니다.

지금 온 세계는 불의한 법이 제정되고 불의한 법으로 재판이 굽게 행해지고 있고 사람 중심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의도성을 가진 돈과 재물이 지도자들의 삶을 타락하게 하고 있습니다. 법의 공정성과 공평은 사라져 가고 있으며 이념과 사상을 관철시키거나 돈과 재물로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지도자들 때문에 조작과 거짓 술수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질서가 사라지고 혼돈과 혼란으로 인해 나라의 안정과 평안은 점점 심각하게 깨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원인은 지도자들이 의롭지 않고 바르지 않고 진리에서 어긋나 있으며 하나님과의 관계, 의(쩨뎈)에 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준이 하나님께 있지 않고 사람에게 있기 때문에 법은 수시로 바뀌며 공평과 정의는 이뤄질 수가 없습니다.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롭게’라는 이상적인 슬로건으로 잠시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중심이 바르지 않으며 거짓에 치우쳐 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함으로는 결코 바른 통치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이 세상이 가장 질서 있고 아름답게, 평안하고 안정적으로 다스려질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법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하며 그 법을 실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삶의 중심으로 두고 하나님께 온 마음을 집중하는 자, 즉 하나님과의 관계, 의(쩨뎈) 위에 바르게 서 있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모든 바른 판단과 바른 재판(미쉬파트)을 위한 선행 조건은 의(쩨뎈)입니다.

의(쩨뎈)를 따를 때 나타나는 결과는 생명과 하나님이 주신 땅을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하야חי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야라쉬ירש)하리라(신 16:20)

하야חיה는 ‘살다’라는 뜻과 함께 생명을 유지하는 것, 생명과 건강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라쉬ירש는 기업을 얻고 소유를 차지하는 것 혹은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아 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쩨뎈)가 생명을 회복하고 더 얻어서 유지할 뿐 아니라 잃어버렸던 것을 찾아서 하나님이 주실 기업을 다 상속받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의(쩨뎈)로 서 있지 않은 사람들은 바른 판단(미쉬파트)을 행하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데 온전할 수 없습니다. 바른 판단과 재판이 이뤄지지 않는 가정, 공동체, 나라는 결국 파멸에 이릅니다. 바른 판단과 재판의 기준이 되는 법은 나라의 질서를 지키고 사회의 평화를 유지하며 개인의 삶이 잘 영위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은 공정하고 정의로와야 합니다. 하나님은 공정하고 정의로우신 유일한 분입니다. 그러므로 법의 기준은 하나님께 있어야 하고 모든 법의 기준이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곧 의(쩨뎈)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의(쩨뎈)를 따를 때 우리는 살겠고(하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차지(야라쉬)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과 의의 관계가 깨어질 때 우리는 생명으로부터 멀어지고 사탄에 의해 휘둘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의(쩨뎈)의 관계를 바로 세워주는 흔들리지 않는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의 기초인 의(쩨뎈)와 공의(미쉬파트)의 근간이 됩니다.

말씀없이 이 땅에 의와 공의는 이뤄질 수 없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부터 있었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세상 창조 설계와 인간 역사의 계획과 하나님 나라의 통치의 법을 아담에게 가르쳐 주시면서 아담에게 말씀대로 세상을 다스리고 확장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첫 아담은 이것을 실패했지만, 다시 오실 아담, 흠과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며 그 본체의 형상이신 예슈아는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으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이 크신 이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히1:3) 하늘과 땅을 다스리기위해 오실 것입니다.

땅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대리자들 

- 왕

하늘 보좌에 계시며 보이지 않는 모든 영적 세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보이는 세계인 땅을 다스릴 권세를 사람에게 주셨기 때문에 이 땅을 하나님을 대신해서 다스릴 대리자들을 세우십니다. 하나님의 대리자들 중 한 사람은 바로 ‘왕’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에서는 하나님이 친히 왕이 되시기 때문에 왕이라는 존재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연약한 이스라엘 백성이 주변의 민족들을 바라보면서 자신들 나라의 부족함을 온전히 말씀을 따르지 않은 그들의 죄에서 찾지 않고 왕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왕을 세울 때 왕이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왕이 되어야 할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이 택한 사람이어야 하며, 이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 중 한 사람이어야 하고, 타국인을 왕으로 세우지 말아야 합니다(신 17:15). 이스라엘의 사명 중 하나는 그 백성의 혈통을 통하여 마지막 때 완성될 최종적인 하나님의 왕국을 다스릴 메시아가 오셔야 하기 때문에 그 땅을 다스릴 왕으로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을 통해서는 세워질 수 없었습니다. 또한 왕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택하신 땅을 다스리는 대리자였기에 반드시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자에게 세 가지를 명령하십니다.

첫째, 말(군마軍馬)을 많이 두지 말고 말을 얻기 위해 이집트로 내려가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신 17:16). 군마軍馬를 많이 두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의 힘을 더 의지하는 것은 왕이 스스로 하나님보다 높아지려는 교만을 행할 수 있기에 하나님은 군마軍馬를 많이 두지 말도록 제한하셨습니다. 또한 군마軍馬를 얻기 위해 이집트에 내려가는 것은 하나님이 심판하신 이집트의 신들과 파라오 앞에서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을 모욕하는 것이며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나오실 때 다시는 그 길로 돌아가지 말 것을 말씀하셨기에 하나님은 이집트로 내려가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둘째, 왕은 아내를 많이 두거나 은금을 쌓아 두어서는 안 됩니다(신 17:17). 많은 아내, 특별히 이방 여인들은 왕의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도록 미혹할 것이며 은금 역시 왕의 마음이 하나님이 아닌 재물을 더 의지하게 할 것이므로 하나님은 왕이 여인과 재물을 탐닉하지 않도록 명령하십니다.

셋째, 제사장 앞에 보관되어 있는 율법서의 사본을 직접 적어서 즉, 자기 손으로 토라를 직접 써서 자기만의 사본을 만들어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도록 명령하십니다(신 17:18-19). 왕은 모든 백성의 머리입니다. 이 말은 모든 백성이 왕의 모습과 행동을 본받고 따라 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위엄과 통치를 백성에게 보여줄 왕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리자가 되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있어서 왕은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든 백성의 본보기였습니다. 레위 사람 제사장이 보관하고 있는 율법서를 베껴 적은 사본을 평생에 왕의 옆에 두고 읽는 것은 이 왕국의 통치 질서의 최고 법은 하늘에서 하나님이 내려 주신 지침인 토라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왕이 여호와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며 율법의 모든 말씀과 규례를 지킬 때 왕의 마음은 백성 위에 교만하지 않을 것이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쳐서 균형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신 17:19-20).

이스라엘 왕국에서 왕은 모든 백성 중에서도 가장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순종하며 사는 삶을 철저하게 보여주는 자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먼저 배우고 가르쳐 주는 자입니다. 이런 왕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신 분은 예슈아입니다. 예슈아는 이 땅에 화려한 궁궐을 갖지 않았고, 군마軍馬를 원하지도 않았으며, 율법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모두 지키며 삶으로 살았을 뿐 아니라 그 말씀의 진정한 뜻과 하나님의 마음을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고 섬긴 겸손의 왕이었습니다. 마지막 날 예슈아가 오셔서 온 땅을 의와 공의(정의)로 통치하실 때 예슈아를 따라 토라를 마음에 새기고 말씀의 삶을 살고 겸손하게 섬긴 자들은 그분의 나라에서 왕이 되어 함께 다스릴 것입니다.

그래서 예슈아와 함께 왕이 되어 다스릴 자들인 우리도 지금 이 순간부터 그 말씀을 마음에 필사하고 평생에 그 말씀을 가까이 두고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며 경외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 제사장, 레위인

하나님의 왕국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리는 또 다른 대리자들은 제사장과 레위인 그리고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지파 중에서도 레위인들을 택하셨고 레위인들 가운데서는 아론의 아들들과 그 자손들로 제사장을 삼으심으로 그들이 항상 여호와 이름으로 서서 백성들을 섬기게 하셨습니다(신 18:5). 그래서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중에서 분깃도 없고 나눠 받은 기업(基業)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의 기업(基業)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신 18:1-2). 그래서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친 예물들을 취할 수 있었으며 백성들이 처음 거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양털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백성들을 판결하는 재판장의 역할까지 수행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이 여호와를 위해 선택된 자들로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모든 소송과 모든 분쟁은 제사장의 말대로 판결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신 21:5). 그러므로 이들의 판결은 곧 하나님의 판결과 같은 것이었고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더욱 거룩을 요구하셨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거룩한 삶은 백성들에게 본보기가 되었고 하나님의 왕국에서 이들은 하나님의 의와 공의(정의)가 이 땅에 실현되는 것을 보여주는 대행자로서의 권위를 가졌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하늘과 땅을 동시에 섬기는 자들이었기에 어떤 면에서 왕보다 더 중요한 영적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타락으로 인해 법의 집행이 무너지고 그릇된 판결이 일어날 뿐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영적 예배가 더럽혀질 때 하나님의 왕국이 파멸로 내닫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타락하게 하는 가장 큰 미혹은 그들이 약속한 땅에 들어갔을 때 그 땅의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따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민족들의 우상숭배는 자녀들을 불가운데 지나가게 할 뿐 아니라 점쟁이, 길흉을 말하는 자, 요술하는 자나 무당,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 등 온갖 더러운 거짓 영들과의 교접으로 영, 혼, 육을 모두 혼잡하게 하고 더럽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자들은 모두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한 일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가증하다’는 히브리어 타아브תָּעָב는 ‘혐오스럽다, 몹시 싫어하다, 구역질나다’는 뜻으로 가나안의 풍습을 하나님은 아주 혐오스러운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모두 쫓아내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타밈תָּמִים 흠이 없이 온전하라)’고 명령하십니다(신 18:13).

지금 전 세계가 겉잡을 수 없이 타락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사명을 가진 자들이 세상의 영과 섞여서 돈과 명예, 권력을 따르고 자기 배를 채우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세상과 적당한 타협을 하며 살도록 부추기고 말씀에 인본주의를 섞어서 가르치지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준이 무너져 겉잡을 수 없이 타락하고 있습니다. 교회 생활을 잘 하는 것이 믿음의 삶이라는 착각을 하며 교회 중직자들조차도 점집에 가서 묻고, 교회안에서 추악한 힘겨루기를 하면서 모함과 험담으로 이간질하며 하나님의 집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가증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를 향해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신 18:13)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기를 힘쓰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쫓겨나 바깥 어두운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 선지자

하나님의 왕국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대리자 중 또 한 사람은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입니다. 왕이나 제사장, 레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며 왕국의 통치를 집행하며 백성들을 다스리는 자들이라면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음성을 듣고 왕, 제사장, 레위인과 백성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결정하고 따를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대언하여 방향을 가리켜 주는 자입니다. 그래서 왕이나 제사장, 레위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 현재적이라면 선지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현재의 상태를 통해 앞을 내다보고 준비하게 하는 미래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선지자들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으로든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든 하나님이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멋대로 교만하게 전할 때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신 18:20). 이런 선지자는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 백성들이 선지자의 말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 혼동될 때 하나님은 그 선지자의 말이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제멋대로 교만하게 말한 것이기 때문에 그 선지자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신 18:22).

선지자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묶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대언하면서 말할 때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위엄과 권위를 느낍니다. 그래서 선지자의 말은 큰 영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가 교만할 때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권위를 사용하여 사람들을 묶고 자신의 영향력 아래 복속 시키려고 할 것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선지자의 말에 증험도 없고 성취되어지는 것도 없을 때는 자유하고 두려워하지 말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과 음성만을 전해야 하며, 이것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점검하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엎드려야 하며, 사람들 위에 서서 군림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힘으로 사용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선지자가 타락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미혹되고, 이는 모두를 지옥불로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선지자의 직분은 말을 통해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지자는 철저히 자기 혀를 제어하기 위해 부단히 혼을 정결하게 하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음성이 분명히 있지만 선지자의 혼이 정결하지 못하여 함께 섞여서 흘러나오게 되면 이것 또한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립니다. 그렇게 되면 선지자 자신이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선지자는 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말씀 앞에서 자신을 겸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끊임없이 교란시키고 헷갈리게 하며 섞이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기준점을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게 두게 만들고 질서를 혼돈으로 바꿉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살고(하야) 차지해야 할(야라쉬) 영역을 빼앗고 점령하려 합니다. 오늘 날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예술, 가정, 종교, 미디어의 영역은 사탄의 교란과 섞임에 의해 사탄에게 많은 영역을 빼앗겼습니다. 이것을 다시 차지할 사명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지금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요셉과 다니엘과 에스더처럼 일어나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내며(하야) 하나님의 계시와 지혜와 통치를 땅에 풀어놓을 때 잃어버린 영역을 다시 차지할 수 있습니다(야라쉬). 그리고 말씀으로 살고 다시 차지하는 그 일은 하나님의 의, 오직 하나님의 의만 따를 때 이뤄질 수 있습니다(신16:20, צדק צדק תרדף 쩨뎈 쩨뎈 티르도프,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안에서 하나님이 옳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따라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차지해야 할 영역을 위해 하늘의 영적 권위를 부어 주실 것입니다. 모든 영역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예술, 가정, 종교, 미디어의 영역을 하나님의 왕국의 영역으로 되찾기 위해 하나님은 의(쩨뎈)를 따르는 사람을 부르셔서 왕으로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기름 부으시고 하늘의 영적 권위를 사용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의 것들을 다시 되찾아서 차지할 수 있도록 기름 부어 주십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대리인입니다. 우리는 각 영역에서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과 통치를 땅에 나타내고 실현할 자들인 하나님의 대리인이며 기름 부음 받은 자들입니다.

예슈아를 통해 이뤄지는 의와 공의(정의)의 나라 “하나님의 킹덤”

예슈아는 하나님의 킹덤,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예슈아가 오심은 하나님의 킹덤이 임하였다는 뜻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슈아의 오심을 준비하면서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킹덤)가 가까이 왔다(막 1:15)”고 외쳤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슈아의 오심과 하나님의 킹덤이 임하는 것이 같은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킹덤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그들을 준비시켰습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백성을 준비시키기 위해서 그들에게 ‘회개’를 외쳤습니다. 회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돌아서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회개라는 헬라어 메타노에오 는 ‘생각을 바꾸다’는 뜻입니다. 즉, 회개는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고 잘못된 기준도 바꾸는 것입니다. 생각이 비뚤어져 있고 기준이 바로 세워져 있지 않은 자들은 하나님의 킹덤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나라(왕국)가 가까이 왔다’고 외쳤습니다. ‘가까이 오다’는 뜻의 헬라어 엑기조 는 히브리어로는 카로브קרוֹב입니다. 카로브קרוֹב, ‘가깝다’는 히브리어 동사에서 파생된 코르반קָָרְבָּן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 드려지는 예물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스스로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었고 그래서 하나님은 코르반(가까이 나아가는 희생예물)을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슈아는 우리가 하나님의 킹덤에 들어갈 수 있도록 자신의 몸을 코르반으로 하나님께 드리셨고 예슈아를 믿는 자들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킹덤에 속한 자가 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온 하나님의 킹덤에 들어가기 위해 여전히 제한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비뚤어지고 꼬인 우리의 생각이며 세례 요한은 이 생각을 바꾸라고 하면서 ‘회개’를 외쳤습니다. 생각을 바꾸라는 것은 수년간 잘못된 법과 기준 아래서 살아왔던 것을 바꾸고 바른 법과 기준 즉, 하나님의 의와 공의(정의) 안으로 들어오라는 메시지입니다. 이것이 신약을 열고 예슈아의 오심을 준비하며 하나님의 킹덤을 준비하는 세례 요한의 메시지였습니다.

세례 요한의 메시지가 선포되면서 세례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이 준비될 때 예슈아도 친히 세례 요한에게 나아오셔서 세례를 받으십니다. 세례를 받으실 때 마태복음은 ‘하늘이 열렸다’고 기록하고 마가복음은 ‘하늘이 찢어졌다’고 기록합니다. ‘찢어졌다’는 표현은 두 가지 사건에서 발견되는데 하나는 공생애의 시작에 예슈아가 침례를 받으시던 때에 하늘이 열리고 찢어진 것이고 또 한 가지는 공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예슈아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성전의 휘장이 찢어진 것입니다. ‘찢어졌다’는 것은 다시는 붙이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입니다.

예슈아가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찢어지면서 하늘이 그 땅으로 내려왔고 그 땅을 만나 연결되고 하나되었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날 하늘이 거룩한 영으로 땅 예루살렘에 내려와 부어지면서 하늘과 땅이 연결되어 하나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회개할 때 즉, 우리가 잘못된 생각과 기준을 바꾸고 하나님께 완전히 돌아서서 하나님의 말씀과 법으로 들어갈 때 하늘이 열리고 부어집니다. 하늘과 내가 연결되고 하나됩니다. 그리고 하늘의 통치가 시작됩니다.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신 하나님은(사 51:13,16) 하나님이 정하신 그 날에 시온이 깨어나서 힘을 내고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아름다운 옷을 입게 하실 것입니다(사 52:1).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시작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온과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좋은 소식을 전하고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자들은 ‘너의 하나님이 통치하신다’고 외치며 산을 넘을 것입니다(사 52:7). 이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외치는 소리는 하나님의 성을 지키는 파수꾼의 소리이며 그들이 소리를 높여 노래할 때 시온으로 돌아오시는 여호와의 눈을 마주 보게 될 것입니다(사 52:8). 그리고 열방과 땅 끝이 모두 예루살렘의 구속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입니다(사 52:9-10). 시온으로 돌아오시는 여호와는 예슈아이며 예슈아의 통치로 들어가는 것이 곧 복된 소식, 복음입니다.

킹덤, 왕국은 어떤 왕이 통치하는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킹덤은 하나님이 왕이시고 사탄의 킹덤은 사탄이 왕이 되어 다스리는 곳입니다. 누구를 왕으로 섬길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 늘 우리 앞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킹덤을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을 위해 회개, 생각과 기준을 바꾸라고 하십니다. 회개하면 하늘과 내가 연결되고 하늘과 땅이 연결되어 하나님의 의(쩨뎈) 안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영역들을 다시 차지(야라쉬יַָרַש)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야라쉬 할 수 있도록 기름 부으실 것입니다. 야라쉬יַָרַש는 י요드, ר레쉬, ש쉰 이라는 글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요드י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손이라는 의미를, 레쉬ר는 머리라는 의미를, 쉰ש은 이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능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손, 능력이 우리에게 부어질 때 사단의 머리를 물어뜯고 부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킹덤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출처: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적 관점으로 읽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Quoting from Reading the Torah Portion from the Hebrew Perspective in Jerusalem (Gen. Exod. Lev. Num. De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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