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th 키 테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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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인권 – 부모 공경, 형제 사랑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어진 언약의 증거판인 십계명은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의 사랑과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어떤 백성이어야 하는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은 언약을 지킬 의무가 있었고 언약이 지켜질 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릴 수 있으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신 언약 이행의 의무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형제)사랑이었습니다. 십계명의 1-5계명은 이집트에서 친히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사랑해야 할 것을, 6-10계명은 품격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이웃(형제)을 사랑하는 삶을 실천할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온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만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사랑을 통해 하나님과 연합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결혼한 부부는 처음에는 다른 생각과 생활 습관과 성품으로 인해 충돌을 경험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로의 좋은 것들이 흘러가면서 닮아가게 됩니다. 그 이유는 연합(에하드אֶחָד)하였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연합한 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을 닮아가게 되고 하나님의 성품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에게 사랑과 연합을 요청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모습처럼 지어진 우리들의 정체성을 하나님과 연합함으로 다시 회복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에게만 시선을 고정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아가게 되고, 하나님을 아는 자는 하나님을 닮아가게 되며, 하나님의 마음을 흘려보내는 자가 됩니다. 그래서 이웃(형제)을 사랑할 수 있는 전제조건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마음을 알게 된 자는 이웃(형제)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알게되고, 하나님이 사람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시는지 깨닫게 됩니다.

인권이란 인간이 누려야 할 합당한 권리를 의미하는데 인권을 보장하고 지켜주는 법률을 제정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탐욕과 이기심이라는 죄성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기준에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은 하지 않으려는 마음, 더 많이 가지려는 마음,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경계선을 넘어서려는 의도 혹은 자신에게 피해를 준 사람에 대해서는 미움과 복수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친히 인간을 향한 사랑과 존중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시고 하나님처럼 사랑의 삶을 살도록 하나님의 백성들을 격려하십니다. 하나님의 킹덤에서 인권은 하나님과 연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을 가진 사람들을 섬기고 도움으로써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가 질서 가운데 아름답게 유지되고 확장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킹덤에서의 인권을 위해 하나님이 제일 먼저 말씀하신 것은 부모 공경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의 말을 순종하지 않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않는 자녀는 성문으로 끌고 나가 성읍 장로들에게 고하고 그리고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돌로 쳐죽이도록 명령하십니다(신 21:18-21). 가혹할 정도의 형벌을 말씀하신 이유는 부모를 향한 완악하고 패역한 마음은 불순종하며 반항적이고 거역하는 마음을 뜻하며, 거역과 불순종은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에 대한 거역과 불순종은 곧 부모에게 권위를 위임하신 하나님에 대한 거역과 불순종과 같은 것입니다. 가정 안에서 부모를 공경함을 배운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외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모 공경에 대한 계명을 주시고 이것을 지키게 함으로써 가정에서 하나님을 경외함이 훈련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질서와 평강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질서 안에 있을 때 진정한 안정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질서는 가정의 권위, 공동체의 권위 구조 안에서 다스려집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권위는 질서이자 안정이며 보호와 평안입니다.

이집트 아래서 압제하는 권위자로부터 큰 시련을 겪고 상처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나라의 권위와 질서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권위는 핍박과 압제의 상징이었고 그래서 늘 권위를 의심하고 저항하려고 하는 것도 있었겠지만, 이집트 아래에서는 저항하지 못했던 자들이 하나님과 모세의 선하고 바른 권위에는 대항하는 모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피해 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불합리한 압제에 저항하면서 그것을 벗어나보려 하지만 바른 권위조차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비뚤어진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비뚤어진 마음이 결국 잘못된 판단과 결정을 하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거역과 불순종으로 인해 수많은 심판을 받아야 했고 또 거역과 불순종을 다룸 받기 위해 광야에서 39년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거역과 불순종은 명백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뿌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것이 악이라고 하셨고, 악을 제하라고 엄중히 명령하셨으며, 부모를 대적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이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서 과감한 형벌을 결정하신 것이었습니다.

현대 사회는 부모나 권위자에 대한 존중이 현격하게 떨어져가고 있습니다. 평등과 차별이라는 이름, 인권이라는 이름이 오히려 건강한 권위 질서까지 깨뜨리는 방향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거역과 불순종의 뿌리로부터 오는 것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킹덤에 속한 우리는 부모 공경, 권위자에 대한 순종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말씀을 따르는 삶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마땅히 행해야 할 길을 가르치는 것 또한 중요하며 가르치기 위한 지혜로운 훈육은 반드시 필요합니다(잠 22:6). 하나님의 킹덤에서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가장 으뜸인 계명은 부모 공경, 권위자를 향한 존중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이웃을 넘어 형제의 관계로 규정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서로가 서로에게 형제가 되기 때문에 형제에게는 특별히 더 사랑과 자비, 친절로 대해야 합니다. 형제가 소나 양, 나귀나 의복과 같은 재산을 잃었을 때, 혹은 형제의 나귀나 소가 넘어진 것 까지도 못 본 체하지 말고 반드시 돌려주거나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신 22:1-4).

하나님은 맷돌의 위짝은 전당 잡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신 24:6) 맷돌의 위짝이 없으면 곡식을 갈 수 없고, 곡식을 갈 수 없으면 생계를 이어가는데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것이 생명을 전당 잡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같은 형제를 유인하여 종으로 삼거나 파는 것과 같은 유괴와 인신매매를 한 자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그 인생을 다 빼앗는 심각한 죄로 여겨 살인죄와 맞먹는 처형을 하여서 백성 중에서 악을 제하도록 명령하십니다(신 24:7).

이 외에도 하나님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생되는 여러가지 인권 보장에 대한 세세한 주제들을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사사로운 감정으로 사람에 대해 함부로 대우하거나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를 갖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는데 전쟁 포로로 잡혀온 여인을 대하는 것이나(신 21:10-14) 사랑받지 못한 아내의 아들이 장자일 경우 반드시 장자의 상속을 하도록 한 것이 그 예입니다(신 21:17).

또한 악인에게 태형을 때릴 때 사십 대 이상은 때리지 말도록 함으로써 비록 악인일지라도 형제로서 대해 주어야 할 경계, 사람으로서 지켜주어야 할 생명에 대한 보장은 지켜 주도록 명하시고(신 25:3) 새 집을 지을 때 지붕 난간을 만들어 혹여 누군가가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할 수 있는 안전 규례를 주시며(신 22:8) 공정한 추와 공정한 되를 두어서 형제를 향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지 않도록 명령하십니다(신 25:15).

하나님의 인도주의적인 포용과 배려는 심지어 이스라엘을 미워했던 에돔과 이스라엘을 노예로 살게 했던 이집트를 향해서까지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비록 그들이 이스라엘을 힘들게 했지만 에돔은 형제이기 때문에, 이집트는 나그네였던 이스라엘을 받아 주었던 적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미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신 23:7).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넓은 마음과 포용력으로 형제를 받아 주기를 원하시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주어도 한 가지 친절을 베푼 것에 대해 호의를 베풀 줄 아는 아량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사람을 가장 잘 아시고 가장 섬세하게 사랑하십니다. 세상은 정치적, 경제적인 목적으로 인권을 이용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심으로 인권을 보호하십니다. 그래서 인권은 하나님 안에 거할 때 진정으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할 때 서로의 인권을 보호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은 종교적 신념을 따르는 선한 행실이나 개인적 성화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공동체를 질서와 평안으로 안정되게 하는 절대적인 법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가져야 할 순결 – 섞이지 말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함께 세워나갈 하나님의 킹덤의 질서와 안정을 위해 사람의 권리를 존엄하게 여기고 지켜주는 것을 중요한 규례로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품격 있는 하나님의 백성의 삶과 태도는 사람의 권리를 지켜주는 행실을 통해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다른 이방 신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신이며 그래서 하나님에 의해 구별된 이스라엘 백성 역시 이방 민족들의 삶의 모습과는 구별된 삶을 살도록 명령받았습니다. 구별된 백성의 구별된 삶의 모습 중 하나는 사람의 존엄성과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고, 이 외에 하나님의 품격 있는 백성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육적, 혼적, 영적 순결을 지키는 것입니다. 순결은 섞이지 않은 순수하고 깨끗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한 백성에 맞게 세상과 섞이지 않는 순결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기 때문에 자신을 더럽히거나 뒤섞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몸의 순결은 곧 영혼의 순결과 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간음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일곱 번째 계명의 연장 선상에서 대놓고 하는 음란이나, 교묘하게 음란의 가능성을 열어 둘 수 있는 모든 것을 차단하고 끊어내는 규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 여자와 남자가 서로의 의복을 바꿔 입지 말라 명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가증한 것입니다(신 22:5). 옷은 정체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남녀의 의복을 바꿔 입지 말도록 명령하신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성적 정체성을 바꾸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이 당시 이집트나 가나안 풍습 가운데 성별을 바꾸어 입는 문란한 성적 복장 풍습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세상의 이런 문화를 따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금하셨습니다. 성적 정체성을 바꾸는 것 외에 하나님은 포도원에 두 종류의 씨앗을 섞어 뿌리거나 두 종류의 실을 섞어서 짜지 못하게 하시는데(신 22:9-11) 이것은 서로 다른 종류의 것을 부자연스럽게 뒤섞음으로 인해 창조 질서를 어지럽고 문란하게 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몸이 섞이는 것은 영적으로 타락하는 것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의 몸의 순결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다루십니다.

둘째, 결혼 관계에서 남편이 아내의 처녀성을 의심함으로 고의적으로 결혼 관계를 끝내려는 것을 금지합니다(신 22:13-19). 특별한 사유가 없이 아내를 버리는 것은 이미 음란의 문을 열어주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것을 금하십니다. 그러나 반대로 정말 여자가 결혼 전에 음란함으로 처녀인 표적이 없었다면 그 여인은 창기 같은 행동을 한 것으로 간주되어 돌로 쳐서 죽임으로 악을 제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신 22:21). 이렇게 함으로 백성 중에서 악을 근절하라고 하십니다.

셋째, 유부녀와 동침한 남자나 약혼한 처녀가 다른 남자와 동침한 경우 하나님은 모두 죽여서 악을 제하라고 명령하십니다(신 22:22-24). 또한 약혼한 처녀를 강간한 남자는 죽여야 하며 약혼하지 않은 여자를 강간한 경우는 반드시 보상을 하고 아내로 삼아야 합니다(신 22:28-29). 이 경우들 모두 결혼 관계의 신성함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단호한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규정하신 두 번째와 세 번째의 간음에 대한 규례는 모두 결혼과 관련된 것입니다. 결혼은 몸의 신성한 결합이자 영혼의 결합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연합을 결혼에 비유 하실만큼 결혼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하나됨의 모습으로 디자인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을 통해 하나님과의 연합을 이뤄 놓고는 금방 다른 신에게 마음을 돌려 그들에게 몸과 마음을 모두 주고 연합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에게 있어서 배신이자 수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결혼한 부부가 서로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몸과 마음을 주는 것은 서로를 향한 배신이자 수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간음을 강력하게 금지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간음, 음란이 공동체를 더럽히기 때문에 그런 자들은 공동체에서 잘라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고전 5:2). 음란은 자신의 몸만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가정, 공동체, 사회 전체의 질서를 어그러뜨립니다. 간음과 간통의 문이 열리는 것을 허락하는 것은 곧 한 사회와 나라가 망하는 문을 열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처음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그들의 음란으로 역사 가운데 수많은 배신을 당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장에서 하나님은 그들의 음란과 행악이 얼마나 땅을 더럽혔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이나 다른 신들을 섬기고서 다시 돌아온다 해도 하나님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며 괴로워하시지만(렘 3:1) 호세아가 음란한 아내 고멜을 다시 받아주도록 하심으로써 결국은 이스라엘이 돌아오는 것을 받아줄 것이고 고쳐서 새롭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호 14:4).

간음으로 하나님을 배신하고, 몸과 영혼을 더럽히며, 하나님의 왕국 통치의 중심인 그 땅도 더럽힌 이스라엘 백성이었지만 하나님의 초월적인 사랑은 직접 정하신 율법의 범위를 벗어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다시 받아 주실 뿐 아니라 예슈아를 통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겨온 모든 이방 사람들을 하나님의 품으로 받아 주실 길을 열어 주십니다. 사랑은 죄로 인한 형벌의 두려움을 이기게 하고 모든 허물을 덮어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섞이지 않는 순결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이 순결은 음란과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 거룩한 삶입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본성으로 아름답고 고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에게 거룩을 말씀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는 아무렇게나 섞이지 않습니다. 자신을 구별하여 깨끗하게 지킵니다. 우리 자신이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순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를 스스로 갈망할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긍휼(자비)

수많은 음란과 배신으로 하나님의 징계와 채찍을 받고 수치를 당한 이스라엘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사 54:5)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의 남편이며 구속자 이십니다. 잠시 버렸지만 그것은 이스라엘을 연단하시기 위한 도구였을 뿐 큰 긍휼, 라함רַחַַם으로 그들을 모으시고 구속하실 것 입니다(사 54:7). 하나님의 넘치는 진노가 있었지만 그 진노는 영원한 자비와 긍휼로 덮어집니다(사 54:8). 산들과 언덕이 움직여 이동되는 엄청난 진동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자비는 이스라엘에게서 떠나지 않으며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사 54:10).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긍휼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긍휼, 자비’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라함רַחַַם은 자궁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자궁은 생명을 잉태하고 보호하는 곳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신부와의 언약을 지키기 위해 신부를 당신의 긍휼로 감싸시고 보호하십니다. 온 우주의 왕이신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신부가 지켜야 할 수많은 법들과 규례가 있지만 법들과 규례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긍휼이 신부를 감싸줍니다. 그리고 이 긍휼은 영원히 떠나지 않으며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합니다(약 2:13).

신명기 12-25장은 십계명의 사랑의 언약을 지키기 위한 확장되고 세부적인 규례와 법도들로써 하나님의 신부인 이스라엘 백성과 아브라함으로 인해 믿음으로 하나님의 언약 안으로 들어가 신부가 된 교회와 성도들에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세부적인 규례와 법도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삶에 최하위선을 그어 놓고 최소한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벌을 내릴 것이라는 징벌의 법률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부로서 우리들의 삶이 아름답고 고귀한 품격을 지닐 수 있도록 정해주신 상한선이 되는 기준이자 이 규례와 법도를 따를 때 받게 될 축복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결코 낮게 바라보지 않으시고 존귀하게 바라보십니다. 비록 죄로 인해 타락한 본성이 하나님을 거스르며 악한 길로 자주 빠지게 하지만 하나님은 그럼에도 당신을 여전히 고귀한 하나님의 신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신부에게 하나님이 낮은 수준의 삶을 요구하면서 ‘최소한 이것은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너는 아름답고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가장 높은 수준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신명기는 지켜야 한다, 지키지 말아야 한다를 강조하는 율법서라기 보다는 아름답고 존귀한 우리의 정체성을 찾게 하고 우리의 삶에 번영과 축복을 누리게 하는 하늘에서 내려 주신 생명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가르침을 모세를 통해 당신의 백성들에게 가르치셨고 오늘날 신부들의 심장에 호소하십니다.

이 생명의 가르침을 듣고 순종하여(쉐마) 이 땅에서도 품격 있는 자로서 번영과 풍요의 축복을 누리고 안식으로 들어가서도 상급받고 칭찬과 명성 얻어 영생을 누리라.

지금 이 땅에서 우리가 하나님이 신부의 삶의 품격을 위해 정해주신 말씀을 따르며 사는 것은 그 날에 완성될 하나님의 킹덤에서 영화로운 모습으로 만왕의 왕이신 예슈아와 함께 온 땅을 다스리고 영원을 누리는 것을 준비하고 연습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르며 사는 삶은 영원을 준비하는 삶입니다.

출처: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적 관점으로 읽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Quoting from Reading the Torah Portion from the Hebrew Perspective in Jerusalem (Gen. Exod. Lev. Num. De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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