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th 보
בֹּא
들어오라
파라샤 Exodus (출) 10:1-13:16
하프타라 Jeremiah (렘) 46:13-28
브리트 하다샤 Romans (롬) 9:14-29 / John (요) 19:31-37
구원의 표징, 심판의 표징 그리고 표징을 통한 세대 전수
하나님은 모세에게 “보בֹּא, 들어오라”(출10:1)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이 들어오라 명령하신 곳은 파라오 앞입니다. 한글 성경에는 ‘들어가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보בֹּא’는 ‘들어오라’는 의미로 이는 하나님이 이미 그곳에 계셔서 준비하고 있으니 담대하게파라오 앞으로 들어오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고 말하며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믿음이 온전하지 못했던 모세는 재앙을 통해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을 확실하게 알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되면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견고해진 모세는 어느새 당당하게 파라오 앞에 서게 됩니다. 이 재앙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게 하는 이집트를 심판할 것을 확실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집트에 내리신 재앙은 그들에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표징이었습니다.
표징이라는 히브리어 오트אוֹת는 ‘기억, 사인, 경고, 증거’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트אוֹת는 출애굽기 10:1, 2; 12:13; 13:9; 13:16에 다섯 번 나옵니다. 출애굽기 10:1의 표징은 이집트 사람들을 위한 표징이었고, 10:2과 13:9, 13:16의 표징은 이스라엘 백성, 특별히 그들의 자녀들을 위한 표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표징은 이집트를 향한 표징과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표징, 두 방향과 두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재앙이었지만 이집트를 향해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 때 어떤 심판이 있을 것인지에 대한 경고의 표징으로, 그러나 구원받을 이스라엘 자손을 향해서는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기억하게 하기 위한 구원의 표징으로 나타내 보이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확실하게 기억에 남을 표징을 보여주신 또 하나의 이유는 세상을 향한 심판이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구원이 되게 하신 일이 이스라엘의 아들과 그들의 자손의 귀에 전해짐으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세대에서 세대로 알리시기 위함이었습니다(출10:2). 자녀들에게 들려지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은 아버지의 세대에서 자녀의 세대로 흘러가는 믿음의 유업이 됩니다. 아담에서부터 노아까지,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 아브라함부터 모세까지, 모세부터 다윗까지, 다윗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늘날까지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믿음의 이야기들이 흘러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철저히 지키고자 하는 세대 전수는 하나님의 명령이며 그들이 생명만큼 소중하게 여기는 믿음의 유업입니다. 이들이 수 천 년간 믿음의 유업을 붙들었기 때문에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었던 야곱 곧, 이스라엘의 힘입니다.
이스라엘은 수 천년 동안 나라 없이 떠돌아다닐 때도 하나님이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하셨고 어떻게 다시 회복하실 것인지에 대해 매주의 샤밭שָׁבַת(안식일)과 절기들의 시간에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들을 가르쳐 왔습니다. 지금도 가정뿐 아니라 학교와 나라 전체가 다음 세대에게 자신들 민족에게 주어진 믿음의 이야기들을 계속 가르치고 전하고 있습니다.
자녀에게 하나님이 누구시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어떻게 구원하셨는지를 가르치고, 과거에 하나님이 행하신 일과 앞으로 하나님이 하실 일, 그리고 메시아 왕국 시대가 올 것과 영원 세상이 있게 될 것을 알게 하는 것은 앞선 세대에게 주어진 책임이며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파라오는 메뚜기 재앙 이후에 모세에게 아이들은 데려가지 말고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고 말하며 세대 간의 틈새를 벌려 놓으려는 교묘한 수를 썼습니다.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와 너희의 어린 아이들을 보내면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함과 같으니라 보라 그것이 너희에게는 나쁜 것이니라 그렇게 하지 말고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이것이 너희가 구하는 바니라 이에 그들이 바로 앞에서 쫓겨나니라"(출10:10-11)
사탄은 이와 같이 아버지의 마음과 자녀의 마음을 단절시키고 갈라 놓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세대가 단절되면 신앙의 전승도, 언약의 연속성도 단절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거듭 너희 자녀와 함께 하며 그들에게 계속 가르치라고 명령하십니다. 마지막 때 그 어느 것보다도 중요한 하나님의 일은 아버지의 마음이 자녀에게로 자녀의 마음이 아버지에게로 향하게 함으로써 세대 간의 연합으로 하나가 되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모든 것은 그분의 표징이며 이것은 반드시 세대 전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어떤 믿음의 이야기들을 들었는지에 따라 그들의 믿음이 자라감을 기억해야 하며 영원한 상속이 이어질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표징은 세상을 향해서는 심판으로(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서는 구원으로(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세상에서 나타나고 있는 모든 환난과 재앙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면서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첫째, 온 땅을 통치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그분의 공의에 따라 심판하시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원하신다.
둘째, 이스라엘 자손이 거주하는 고센 땅에는 어둠도 죽음도 없고 빛과 생명이 있었듯이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구별하여 보호하신다.
재앙은 이집트 땅 전역에 내렸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에는 재앙이 덮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구별하여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두려워함으로 그 영향력 아래서 벗어나기를 주저한다면 우리는 세상에 내려지는 재앙의 영향력 안에 함께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기를 사모하며 날마다 그분의 임재를 갈망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완전한 보호 아래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 자들은 세상이 뒤집히고 흔들려도 요동함이 없습니다(시27:3-5). 사람들이 좋아하고 인정하는 것에 마음을 두지 말고 하나님이 옳다고 말씀하시는 것에 “나도 동의합니다”라고 하고, 하나님이 틀렸다고 말씀하시는 것에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세상으로 편향되려는 나의 의지를 죽이고 완전히 그분 앞에 복종하면 우리는 구원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페싸흐 פסח - 유월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의 표징인 재앙들을 지나오면서 이집트의 신하들은 이미 이집트가 망한 줄을 알았습니다(출10:7). 그러나 파라오만은 여전히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세에게 거듭 타협을 제안합니다. 어린아이들까지 가는 것이 너희에게 나쁘니 장정만 가라고 합니다(출10:11). 흑암의 재앙이 고센 땅에 적용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양과 소, 재산들은 놔두고 가라는 타협안도 제안합니다(출10:24). 그러나 그 어떤 타협안도 모세는 받아들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이 완전하게 이루어질 때까지 파라오와 협상하지 않습니다. 파라오가 끝까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완강하게 하면 할수 록 오히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로부터 은혜를 받아 은금 패물들을 받게 하셨을 뿐만 아닐 모세는 이집트 땅에서 파라오의 신하들과 이집트의 백성의 눈에 아주 위대한 인물로 보이게 되었습니다(출 11:3).
그리고 하나님이 더 놀라운 기적을 더하십니다(출11:9). 그 기적은 페싸흐 פסח, 유월절이었습니다. 페싸흐פסח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여주시는 표징의 클라이맥스입니다. 앞선 9가지 재앙들을 통해 하나님은 여러 가지 표징을 이집트와 이스라엘 자손 모두에게 보여주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지만 끝까지 깨닫지 못하는 고집스러운 파라오로 인해 결국은 이집트 전역에 장자의 죽음이라는 재앙을 내릴 것이라고 최후의 통첩을 날리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을 향하여서는 장자의 죽음이라는 재앙이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넘어가게 될 것(페싸흐פסח)을 말씀하십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아가게 하는 표징이 되고 이집트와 이스라엘 자손을 완전히 구별하는 표징이 됩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구원의 표징인 유월절 어린 양의 피의 사건이 그들의 자녀들이 기억하는 표징이 될 수 있도록 유월절 예식을 지킬 때 "이후에 너의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출12:26-27) 하고 물으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자녀에게 말해 주도록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절기인 유월절을 영원한 규례로 삼아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키도록 명령하십니다(출12:14,24). 모든 재앙들이 하나님의 표 징이었지만 장자의 죽음이라는 재앙 가운데 유월절 어린 양의 피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죽음을 넘어 이집트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는 영원한 구원의 표징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페싸흐פסח, 유월절을 영원한 규례가 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을 기억하게 하셨고, 이 구원의 표징이 있었던 아비브 월을 한 해의 첫 달로 삼아 구속이 이루어진 날로 기념하게 하셨습니다.
430년의 이집트의 노예살이, 세상살이에서 하나님의 킹덤으로 넘어온(폐싸흐פסח, 유월) 이스라엘 자손은 사람의 눈으로는 그저 노예에서 탈출하는 민족일 뿐이었지만 주님이 가지신 믿음의 눈으로는 여호와의 군대가 되어 이집트에서 나왔습니다(출12:41). 이스라엘 자손들이 완전히 하나님의 킹덤으로 넘어오기까지 하나님을 의심하고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 모세와 아론을 믿지 못하는 과정들이 있었습니다. 이 과정은 마치 세상에서 하나님의 킹덤으로 넘어오지 못하는 아합시대 엘리야 앞에 서있는 북이스라엘 자손의 상태와 겹쳐집니다. 엘리야는 세상이 신으로 숭배하는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서 우왕좌 왕하는 이스라엘 자손을 향해 "너희가 어느 때까지 머뭇머뭇 하겠느냐"(왕상 18:21)라고 외칩니다. 여기서 '머뭇머뭇하다'라는 히브리어 단어가 페싸흐פסח 입니다. 엘리야가 북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외친 것은 페싸흐פסח, 하나님의 킹덤으로 넘어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유월은 세상에서 노예로 묶여 살면서 괴로워하는 백성들을 향해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를 보여 주시는 구원과 영광의 표징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페싸흐פסח, 유월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기 위해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표징으로 삼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허락하신 어린 양의 피는 수 천 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적용되는 영원한 구원의 표징이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완전히 구속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전히 우리 안에 세상에 매여 있는 부분이 있다면 하나님 나라로 페싸흐פסח 하십시오. 지금 건너는 자는 이후에 불이 섞인 유리 바다를 건널 것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이것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담기 위해 준비된 긍휼의 그릇
하나님은 출애굽의 과정 가운데 “내가 여호와임을 알지라”(출6:7)고 말씀하시며 이집트(세상)의 신과 완전히 다른 우주적 하나님이심을 명확하게 드러내십니다. 그러나 세상은 여호와 하나님이 나타나 그 백성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과정 가운데 더 악하게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며 구원이 온전히 이뤄지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킹덤이 부분적으로만 이뤄지도록 저항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과 통치가 가까워지는 마지막 때에는 이렇게 이집트와 이스라엘처럼 세상 정부와 하나님의 킹덤으로 분리될 것입니다. 마지막 때는 땅과 하늘, 심판과 구원, 완강함과 겸손함, 세상 정부와 하나님의 킹덤의 대비가 극명해질 것입니다. 이 가운데서 우리는 더 이상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 머뭇거리거나 우왕좌왕하거나 머무를 수 없을 것이며 우리의 입장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향해 파라오에게 들어오라고 하셨을 때 모세는 파라오의 미묘한 회유와 타협에도 굴하지 않았고 어느 것 하나 빼앗기지 않고 전부 다 되찾아 가지고 나왔습니다. 사탄은 끝까지 교묘하게 섞여 들어와 보기 좋고 먹기 좋은 것을 우리에게 내밀며 선택하도록 미혹합니다. 철저하게 내 안에 섞여 있는 생각과 감정들이 제거되지 않으면 우리는 그 미혹에 넘어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매모호한 태도를 버리고 완전히 하나님의 영역으로 들어와 입장을 분명하게 할 것을 결단하고 하나님의 입장에 확고히 서야 합니다. 세상을 향한 우리의 담대한 믿음은 모세가 파라오 앞에 담대하게 들어온 것처럼 하나님이 여호와 이심을 나타내는 표징이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에 눌리지 않고 오히려 세상 앞에서 그들의 눈에 위대하게 보이게 될 것입니다(출11:3).
출이집트 이후 이집트는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해 한 번 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벨론 시대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그 교만함의 뿌리를 잘라내지 못해 결국 하나님은 바벨론을 통해 이집트를 또 다시 심판하였습니다(렘46:13-26). 그리고 이스라엘에게는 완전한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렘46:27-28). 과거 이집트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마지막 날 세상 정부를 향한 심판으로 확장된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세상을 향한 심판의 과정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모두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미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이라 할지라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십니다(롬9:22). 끝까지 구원의 기회를 허락하시며 정하신 때까지 기다리고 참으십니다.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의 악함을 견뎌내야 하는 고난이 있겠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받기로 예비하신 긍휼의 그릇’에 그분의 영광을 풍성하게 담아 주실 것입니다(롬9:23). ‘하나님의 영광을 받기로 예비하신 긍휼의 그릇’은 유대인과 이방인 가운데서 부름 받은 자들인 바로 우리입니다(롬9:24).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롬9:23-24)
파라오가 완강할수록 모세가 위대해진 것처럼, 세상이 완강하고 악할수록 하나님의 킹덤을 위해 준비되고 예비된 그릇들,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그 영광을 풍성하게 담으시며 하나님과 같이 영광스러운 자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8 이 영광을 받기로 예비하신 그릇인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담아내기에 여전히 온전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그릇이지만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심(긍휼)으로 합당하지 못한 자에게 그 영광의 풍성함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 그릇의 이름은 하나님의 영광을 받기로 미리 작정된 ‘긍휼의 그릇’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런 긍휼의 그릇, 영광을 담는 그릇이 되게 하시려고 세상 가운데서 불러 내주시고 이집트 땅에 10가지 재앙을 부으셨습니다. 그리고 유월절(페싸흐פֶּסח)을 통하여 우리를 그 피로 사시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주셨고 영원전부터 작정하신 대로 넘치는 영광을 부으심으로 그분의 영광의 풍성함이 어떠한지 알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하는 우리는 마침내 영광에서 더 큰 영광으로 영화롭게 변모될 것입니다.
출처: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적 관점으로 읽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Quoting from Reading the Torah Portion from the Hebrew Perspective in Jerusalem (Gen. Exod. Lev. Num. De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