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nd 봐야크헬

ויקהל

그리고 그가 불러모았다

파라샤 Exodus (출) 35:1-38:20

하프타라 1 Kings (왕상) 7:13-26, 40-50

브리트 하다샤 Hebrews (히) 9:1-11 / Matthew (마) 17: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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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야크엘 ויקהל

모세는 이집트에서부터 배어 있던 습성들 중 생각과 감정 안에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던 우상숭배의 본성으로 인해 심판의 멸망 직전까지 갔다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 가운데 용서를 받고 다시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모았습니다. 여기서 백성은 회중이란 단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회중이라는 히브리어 단어 에다עדה는 에드עד에서 파생된 말로 ‘증거, 증인(testimony, witness)’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그분이 하신 일을 목도하고 바라본 사람들, 그것을 증거할 수 있는 증인들이 모인 회중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임에 에다עדה라는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로 죄를 사함 받고 구원받은 자들,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며 기적인지 경험한 자들, 구원의 과정을 통해 알게 된 하나님을 증거하는 자들, 이런 자들의 모임이 회중(에다דהע)입니다.

또한 22주간 토라포션의 주제 ‘봐야크엘, 그리고 그가 불러 모았다’라는 단어의 야크헬יקהל은 카할קהל이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그 뜻은 종교적, 혹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불러 모은 모임을 의미합니다. 특별한 목적을 위해 주님이 불러낸 자들의 모임이 카할קהל 입니다. 카할קהל이라는 단어 안에는 목소리 또는 음성을 의미하는 콜קוֹל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내 반석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우리라”(마16:18)고 말씀하셨는데 교회라는 말은 헬라어 에클레시아εκκλησια로 ‘밖으로 불러낸 자들’이란 뜻이며 구약의 카할은 바로 신약의 에클레시아(교회)와 같은 의미입니다. 스데반은 사도행전 7:38에서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자기에게 말씀을 전해주던 그 천사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다고 하며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모여있던 카할קהל을 에클레시아εκκλησια와 같은 것으로 이해하며 말했습니다. 히브리어 카할은 이집트에서 구출해내어 광야로 불러 모은 구약의 광야 교회이며 메시아의 몸입니다. 헬라어 에클레시아는 어둠에서 빛으로 구원하고 사탄의 권세에서 그리스도께로 불러낸 신약의 이스라엘이며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는 어떤 사람들의 모임입니까?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고 아는 사람들 즉, 증인들의 모임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회중을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으로 이집트에서부터 불러내어 그분의 이끌어 주시는 사랑으로 시나이 산 아래로 모이게 하셨듯이, 오늘 날 교회도 그리스도께서 어둠과 사단의 권세아래서 불러내어 십자가의 자비와 사랑으로 죄사함과 속량을 통해 빛과 하나님의 권세 안으로 불러 모으셨습니다. 또한 열방을 축복하시기 위해, 열방에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게 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고 불러 모으신 것처럼, 하나님은 오늘날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을 열방에 전하게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 부름 받은 회중 들의 모임이 카할קהל 곧,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자신을 계시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위해 부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 카할, 에클레시아, 교회의 정체성입니다.

하나님의 미쉬칸을 짓기 위해 부름 받은 카할

하나님의 일을 목도하고 증거할 수 있는 사람들인 회중(카할קהל)에게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하나님이 하신 명령 중 안식일, 샤밭에 대한 것을 가장 먼저 전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 안에 들어와 있는 자들이 모인 회중의 정체성이 샤밭이기 때문입니다. 샤밭으로 하나님과의 영원한 언약과 표징을 삼은 회중들(카할קהל)은 이제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미쉬칸을 짓기 위한 작업에 들어갑니다. 마음이 감동된 자들과 자원하는 자들이 테루마(예물)를 가지고 모였습니다(출35:5,10,21,25,26). 마음이 슬기로운 여인들이 하나님께 예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재주가 충만한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있었습니다(출35:30-36:1). 하나님께 부름받아 모인 회중들(카할)은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거하실 미쉬칸을 짓기 위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것을 기쁜 마음으로 들고 나아왔습니다. 자기 의로 가득차 있는 자, 욕심 있는 자, 자기 것을 이루려는 자들은 하나님의 미쉬칸, 거룩한 장막인 성막을 세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거하시게 하고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집이 아닌 자신의 집을 세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집을 성령의 감동이 있고, 기쁨으로 자원하며, 지혜로운 자들을 통해 세우십니다. 그리고 이런 자들을 통해 세우실 때는 그 예물이 차고 넘칩니다(출36:7). 하나님의 일을 기쁨으로 할 때는 모자라지 않습니다. 의무와 억지로, 자기들이 세워놓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할 때는 모자라고 부족한 것만 같고, 기쁨과 만족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처소를 하나님께 감동된 자들과 함께 세우십니다.

출애굽기 25:1-31:11까지 성막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자세하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대로 하나님의 성막 미쉬칸(משׁכן)이 세워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충만하며 기쁜 마음으로 자원한 자들을 통해 모세에게 말씀하신 그 모습 그대로 모든 것이 만들어집니다.

성막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이 땅에 거하실 장소,그분의 집(처소)입니다. 쉐키나שכינה(성령)이신 하나님이 쇼켄(שוכן거하실)할 장소인 미쉬칸משׁכן(성막)을 짓는 일이기에 온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성막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주님이 거하실 장막인 미쉬칸이 최종적으로 우리 안에 세워질 계획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모세가 지은 성막을 통해 하나님이 이 땅에 친히 그분의 백성과 거하심을 보여주셨다면 예수님을 통해 이제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것임을 보여주십니다. 결국 온 우주에 충만하신 하나님이 사람 안에 거하겠다고 결정하신 것을 성막을 통해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두 번에 걸쳐 성막을 짓는 과정을 반복해서 기록으로 남기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너무 중요한 일이 었기에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이 보여주신 설계도에 따라 명하신 대로 만들어가야 하며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함을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회중(카할, קהל)을 불러 모으시고 그들을 통해 미쉬칸을 짓게 하셨으며 그들 가운데 거할 처소로 삼으셨습니다. 에클레시아(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실 하나님의 성전이 되기 위해 부름 받은 자들의 모임입니다. 성막이 거룩함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처럼 교회인 우리도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로서 거룩함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마땅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기 위해 새로운 길, 영생으로 나아가는 길을 내셨습니다. 그 길을 통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고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존귀한 사람들이 모여 새 예루살렘이 됩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올 때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계21:2). 새 예루살렘은 우리 모두 가 다 함께 모여서 이루게 될 최종적인 모습의 지성소입니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 21장에서 새 예루살렘을 자세히 묘사하면서 최종 완성된 새 예루살렘을 이미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새 예루살렘에 이미 내가 있습니다. 나 한 사람이 빠지면 새 예루살렘이 온전히 이뤄질 수 없고 완성될 수 없습니다. 이미 먼저 가신 믿음의 선진 들은 우리가 달려야 할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고 한 명도 빠짐없이 다 최종 목적지에 모이게 되길 기대하고 바라며 응원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이 없으면 그들도 완성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히11:40). 그만큼 우리는 존귀하고 거룩한 존재입니다.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doing) 하나님의 영광이 내 안에 거하겠다고 말씀하셨기에 그분이 거하시는 존재인 것만으로도(being) 나는 존귀하고 거룩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부터 너는 지성소이다. 아름다운 지성소의 상태를 항상 유지하며 살아라. 하늘과 땅이 연결된 상태가 항상 활성화되도록 매일 노력해야 한다.

항상 하늘 에덴과 땅 동산이 하나가 된 상태로 살아라. 지금부터 새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너가 지성소임을 항상 인식하며 살아라"

예슈아의 신부들,

영원한 미쉬케놑

솔로몬은 두로사람 히람과 함께 성전을 세웠습니다. 이동식 성전인 모세의 성막(미쉬칸 משׁכן)은 오롯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웠지만 붙박이 성전인 솔로몬의 성전(미크다쉬 מקדש)은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 건축가 두로 사람 히람과(왕상7:13) 두로 왕 히람이(왕상5:1) 보내준 재료들로 함께 세워집니다. 하나님의 집을 세우려는 이방인 히람에게도 하나님은 지혜와 총명과 재주를 부어 주셨습니다(왕상7:14).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성막과 성전이 어떻게 지어지는지 보여주셨다면 이제 새 예루살렘, 새 성전은 온 열방 중에서 사람 성소가 된 자들이 모두 참여하여서 그들이 살아 있는 돌이 되어 함께 지어질 것입니다. 그 성전은 바로 예슈아를 메시아로 고백하는 그의 신부들이 될 것입니다. 앞서 만들어졌던 성막과 성전은 올람 하티쿤(천년왕국)이 올 때까지만 유효하게 적용될 것이었습니다(히9:10). 그러나 이제 주님께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을 세우실 것입니다(히9:11).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단번에 드려진 제사로 인해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고(히9:12) 이제 자기를 고대하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실 것입니다(히9:28).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과 완전히 연합된 영으로서 부활의 몸입고 이미 영원한 미쉬케놑(성막들 משׁכנות)이 될 것입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21:2)

출처: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적 관점으로 읽는 출애굽기 

Quoting from Reading the Torah Portion from the Hebrew Perspective in Jerusalem (Gen. Exod. Lev. Num. De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