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th 베샬라흐

בשלַּח

그가 보냈을 때

파라샤 Exodus (출) 13:17-17:16

하프타라 Judges (삿) 4:4-5:31

브리트 하다샤 Revelation (계) 19:1-20:6 / Matthew (마) 14: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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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의 병거, 베야드 라마בְּיָד רָמָה, 홍해

이집트(세상)는 심판의 재앙 가운데서 여호와 하나님의 전능함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하나님의 백성을 잡으러 뒤쫓아옵니다(출14:6-8). 여호와께서 ‘완악하게 하셨다’는 히브리어 봐예하제크וַיְחָזֵֵּק는 하자크חָזַק의 피엘(강조)동사로 ‘강하게 만들다’는 뜻도 있고 ‘딱딱하게 하다, 굳게 하다, 담대하게 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 있으면 볼 수도 들을 수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자기 고집을 멈추지 않습니다. 마음이 완악한 파라오는 하나님께 또 다시 담대하게 도전합니다.

열 가지 재앙의 클라이맥스인 유월절은 구원의 여정의 끝이 아니라 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담대하게 미쳐 발악한 이집트는 이스라엘을 뒤쫓아왔고 뒤에는 이집트의 군대,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은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아무런 대안을 가질 수 없는 극적인 상황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권능의 높은 손(야드 라마יָד רמָה)을 드셔서 하나님의 백성과 그들의 대적들 사이를 붉은 바다(홍해)로 갈라 놓습니다. 하나님이 이와 같이 파라오의 마음이 완악하도록 허락하신 이유는 파라오와 그 군대를 통하여 영광을 얻으시고 이집트 사람들이 하나님이 여호와이신 줄을 확실히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출14:4). 결국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세상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의 나타내심입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בּיָד רֹמָה) 나갔음이라”(출14:8)

그러나 끝까지 뒤쫓아온 파라오와 그 병거를 보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심히 두려워하게 됩니다(출14:10). 이스라 엘 자손은 분명히 이집트에서 담대히 나왔습니다(출14:8). 여기서 ‘담대히’라고 의역된 단어의 히브리어는 베야드 라마בּיָד רֹמָה인데 이것은 ‘높은 손으로’, ‘높이 들려진 손으로’라는 뜻입니다. 이집트 군대가 이스라엘 자손들의 뒤를 쫓아오고 있었지만 여호와의 야드 라마יָד רֹמָה(높이 들려진 손, 높은 손,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도움의 손길)가 이스라엘 자손을 계속 나아가게 도우셨습니다. 그들이 담대히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의 높이 들려진 손(야드 라마יָד רמָה)이 그들을 친히 이끄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높고 전능하신 손의 인도하심을 직접 경험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이집트가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높은 손으로(베야드 라마בְּיָד רמָה) 인도함을 받고 있었음에도 홍해와 파라오의 병거 앞에서 마음이 무너져 모세를 향해 공격하고 달려듭니다.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출14:12)

여호와의 높이 들린 손(베야드 라마)을 경험하고 그 임재가 여전히 자기 앞에 있어도 세상 앞에서 금방 두려움을 느껴 원망의 소리를 쏟아 놓은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하나님의 기적과 보호하심이 내 삶을 채우고 나의 구원을 이루셨음을 알지만 세상 앞에서 다시 두려움과 압박을 느끼는 모습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는 홍해, 뒤에는 이집트의 병거가 쫓아옴을 보고 모세에게 탓을 돌리며 누군가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연약함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여전히 높은 손을 드셔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경이로운 사랑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손을 내밀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높은 손의 능력으로 주의 백성을 홍해 건너편으로 이끌어 옮겨주셨습니다. 파라오는 끝까지 자기의 병거들을 의지했지만 하나님의 높이 들린 손은 그들을 바다 가운데 맥없이 수장되게 하셨습니다.

파라오와 그가 의지한 병거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나의 능력, 실력, 경험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집트의 왕자라는 신분을 내려놓고 나그네가 되어 모든 것을 비운 모세처럼 꼭 쥐고 있는 나의 손을 펴서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집요하게 쫓아오며 공격하고 그들을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 묶어두려 했던 이집트처럼 세상은 끝까지 우리를 쫓아오며 공격할 것이고 하나님 나라와 세상은 끊임없이 대립을 반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는 다시는 이집트를 보지 않게 될 것이며(출14:13) 바벨론은 영원히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계18:21). 하나님의 킹덤이 아브라함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이것을 끊임없이 방해하고 두려움을 주는 세상과의 대립 구조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국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할 것입니다. 죽음이 이집트를 덮쳐 큰 통곡이 있었어도 다시 고집을 피우고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쫓아온 파라오와 이집트의 모습이 앞으로 이 세상에서 일어날 일이 될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구름과 불 뒤에 숨기시고 보호하시며 그분의 높이 들린 손(베야드 라마)으로 세상을 완전히 뒤엎으시고 자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여 올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강하고 높은 손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끄십니다. 홍해 앞에서 파라오와 병거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협했지만 마지막 날에는 주의 백성들을 베야드 라마로 이끌어 올리시고 불이 섞인 유리 바다를 건너게 하실 것입니다. 예슈아와 그와 함께 흰말을 탄 백성들이 세상을 완전히 심판할 것입니다(계 19:11,14). 이것은 이미 정해진 일입니다.

반석의 물과 하늘의 만나

유월절 어린 양의 피와 홍해를 통해 전능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였고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통해 하나님의 현현하심을 보면서도 모세와 아론을 향해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 속에는 노예생활 중 자신들의 생각과 감정에 깊이 뿌리 박힌 부정적인 기대, 죽음에 대한 공포, 한편으로는 이집트 생활 중 누려온 육체적, 정서적 만족에 대한 갈망이 여전히 그들 가운데 가득한 것을 봅니다. 그들은 홍해 가운데 몰살당한 파라오의 병거를 보고 ‘하나님의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출14:31)고 말씀은 증거합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자신들 앞에 닥쳐온 광야생활의 고단함과 먹을 것과 마실 것의 결핍 앞에서 금방 소멸되고 맙니다. 그들의 반응은 지극히 육적입니다.

아무리 영적인 경험을 해도 혼이 충분히 건강하게 다뤄지지 않으면 받은 은혜를 한 번에 다 쏟아 버리게 됩니다. 영적 전쟁은 혼이라는 전쟁터에서 맹렬하게 치러지기 때문입니다. 물이 없다는 이유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것까지 시험하는 상황이 생깁니다(출17:7). 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와 다투면서 어디 한 번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지 보자라고 말합니다. 사탄이 우리 혼에 뿌려 놓은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불신은 삶 속에서 받은 상처들과 합하여 쓴 뿌리가 됩니다. 이 쓴 뿌리는 온갖 부정적인 기대와 추측,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게 만듭니다. 아무리 죽음 앞에서 기적을

경험하고 눈앞에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이 보이고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오고 바람에 메추라기가 날라와도 혼의 쓴 뿌리가 제거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를 시험하는 불신의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은 곧 자신이 옳다고 하는 자기 의와 교만이 됩니다. 교만과 자기 의는 정확하게 사탄의 타깃이 되어 우리를 휘두를 수 있는 빌미가 되게 합니다. 이 모든 것을 미리 아신 하나님은 그들의 쓴 뿌리를 다루시기 위해 가르치시고 시험하십니다. 자비의 하나님은 이들이 이렇게 밖에 반응할 수 없는 연약함도 이해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의 모든 요구를 들으시고 먹을 것과 마실 물을 넉넉하게 채워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들의 하나님이 되기로 결정하셨고 또 그들의 조상들과 약속한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이들을 향한 은혜를 멈추지 않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우리를 향한 자비와 긍휼을 멈추지 않게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다룸 받지 못한 혼의 영역 때문에 하나님을 불신하고 자기 의와 교만에 빠지는 우리를 인내로써 시험하시고 훈련하십니다. 완전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고 회복할 때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목이 말라 불평하는 백성들을 위해 모세에게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을 치라고 명하십니다.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출17:6)

반석은 히브리어로 쭈르צוּר라고 하는데 바위, 절벽을 의미합니다. 날카로운 큰 돌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겠다고 하십니다. 아무 바위나 치는 것이 아니라 하쭈르הַצּוּר, ‘그 바위’를 치라고 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정하신 ‘그 바위’ 위에 서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 바위’를 칩니다. 그리고 ‘그 바위’에서 모든 백성의 갈급함을 해결할 생명의 물이 터져 나옵니다.

‘그 바위’는 우리의 반석 되신 예슈아입니다. 예슈아는 초막절이 끝나는 다음 날 가장 큰 명절이라 불리는 날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7:37-38)고 외치십니다. 예슈아는 우리의 반석이시며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의 물의 근원 되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 바위’를 쳐서 물이 나오게 하라고 명령하심으로 ‘그 바위’가 우리의 반석이신 예슈아임을, 또한 반석에서 터져 나오는 생명의 물이 우리를 살리고 새롭게 하여 우리 안에서도 생명의 물이 터져 나오게 될 것임을 ‘그 바위’를 통해 예표하셨습니다. 하쭈르ה ַ צּוּר, 그 바위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생수를 공급하시는 예슈아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출16:4)

하나님이 하늘에서 비 같이 내려주신 양식 만나는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슈아, 그리고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주신 토라(말씀)를 의미합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고파할 때 하나님은 만나를 통해 그들의 육신을 채워 주시면서 동시에 그 만나가 하늘의 양식(말씀)이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약속의 땅을 마주하고 있는 모압 평야에서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을 향해 설교할 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고 강하게 가르쳐 줍니다(신8:3).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이 육신의 배가 채워졌기 때문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준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었고, 광야에서 그들이 훈련한 것이 바로 이 말씀을 훈련한 것이기에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도 계속 말씀으로 살아내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도 만나(말씀)를 하늘에서 내려 주시는 이유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율법(토라)을 준행하는지를 시험(나싸נָסֵה, 훈련)하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출16:4).

광야에서 배고파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하늘의 기적과 공급인 만나를 모세를 통해 내려주셨던 것처럼, 정치적 주권을 빼앗기고 종교적 타락으로 선한 지도자들이 드물어서 육신적 허기에 고통스러워했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그들의 배를 채워주자 예수님이 메시아라면 모세가 만나를 내려오게 한 것처럼 하늘의 만나와 같은 공급과 기적을 보여달라고 요청했습니다(요6:30-31). 예수님은 육신적 기대를 가진 유대인들을 향해 영적인 답을 주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요6:48)

만나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처럼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토라)을 하늘에서 땅을 향해 비와 같이 내려주신 것처럼 예수님은 생명의 말씀을 우리에게 쏟아부어 주십니다. 우리의 영의 양식을 위해 하늘에서 직접 내려오신 살아있는 떡, 만나이신 예수님을 먹으면 우리에게 영생이 주어집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요6:51)

모세의 노래와 어린 양의 혼인 잔치

하나님은 열 가지 재앙으로 이미 초토화된 이집트이지만 끝까지 집요하게 이스라엘을 쫓아가서 빼앗고 죽이려는 그들을 홍해에 몰아넣으심으로 완전한 승리를 이루십니다. 사탄은 호락호락 자기 패배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기회를 보고 또 기회를 봐서 끝까지 하나님의 백성을 쫓아가서 빼앗고 죽이려고 합니다. 이집트의 군대가 몰살됐어도 아말렉이 또 공격한 것이 그 예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공격해 올 때마다 번번이 사탄은 패배하고 하나님의 전능함과 영광이 더 드러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이집트가 의지하고 자랑하던 병거들을 홍해로 몰아넣으실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출14:13)

그렇게 하나님은 이집트를 완전하게 심판하십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마지막 날 세상 정부의 악하고 집요한 공격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불이 섞인 유리 바다를 건너 완전한 구원과 몸의 구속을 얻게 될 것입니다(계15:2). 홍해를 건넌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른 모세의 노래는(출15) 마지막 날 불이 섞인 유리 바다를 건넌 하나님의 백성들에 의해 불릴 어린 양의 노래와 함께 불리게 될 것입니다(계15:3-4).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집요하게 공격하고 핍박하는 바벨론을 완전히 멸하실 것입니다. 세상 짐승 정부와 거짓 선지자는 충신과 진실이신 예수님과 그의 성도들에 의해 완전히 멸절되고 심판 받아 영원히 꺼지지 않은 유황 불 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한 성도들은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세상을 다스릴 것입니다(계19:11-20:6).

이집트(정치적이며 종교적인 힘), 아말렉(약한 자들을 야비하게 공격), 가나안(악한 거래와 무역, 불의한 경제), 바벨론(혼잡한 연합), 음녀(음란한 연합), 세상(하나님을 대적하는 정부)은 완전히 심판 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만왕의 왕 예슈아를 통해 심판 받게 될 것입니다.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시며 강한 자로 장차 강림하실 여호와(사40:10) 앞에서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습니다(사40:15). 그분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며 그분은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같이 여기십니다(사40:17). 우리의 눈에 높고 대단해 보이는 힘은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겨우 심기웠고 겨우 뿌려졌으며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이 입김을 부시니 말라 회오리바람에 불려가는 지푸라기 같습니다(사40:24).

물론 이런 심판 직전에 우리는 엄청난 영적 압력과 저항에 부딪히게 됩니다. 뒤쫓아 오는 이집트의 병거, 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바다, 아말렉의 급습, 가나안의 철 병거 앞에서 우리는 두려움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적 압력과 저항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자리를 지키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랄 때 하나님은 직접 싸우십니다. 하나님이 지도자에게 바라시는 순종은 모세처럼 홍해 앞에서 지팡이를 드는 것, 산의 정상에 올라 손을 높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한 것처럼 보이는 행동이지만 이 행동 가운데 담겨있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하나님의 권능을 드러냅니다. 마지막 때는 믿음과 두려움의 싸움이 될 것입니다.

하박국 2:14에서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이 온 땅을 덮는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의 심판을 말씀하시면서도 또한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을 덮을 것이라 하십니다. 철저하게 높아져 있고 스스로가 신이라고 말하는 바벨론의 교만을 통해 이스라엘을 훈련시키시고 정신 차리게 하는 도구로 잠시 한 순간 사용하시지만 결국에 그 교만은 철저하게 심판 받고 멸망당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은 온 땅에 가득 덮게 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심판 받는 순간이 하나님의 나라에 있어서는 영광의 순간이 될 것입니다.

구원의 완성은 하나님의 주권에 있습니다. 구원의 시작과 과정 모두 하나님의 주권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시간을 기다리고 그분이 하시는 일을 보며 그분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리는 찬송과 경배가 우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마지막 날 일곱 진노의 대접이 땅에 부어지며 짐승과 거짓선지자, 바벨론과 큰 음녀가 완전히 심판을 받는 과정 중에 하늘에서 불려지는 놀라운 찬양이 바로 우리가 불러야 할 찬양이며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절정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는 그날을 바라보며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미리 이 찬양과 예배를 믿음으로 올려드립니다.

출처: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적 관점으로 읽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Quoting from Reading the Torah Portion from the Hebrew Perspective in Jerusalem (Gen. Exod. Lev. Num. De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