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st 니짜빔

נִצָּבִים

너희가 서있다

파라샤 Deuteronomy (신) 29:10-30:20

하프타라 Isaiah (사) 61:10-63:9

브리트 하다샤 John (요) 15:1-11 / John (요) 12: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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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과 맹세 앞에 서라

하나님만을 온 생명을 다해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라는 시나이 산의 언약은 약속의 땅이 바라보이는 모압 평지에서 갱신됩니다. 하나님이 어떤 시험과 이적과 기사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는지(신 29:2-3), 광야에서 어떻게 먹이고 입히시며 함께 하셨는지(신 29:5), 그리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 요단 동편의 강한 두 나라를 정복하게 하심으로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싸워갈 수많은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하게 하며 땅들을 차지하게 될 것인지를(신 29:7-8) 예표적으로 보여주신 하나님은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할 때 모든 일이 형통할 것을 약속하십니다(신 29:9).

그리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당사자들을 불러 모으십니다. 그들은 각 지파의 우두머리들, 장로들, 지도자들, 관리들,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 유아들과 아내, 그리고 이스라엘의 진영 가운데 있는 객(게르גֵּּר, 거류민, 외국인, 타국인, 이방인)과 이스라엘을 위해 나무 패는 자들부터 물 긷는 자들까지입니다(신 29:10-11).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할 때 진영 가운데 함께 거하며 이스라엘 백성이 지키는 언약의 말씀들과 절기들을 함께 지켜온 타국인들은 비록 이스라엘 지파에 속한 민족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언약을 맺는 당사자들로 초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언약 체결 대상의 범위에 나무 패는 자들로부터 물 긷는 자까지 포함시킴으로(수 9:21,23,27) 앞으로 이스라엘이 들어가 차지할 그 땅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섬기게 될 자들까지 언약의 대상을 확장해 놓으십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이방 민족이라도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따르는 자들, 이스라엘 땅에 거하며 이스라엘과 함께 하는 자들도 모두 하나님의 언약 안에 포함시켜 놓으셨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모압 평지 언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이 이스라엘만을 위한 폐쇄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열방을 향해 열려 있고 포용적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과 맺으신 큰 민족(고이 가돌גוֹי גָדוֹל)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그 언약이 시나이 산의 언약과 함께 확장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언약의 확장성).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요 17:20)

하나님이 말씀하신 언약의 당사자들이 모두 하나님 앞에 서있습니다(니짜빔נִצָּבִים). 그들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이유는 ‘여호와의 언약에 참여하며 또 하나님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하시는 맹세에 참여(신 29:12)’하기 위해서입니다. ‘참여하다’로 쓰여진 히브리어 동사 아바르עֲבַר는 ‘지나가다, 통과하다’는 뜻입니다. 언약에 참여한다는 것은 언약의 두 당사자가 함께 언약의 증거를 지나가고 통과하는 행위를 포함하고 있으며 고대 사회에서는 언약 체결 시 제물을 갈라놓고 그 사이를 통과함으로 언약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맹세는 이 언약을 깨뜨리면 저주를 받을 것을 맹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깨뜨린 이 언약에 대한 저주를 유대인이시면서 동시에 하나님이신 예슈아께서 십자가로 담당하셨습니다. 예슈아의 십자가는 이스라엘과 맺으신 첫 언약의 파기에 대한 맹세를 책임지신 저주의 십자가이면서, 동시에 새 언약을 시작하시는 구원의 십자가입니다.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받은 자(신 21:23)’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예슈아를 십자가에 달게 하심으로 모든 저주를 지게 하셨고 동시에 전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슈아가 죄의 책임을 지심으로 죄의 권세를 부수시고 새로운 구원의 문, 생명의 문을 여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맹세는 그것에 참여한 모든 자들을 구원하심으로 이루십니다.

회개하라(슈브שוּב), 의지하라(다바크דַבַק, 붙어 있으라)

비록 언약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저주를 받아 약속하신 땅에서 쫓겨나 다른 나라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그곳에서 하나님이 밝히 드러내어 가르쳐 주신 율법의 말씀이 기억이 날 때 하나님은 ‘돌아오라(슈브שוּב)’고 말씀하십니다.

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슈브שוּב)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것을 온전히 따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시키고(슈브שוּב) 너를 긍휼히 여기사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되(슈브שוּב) (신 30:2-3)

그들이 돌아올 때 하나님도 마음을 돌이키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돌아오다’는 히브리어 슈브שוּב는 ‘돌이키다, 회복하다, 고치다, 신선하게 하다(refresh)’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슈브שוּב는 하나님으로부터 떠났던 순간과 불순종의 행동으로부터 돌이키는 것으로 ‘회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회개는 더 이상 과거에 묶여 있던 것들과 죄악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단으로써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모세는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토라로부터 멀어져 그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있었다면, 그들은 반드시 회개하고 말씀 앞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토라에서 말하는 회개입니다. 토라는 말씀으로 즉, 토라로 돌아오는 것이 회개라고 말합니다. 예슈아는 ‘회개하라 천국(하나님의 킹덤)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셨고, 이 말씀을 또 다른 의미로 보면 ‘토라로 돌아와라, 그리고 그것을 지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킹덤은 메시아가 토라를 지킨 백성들을 토라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토라에서 멀어져 있었던 생각과 마음을 돌이키는 것이 회개이며, 또한 토라를 통해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사명을 깨닫고 회복하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갈 수 있고, 그 나라를 섬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서(토라로부터 돌아서서) 떠날 것을 미리 아셨지만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과 토라로 돌아올 때 하나님도 심판과 저주로부터 마음을 돌이키시겠다고 약속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잊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열방에 흩어졌던 그들을 다시 조상들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 약속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네 쫓겨간 자들이 하늘 가에 있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신 30:3-4)

그들의 마음이 돌이켜 질 때 그들을 다시 모으셔서 조상들이 얻은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약속은 일차적인 의미로는 열방으로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 오늘날 유대인들을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모으시겠다는 것(유대인의 알리야)이고, 이것의 확장된 의미는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택하신 자들을 모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마 24:31). 결국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시작으로 열방에서 택하신 자들을 함께 하나님의 땅으로 모으실 것입니다(신 30:5).

그리고 그 땅은 에덴-동산의 중심,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슈브를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땅을 차지하는 것을 약속하실 뿐 아니라 그들과 그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행하여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고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신 30:6). 마음의 할례는 불필요한 영역,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잘라내는 것으로 마음의 할례는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오고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게 합니다. 불필요한 영역이 잘라지면 가리워졌던 본질이 나타나고 그로 인해 하나님 한 분만을 더욱 바라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생명을 가져오면서 동시에 물질적 번영을 가져옵니다(신 30:10). 영적인 축복은 반드시 물질적인 축복을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의 우선 순위는 물질적 축복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영적으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인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한 하나님의 명령들이 결코 어렵거나 먼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 30:14)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과 모습을 하나님을 닮도록 창조하셨고 그래서 우리의 존재는 품격 있는 고귀한 존재입니다. 그것을 떨어뜨린 것은 사탄이고 사탄의 속임과 세상을 향한 사랑에 매여 있음으로 악하고 가증한 일들을 행하는 자들은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은 우리 존재의 품격과 고귀함을 찾을 수 있도록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는 것으로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 것은 여전히 사탄의 속임과 세상을 향한 사랑에 매여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려운 것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우리 곁, 우리의 입과 마음에 말씀을 두셨고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과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를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 거룩한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그 사랑과 은혜로 우리는 말씀에 순종할 힘을 얻습니다. 우리의 도덕성으로 말씀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 성령을 통해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도덕적 요구가 아닌 성령과 함께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의 미래는 그들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신 30:15)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신 30:19)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증거 삼으시고 모든 피조물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살기 원한다면 생명을 택하라고 권고하십니다. 언약을 맺고 있는 그 자리에서,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결단을 촉구하십니다. 이로써 그들의 미래에 다가올 축복이 그들의 현재에 달려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나의 미래는 오늘 내가 무엇을 결정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좁은 문과 좁은 길은 찾는 이가 소수이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비록 좁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를 따르기로 선택하느냐, 다수의 사람들이 따라가는 큰 문과 넓은 길이지만 멸망으로 인도하는 것을 선택하느냐의 선택이 매 순간 우리에게 도전적으로 주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과 말씀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될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신 30:20)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청종하며 또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의지하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다바크דַבַק는 ‘딱 붙어 있다, 고수하다, 가까이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바크דַבַק는 창세기 2:24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단어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한 몸이 되는 것이 다바크דַבַק입니다. 부부처럼 몸과 영혼이 서로 가까이하고 의지하여 하나로 딱 붙어 있는 것이 다바크דַבַק의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62:4에서 이스라엘을 헵시바, 쁄라라고 부르시며 그들이 하나님의 가장 아름다운 아내이며 또 영원히 그렇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아내로 삼으셨기 때문에 그래서 신부인 이스라엘을 향해 신랑인 하나님께 고정되어 붙어 있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슈아도 자신은 포도나무이며 우리는 가지라고 비유하시며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5:5).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을 때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예슈아는 우리가 그 말씀에 붙어 있어야 하고 붙어 있을 때 우리가 구하는 모든 것이 이뤄질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요 15:7). 그리고 우리가 붙어있어야 할 말씀은 아버지께서 예슈아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슈아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고 그리고 예슈아가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요 15:9-12).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듯이, 우리가 그리스도께 붙어있을 때 절로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께 다바크דַבַק하는 것, 그것이 생명 나무의 열매를 얻는 길입니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 15:6)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이유

여호와께서 인간과 맺은 첫 언약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맺은 언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흙으로 만들어 생기를 불어넣어 살아 있는 혼이 된 아담을 에덴-동산으로 인도하여 에덴-동산의 지성소의 상태를 섬기며 지키게 하시기 위해 거기 두셨으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어겼을 때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창 2:7-9, 15-17).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보내시면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약속을 주시고 희생제물된 가축의 가죽을 벗기고 그 가죽으로 그들을 입혀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과 맺은 두 번째 언약이라 볼 수 있으며 메시아를 통해 구원하신다는 원시복음(복음의 시초)이 됩니다. 이 언약에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류를 다시 에덴-동산으로 들여보내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의 계획이 압축적이면서 예언적으로 내포되어 있습니다(창 3:8-21).

그리고 음란과 우상숭배, 포악함과 부패로 가득 찬 온 땅을 홍수로 쓸어버리신 뒤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아들들과 더불어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않으시겠다는 무지개 언약을 맺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십니다. 이 때 언약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합니다(창 9:1-17).

아브라함을 에덴-동산의 땅으로 불러오신 후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은 일곱 번 반복됩니다. 아브라함의 혈통을 통한 한 민족이 하나님의 킹덤을 대표하는 민족으로 먼저 선택되고 그 민족을 통해 구원자 메시아가 오심으로 온 열방을 구원하겠다는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청사진을 확장해 나가십니다. 아브라함 한 사람과 맺으신 이 개인적인 언약은 이후 하나님이 맺으시는 다른 모든 언약의 기초가 됩니다. 이 언약은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후손뿐 아니라 천하 만민에게 효력을 미치는 영원한 언약의 기초입니다(창 12:2-3, 7-8; 시 47:9; 시 105:8-11; 갈 3:7-9,29). 이 언약은 이삭(창 26:3-5)과 야곱(창 28:13-15)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계속 이어져 내려갑니다.

약속대로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이스라엘이 한 민족이 되고 그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셔서 시나이 산에서 언약을 맺으십니다. 이 언약은 공동체적이며 민족적인 언약으로 한 사람이 아닌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하나님 앞에 부름받은 자들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복을 누리고 열방의 축복의 통로인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는 언약이며 이 율법의 언약은 ‘첫 언약’으로 불립니다.

그리고 시나이 산의 언약은 모압 평지 언약에서 다시 한번 반복, 갱신됨으로 이제 약속의 땅 즉, 에덴-동산의 땅으로 들어가야 하는 그들이 지켜야 할 것과 그들 앞에 복과 저주, 선과 악, 생명과 사망이 놓여 있음을 말씀하시며 그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뤄갈 왕국 백성으로서 책임감 있게 살아갈 선택과 결단을 촉구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요 하나님의 킹덤의 모델이 되는 왕국을 세운 다윗에게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에게 영원한 왕위를 약속하시는 언약을 맺으셨고 이 다윗의 언약은 다윗의 후손 예슈아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서 영원 무궁히 하나님 왕국을 다스리실 메시아의 재림과 천년 왕국으로 성취될 것입니다.

예레미야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실현해 보도록 그 땅을 맡았던 이스라엘이 결국 잘못된 선택 즉, 우상숭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멸망하고 열방으로 흩어지더라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을 완전히 다 버리지는 아니하시고 날이 이르면 이스라엘 나라가 다시 세워지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새 언약을 그들의 마음에 새겨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렘 31:31-37).

하나님께서 아담으로부터 예레미야에 이르기까지 맺으신 이 모든 언약은 예슈아로 집결되었다가 예슈아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을 통해서 이 새 언약이 열방을 향하여 적용되게 됩니다. 새 언약을 체결해주신 예슈아를 통해 온 인류를 구원으로 초대하는 문이 활짝 열렸고, 이제 다시 오실 예슈아께서 에덴-동산인 약속의 땅, 약속의 땅의 중심인 예루살렘에 만왕의 왕으로 입성하셔서 메시아 왕국을 시작하심으로 완전하게 성취하실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주야로 잠잠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 예루살렘을 기억나게 하실 파수꾼의 외침이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사 62:6-7).

파수꾼들은 성벽 위에 서서 예배와 경배, 선포와 부르짖음과 간구 그리고 소식을 알림으로 하나님의 모든 언약이 성취되어질 때까지 쉬지 않고 외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 안에 서서 하나님으로 예루살렘을 기억하게 하시도록 종일 잠잠치 않고 말하는 파수꾼이며 이것이 우리의 시대적 사명입니다.

모압 평지에서 이제 곧 들어갈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언약 안에 서 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오늘날 우리도 그 안식으로 들어갈 때를 눈 앞에 바라보며 새 언약 안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루살렘 성문으로 나아가 길을 닦고 큰 길을 수축하고 돌을 제하고 만민을 위한 기치를 들어야 합니다(사 62:10). 만왕의 왕의 귀환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왕의 귀환을 위해 하나님은 먼저 흩어진 유대인들을 약속의 땅에 모으실 것이고(신 30:5) 그리고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택하신 자들을 공중으로 모으실 것입니다(마 24:31). 그리고 예루살렘의 보좌에 좌정하실 예슈아께서 영광스러운 시온 산에 모인 자들에게 상급을 주시며 그 나라를 맡겨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왕 노릇 하게 하실 것입니다.

출처: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적 관점으로 읽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Quoting from Reading the Torah Portion from the Hebrew Perspective in Jerusalem (Gen. Exod. Lev. Num. De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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