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st 키 티샤

כי תשא

네가 들어올릴 때

파라샤 Exodus (출) 30:11-34:35

하프타라 1 Kings (왕상) 18:1-39

브리트 하다샤 2 Corinthians (고후) 3:1-18 / Mark (막) 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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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티싸 כי תשא

“כִּי תִשָּׂא אֶת־ רֹאשׁ בְּנֵי־ יִשְׂרָאֵל לִפְקֻדֵיהֶם”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조사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들을 계수할 때에 자기의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것을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질병이 없게 하려 함이라.” (출30:12)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계수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계수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티싸תשּא의 동사 원형 나싸נשׂא는 ‘취하다, 가져가다(take)’는 뜻과 함께 ‘들어 올리다(lift up)’는 뜻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계수하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올려드린 사람들을 하나님은 완전히 하나님의 것으로 취하십니다. 그러나 여전히 죄인인 부정한 자가 하나님께 올려질 수 없기에 죄를 대속하고 목숨을 위한 몸값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생명의 속전으로 성소를 위해 반세켈을 내도록 하십니다.

속전은 히브리어로 코페르כֹּפֶר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카파르כָפַרְ, ‘덮다’ 그리고 키파르כִפֶּר, ‘ 죄를 속하다’는 단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즉, 속전이란 죄를 속하기 위해 지불하는 값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의 속전으로 자기 생명을 대가로 지불하셨고 우리를 하나님께 들어 올리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올려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고 들려 올려지신 예수님처럼 하늘로 올려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올라갈 수 없도록 우리를 끌어내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끌어내림에 반응하지 말고 하늘을 바라보며 고양高揚(티싸תשא)되어야 합니다. 우린 이미 속량되었고 그로 인해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질 수 있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우리의 존재가 이미 하나님 앞에 올려 드려진 자, 하늘에서 이미 계수되어진 자라는 것을 인식하고 깊은 예배로 들어갈 때 보좌에 올라가 하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께 고양되어 보좌로 나아가게 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아래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우상 숭배하는 것을 본 모세는 백성들의 진영 앞에 서서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누구든지 나아오라”고 외칩니다. 그 때 레위 자손들이 모두 모여 모세 앞에 섭니다. 그 날, 여호와의 편에 선 레위 지파들이 칼을 들어 방자히 행한 백성들을 죽임으로 하나님께 더 헌신되여 레위(레뷔 לוי, 연합된)라는 이름의 뜻대로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께 바짝 붙어 하나님께 협력하고 하나님께 더 헌신되게 됩니다(출32:29). 이 일 후에 하나님은 다시 모든 지파의 장자들의 의무를 레위인에게 대신하도록 돌리시고 레위인을 하나님께 속한 특별한 자신의 소유로 따로 챙기셔서 성막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게 하십니다(민3:41,45).

북이스라엘이 하나님도 포기하지 않고 바알과 아세라도 섬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엘리야도 외칩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왕상 18:21)

어리석은 백성은 분별이 되지 않고 눈과 귀가 멀어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늘 머뭇머뭇합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그런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외칩니다. “여호와의 편에 서라! 하나님을 선택하라!” 우리에게도 이런 선택의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 하나님의 편에 서야 할 순간, 진리의 편에 서야 할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 확실하게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사람은 모세처럼, 엘리야처럼 강력하게 여호와가 하나님임을 선포하고 따라오라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수multitude를 통해 일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남은 자remnant를 찾고 끝까지 하나님을 향한 사랑, 정절을 지킨 자들을 통해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많은 순간 다수multitude에 압도당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수를 능가하시는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면서 그분의 영광 앞에 서게 되면 우리는 세상의 숫자에 압도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확실하게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편이 아닌 사람의 편에 서서 사람의 입장을 살펴주는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더욱 방자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회개의 중보를 하고 하나님께 방자히 행하는 것들은 단번에 잘라버리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은 사람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사람을 따르지 않고 확실하게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훈련하고 분별함을 배워야 합니다. 그럴 때에 모든 사람들이 여호와, 바로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왕상18:39)

영광에서 영광으로..

모세의 간절한 중보로 인하여 하나님은 마음을 바꾸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 가운데 모세는 하나님께 영광을 보여 달라고 요청합니다(출33:18). 모세가 다시 돌판을 준비하여 시내산으로 올라갔을 때 하나님께서 강림하셔서 자신의 이름을 선포하시고 자신의 성품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여 주십니다(출34:5-7). 그리고 다시 언약을 세우십니다. 모세가 증거의 두 돌판을 들고 시내산을 내려 왔을 때 그의 얼굴에는 광채로 가득했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여호와와 말하였기때문입니다(출34:29).

하나님이 모세의 얼굴에 비춰주신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에게도 허락하셨습니다. 더 이상 돌판에 새겨진 것이 아닌 성령으로 우리 마음 판에 그분의 토라를 새기셨으며(고후3:3) 우리에게 영의 직분과 의의 직분을 맡기시고 영광으로 더욱 넘치게 하셨습니다(고후3:9). 수건이 모세의 얼굴을 가렸던 것처럼 그들의 마음을 아직도 덮고 있는 그 수건(베일)이 그들이 구약을 읽을 때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고후3:14-16). 그러나 언제든지 그들도 다시 하나님의 때에 예슈아께로 돌아오게 되면 그 마음을 덮었던 베일이 벗겨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것 입니다. 

우상 신전이 가득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이 메시아이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강력한 선포가 있은 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 가십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변형되시는데 옷에 광채가 나고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정도로 희게 변모하십니다(막9:3). 시내산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변화된 것처럼 예수님도 높은 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변화됩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를 나누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 다(막9:7). 모세의 얼굴의 광채와 예수님의 변형된 모습은 마지막 날에 우리가 그와 같을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변형된 모습 이후에 제자들에게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을 계시하십니다. 영광에서 영광으로 나아가는 길에는 십자가의 길이 있습니다. 그것을 통과해서 우리는 영광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 길을 먼저 걸어가시고 우리에게 열어 주신 예수님을 따라 우리도 영화롭게 변화될 그 날을 기다립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3:18)

출처: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적 관점으로 읽는 출애굽기 

Quoting from Reading the Torah Portion from the Hebrew Perspective in Jerusalem (Gen. Exod. Lev. Num. De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