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th 이트로
יִתְרֹו
이드로
파라샤 Exodus (출) 18:1-20:23
하프타라 Isaiah (사) 6:1-7:6, 9:6-7
브리트 하다샤 Matthew (마) 5:8-20 / Matthew (마) 19: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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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로
창세기 25:1에서 아브라함은 사라가 죽은 후, 후처인 그두라를 통해 자녀들을 더 많이 얻게 됩니다. 그두라의 자녀들은 아브라함이 죽기 전에 유산을 받고 아브라함으로부터 독립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이 아들 이삭을 떠나 먼 동방의 땅으로 향하여 가서 살게 하였습니다(창25:6). 이삭과 리브가는 그 땅과 많은 자손, 여자의 씨에 대한 약속을 이어받은 자들이었고 그들이 이뤄야 할 사명이 있었기에 후처의 아들들과 다툼이나 충돌을 막기 위해 아브라함은 그들을 미리 동방의 땅으로 멀리 떠나보냅니다. 그두라의 아들들 중에는 미디안이 있었는데 그는 후에 미디안 족속의 조상이 됩니다(창25:4). 이드로는 바로 이 미디안 족속의 제사장이었습니다. 동쪽으로 흩어진 아브라함의 아들들 가운데는 아브라함으로부터 보고 배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이어간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드로는 그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드로יִתְ רו의 이름은 ‘풍성함, 탁월함’이라는 뜻인데 ‘넉넉히 남은 여유분’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미디안 족속 가운데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가진 남은 자로서 탁월한 리더쉽과 지혜를 가진 제사장이었습니다. 그의 넉넉한 마음과 영적인 통찰력은 비록 모세가 도망자 신세이긴 했지만 그의 준수함을 알아보게 하였고 그는 모세를 사위로 맞이합니다. 그리고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했을 때도 이드로는 모세를 평안히 보내줍니다. 아마도 그는 모세가 어떤 일을 해야 할 사람인지 알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았던,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드로는 이후에 모세와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듣게 되었고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진 친 하나님의 산, 시나이 산으로 방문하게 됩니다(출18:5). 이드로는 모세로부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듣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너희를 이집트 사람의 손에서와 파라오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백성을 이집트 사람의 손 아래에서 건지셨도다 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하게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출18:10-11)
무엇보다 이드로는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하신 구원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기뻐합니다. 마치 자기가 겪은 일인 것처럼 기뻐하며 모든 신보다 크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드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교만하게 행하는 이들을 이기셨도다”고 고백합니다. 자기 조상 미디안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을 이어받은 남은 자로서 그는 진실로 영적인 탁월함이 있는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고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함께 자신이 친히 준비해 온 번제물과 희생제물의 제사를 드립니다. 그는 그저 모세의 장인만이 아니었고 이스라엘의 장로들도 인정한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로 도망친 모세에게 이드로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태어날 때는 믿음의 어머니 요게벳을 통해 생명을 구했고 이집트에서는 공주를 만나 왕자가 되었으며 왕자가 되었어도 젖을 뗄 때까지는 어머니 요게벳을 통해 믿음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탁월한 제사장 이드로를 만나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가진 가족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배우며 살 수 있었습니다. 모세 한 사람을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만남은 아름답고도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삶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만남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뤄진 만남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뤄진 만남으로 인해 보호받았고 그 뜻이 이루어져 갈 수 있었습니다.
모세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았고 지지해주었던 이드로였기에 모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맡아주었을 것입니다. 이드로는 하나님의 큰 뜻과 하나님의 킹덤의 계획이 이뤄져가는 과정에서 모세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이뤄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드로는 모세의 장인이면서 영적 멘토였고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한 제사장이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지도자라 할지라도 그를 인도해주고 삶의 중요한 순간에 영향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의 앞선 세대와 그 뒤를 따르는 세대와의 연합과 같은 것입니다. 신앙의 앞선 세대는 믿음을 후손에게 이어주면서 이끌어 주고 때가 되면 뒤에서 밀어줍니다. 앞선 사람은 따라오는 사람을 잘 이끌어 줄 때도 있어야 하지만 때가 되었을 때 따라 왔던 후세대가 앞설 수 있도록 뒤에서 밀어주고 도와줘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달리기 경주와 같아서 바톤을 들고 힘껏 뛰어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차례가 되었을 때는 다음 주자에게 그 바톤을 잘 넘겨주기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경주를 끝까지 이어갈 수 있습니다. 나에게 바톤이 주어졌으니까 혼자 끝까지 뛰려는 생각은 교만이며 이것은 오히려 경주의 흐름을 망가뜨립니다. 반대로 잘 밀어준다고 하면서 뛰어가고 있는 사람을 뒤에서 자기 뜻대로 조종하는 것 역시 경주의 흐름을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이드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뛰어가는 믿음의 경주에 있어서 모세가 그 조상들로부터 바톤을 받고 뛰어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옆에서, 또 보이지 않는 그의 뒤에서 영적, 지적, 물질적으로 모세를 도왔습니다.
하나님의 킹덤은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말씀을 듣게 하고 바른 역사관의 역사를 교육하는 것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세대가 함께 뛰어가는 이 믿음의 경주가 하나님의 킹덤의 마지막 지점인 ‘그 에덴-동산’에서 마칠 것을 계획하시고 이 경주의 흐름이 멈춰지지 않도록 친히 다음 주자를 선정하시고 그에게 바톤이 전해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주관하고 결정하십니다. 어떤 이는 경주를 위해 바톤을 들고 뛰어가고 어떤 이는 페이스메이커pacemaker(마라톤을 달리는 경주자가 잘 달릴 수 있도록 일정 시간 함께 뛰어 주는 사람)가 되어 보조를 맞춰주며 함께 호흡해주며, 어떤 이는 본격적으로 뛰기 위해 경주장에서 대기하며 기다리는 이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달리는 연습부터 하고 있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모두 이 경주를 위해 함께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경주를 마치기 위해 수만의 믿음의 선조들이 하늘에서 우리를 보며 응원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 어떤 역할인지 깨닫고 하나님이 주신 시간과 역할에 충실한 자는 경주에 먼저 뛰어 들어가지도 않을 것이고, 또 반대로 뛰어야 하는 순간에 못 뛴다고 포기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시간과 역할을 아는 지혜로운 자는 어느 순간에 들어가 뛰어야 하는지 알고 경주의 흐름을 망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고 다음 주자에게 바톤 터치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시나이 산에 강림하시는 하나님
시나이 산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은 이틀 동안 자신을 성결하게(카다쉬קָדש)하고 옷을 빨고(카바스כִָּבַָס) 셋째 날을 기다렸습니다(출19:10-11).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친히 나타내시기 위해 그들을 준비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의 강림은 곧 그분의 영광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이 너무 두려워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직접 나타나시는 것을 거부했습니다(출20:19). 그들은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의 영광이 자신들을 죽일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런 백성들을 향해 모세는 하나님이 임하심은 그들을 시험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격려하였습니다(출20:20). 하나님을 가장 두려워함으로써 그들이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안에 서는 자들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은 그들을 시험하시고 훈련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토라의 말씀으로 준비된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나아 오길 원하셨고 또 그분의 영광으로 그들을 채워 주길 원하셨습니다. 그분의 영광으로 나아오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먼저 모세를 통해 율례와 법도로 그들의 육과 혼과 영을 준비시키셨습니다. 그렇게 그들이 스스로를 정결하게 한 뒤 이제는 옷을 빨고 자신을 단장하게 하십니다. ‘옷을 빨다’의 히브리어 카바스כָבַס는 ‘씻다’라는 뜻과 함께 ‘발로 밟다, 천을 다듬어서 마무리하는 일을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옷을 빠는 것은 나의 더러운 것들을 발로 밟아 씻겨 나가게 하는 일입니다. 또 옷을 만들기 위해 마지막으로 천을 다듬어서 깨끗하게 마무리 한 후 그 옷을 입는 순간 우리는 단장됩니다.
신랑을 맞이해야 할 신부는 단장해야 합니다. 그래서 더러운 것은 발로 밟아 씻겨 나가게 하고 마무리가 가장 잘 된 옷으로 차려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맞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단장이 잘 될 수 있도록 준비의 시간을 주십니다. 그 그릇에 하나님의 영광을 담아 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백성들이 구별된 거룩한 존재로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채워지고 그 영광을 나타내길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땅에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교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통로가 되길 원하셔서 당신의 영광으로 채워주길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광을 담기 위해 준비된 그릇들입니다(롬9:23).
신부가 단장되어 입어야 할 옷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결하게 하여 옷을 빠는 것은 말씀으로 생각과 마음을 살펴보고 행위를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내 혼과 영에 섞여 들어와 있는 것을 잘라내고 더럽혀진 것을 발로 밟아 완전히 씻겨 나가게 하는 것이 신부가 예복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신부들이 세상에 정신 팔려서 혼인 준비를 잊게 합니다. 신부들은 자신들의 예복을 준비할 일을 게을리하거나 아예 하지 못하게 됩니다. 예복을 준비하지 못하면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사역과 다른 일들로 분주하여 정작 자신의 영과 혼을 돌보지 못한다면 이것은 자신의 예복을 준비하지 못한 어리석은 행동일 뿐입니다. 예복을 준비하는 과정(옷을 빨아야 하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모두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계19:7-8)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계22:14)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사랑하는 신랑 예수님과 함께 들어갈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말씀으로 성결하게 하고 잘 빨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주신 계명과 각자에게만 주신 개별적 계명(사명)을 잘 지켜야겠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우리는 생명나무에 나아가는 권세를 받으며 그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셋째 날의 영광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셋째 날의 영광은 하나님을 마주하는 것입니다. 셋째 날에 하나님은 하늘의 영광을 땅에 내려오게 하심으로 죽을 육체 안에 거하고 있던 자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셋째 날의 영광은 부활의 영광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이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고 셋째 날에 우리를 들어 올리셔서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호6:2).
하나님은 예슈아를 셋째 날에 들어올리셔서 죽음의 권세를 파쇄하고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 주셨습니다. 셋째 날의 영광은 마지막 날에 모든 성도들이 부활함으로 성취될 것입니다. 이날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성결하게 하고 옷을 빨고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출19:10-11). 메시아가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그 영광을 나타내실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그 날은 셋째 날의 영광, 부활의 영광이 임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성결하게 하고 옷을 빨고 기다려야 합니다. 무엇으로 성결하게 하고 옷을 빨 수 있을까요? 말씀입니다. 말씀을 듣고 믿고 따르는 삶으로써 우리 자신을 씻고 단장하고 그 날의 영광을 기다려야 합니다. 셋째 날의 영광을 위해 지금은 우리를 성결하게 해야 하는 때입니다.
시나이 산에서 하늘의 나팔 소리가 불리고 하나님이 강림하셨습니다(출19:19-20). 그리고 이 나팔 소리는 점점 더 커졌습니다. 보통 나팔을 불 때 처음에는 소리가 크지만 뒤로 갈수록 그 소리가 작아집니다. 하지만 시나이 산에서 울린 나팔 소리는 그 소리가 점점 더 커졌습니다. 이 나팔 소리와 함께 하나님이 강림하신 것은 왕의 강림을 위한 팡파레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자신을 숨기시고 감추셨던 하나님이 친히 창조하신 창조세계 안으로 직접 들어오셨습니다. 첫 번째 나팔 소리와 함께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들 위에 강림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시나이 산에 강림하셨을 때 수많은 천사들의 병거가 함께 내려왔습니다.
“하나님의 병거는 천천이요 만만이라 주께서 그 중에 계심이 시내산 성소에 계심 같도다”(시68:17)
이 모습은 예슈아께서 다시 오실 때 그의 천사들과 함께 아버지의 영광안에서 오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마16:27). 탈무드에 의하면 시나이 산에서 여호와의 소리는 백성들을 죽였지만 또한 죽음 가운데서 그들을 살리셨다고 합니다. 메시아가 다시 오실 때 그의 입에서는 날카로운 검이 나와 원수들을 죽이실 것이지만 주님 안에서 죽었던 자들의 생명은 다시 살게 하실 것입니다. 첫 번째 나팔이 울렸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발 아래에 청옥같이 펼쳐진 하늘을 보았지만(출24:10) 마지막 나팔이 울리 때 예슈아의 발은 감람산에 서실 것입니다(슥14:4). 첫 번째 나팔이 울렸을 때 하나님은 시나이 산 꼭대기에서 말씀하셨지만,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 시온 산은 모든 산들 보다 높이 올라와 열방에서 그곳으로 나아올 것입니다(사2:2-3). 그 때 메시아이신 예슈아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토라로 친히 가르치시고 시온에서부터 열방을 향하여 말씀을 선포하실 것입니다.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아버지로부터 받으신 만왕의 왕 예슈아께서 영광 중에 강림하실 것입니다. 첫 번째 나팔 소리와 함께 강림하셨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자신을 나타내셨지만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강림하실 예슈아는 온 세계에 자신을 나타내 보이실 것입니다. 모든 족속이 구름을 타고 능력과 영광 가운데 내려 오시는 예슈아를 보게 될 것입니다(마24:30). 시나이 산에서의 첫 번째 나팔은 시온 산에서의 마지막 나팔로 이어질 것입니다. 시나이 산에서 하나님의 강림을 보았던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움에 떨었지만 그 날에 영광을 감추지 않으시고 높은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예슈아를 우리는 공중에서 만나며 그곳에 다 모일 것이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와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마지막 나팔 소리는 승리와 영광의 소리가 될 것입니다.
결혼 서약서, 십계명
신랑과 신부는 결혼을 할 때 서로를 향해 사랑과 책임을 다할 것을 서약합니다. 이유는 하나됨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신랑이신 하나님도 신부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됨을 지키는 결혼 서약서를 주십니다. 그것이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과 하나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책임을 다할 것을 약속하는 서약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아니라 하나됨과 평화를 유지하며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약속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십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약속,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약속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리고 이 모든 내용은 한 방향을 향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결혼할 때 이런 서약을 합니다. “오직 이 한 사람만을 영원히 사랑하고 섬길 것을 맹세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결혼을 약속이라 부르지 않고 언약이라 부릅니다. 다른 약속들과 달리 함부로 쉽게 파기할 수 없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인생은 모두가 각각이고 다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그렇게 맹세하였다 할지라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 이 언약이 지켜지지 못하고 깨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시나이 산 언약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쪽에서 언약의 파기하는 행위들을 했다 하더라도 그래서 쌍방에게 다 엄청난 고통이 수반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쪽에서는 절대 싸인 해주지 않으시고 오히려 계약을 파기한 쪽이 책임을 져야하는 것까지도 결국에는 하나님쪽에서 대신 책임을 지시고 그 언약이 지켜지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까지도 그분은 이 언약을 파기하지 않으시고 수없이 하나님을 배신한 음탕한 고멜과 같은 이스라엘과 우리들을 붙들고 계십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이라는 신이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을 향해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혹은 ‘말 안 들으면 벌줄 것이다’고 하는 억압의 메시지가 아닙니다. 사탄 때문에 틀어진 온 우주의 질서와 처음 창조 때 땅의 모습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우리의 모습이 다시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것이고 서로를 끝까지 사랑함으로 하나됨을 지킬 수 있기 위해 함께 맺은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하나님과 우리의 사랑, 또 사람들과 우리들 사이의 사랑의 언약을 기록한 결혼 서약서입니다.
일반적으로 기독교에서는 십계명의 첫 계명으로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말씀을 가장 앞에 두고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의미를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첫 계명은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이다(I am the Lord your God)’ 라고 시작합니다. 첫 계명에서 하나님이 강조하신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원해 낸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첫 계명은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유일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다’라고 선포하심으로 우리가 무엇을 믿고 따라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려주십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의 첫 계명은 다른 모든 계명의 기초가 됩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믿을 때 우리는 십계명의 다른 계명들을 모두 따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명확하게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이다’라는 말씀으로 십계명의 말씀을 열어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토라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는 법이고 힘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말씀으로 창조된 세상은 말씀의 힘에 의해 붙들려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없으면 세상은 무질서와 혼돈의 상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이 없다는 것, 말씀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떠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집트의 노예생활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말씀을 내려 주셨습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이 말씀은 태초에 있었던 말씀, 만물을 창조하신 말씀이며 그것이 바로 토라입니다. 그리고 토라는 사람이 되었고 그분이 바로 예슈아입니다(요1:1).
십계명은 토라의 기초가 되는 것으로 모든 토라의 가르침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토라의 기초인 십계명의 시작을 하나님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시작하심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시작이신 그분이 우리의 하나님 되심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십계명은 단순히 도덕법이나 종교적인 규례가 아닌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믿는 삶의 기초가됩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십계명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이 요청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닮은 성품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생명의 물이 되어 흘러내린 토라처럼 예수님도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셔서 육신이 되셨습니다(성육신). 예수님은 토라를 완전하게 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마5:17). ‘완전하다’는 의미를 가진 헬라어 플레로πληρόω는 ‘성취하다’는 의미로‘가득 채우고, 풍부하게 하고, 공급하고, 완성시키고, 수행하고 실행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토라(말씀, 요1:1)라고 하셨고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룰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마5:18). 율법을 다 이루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의 역사를 토라를 통해서 다 이루겠다는 의미입니다.
구원의 시작은 십자가를 통한 영의 거듭남이고 그 후 말씀으로 혼의 구원을 이루어가는 성화의 과정을 거치며 죽음 이후에는 몸의 구속인 첫째 부활이 있고 마지막 완성은 새예루살렘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 역사의 마지막 날에 죄로부터 완전히 구속받고 영생의 자격을 얻은 영혼들이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해 구속의 계획의 청사진과 그 구속의 실행들을 토라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토라를 직접 실천하셨고 십자가 위에서 구속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슈아의 피로 대속받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원하셨던 것처럼 토라의 말씀을 듣고(샤마שָׁמע) 지키는 것(샤마르שָׁמר)입니다.
토라는 법입니다. 비처럼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는(흐르는) 것입니다. 물은 생명을 자라게 합니다. 토라가 우리 삶에 잘 세워지면 생명이 흐르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서 관계에 갈등이나 다툼이 일어나면 우리는 그것으로 인해 서로 묶이고 막히게 됩니다. 순환이 잘 되지 않고 막힘이 생기면 고여 있게 되고 고이게 되면 썩게 됩니다. 그러나 토라가 우리 삶에 잘 세워지면 우리는 토라를 통해 갈등과 다툼의 원인을 해결할 수 있고 그것은 우리 안에 막힌 것을 뚫어 주게 됩니다. 하늘에서 흘러내려오는 토라의 말씀이 막히면 세상에는 불법이생깁니다. 불법이 생기지 않도록, 혹은 생기더라도 바른 판단으로 불법을 심판하는 기준이 토라입니다.
토라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우리의 어두운 것을 비춰주는 빛입니다. 그 말씀은 우리의 더러운 것을 씻어주는 생명의 물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청결하다’는 헬라어는 카타로스 καθαρός인데 이는 깨끗하고 순수하며 오염이 되지 않고 죄책감이 없는, 더 나아가 불로 연단한 상태, 혹은 가지치기를 통해 깨끗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포도나무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말씀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무성하게 자란 가지를 치고 불로 연단해서 깨끗하게 합니다. 그렇게 깨끗하게 된 자들은 하나님을 보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을 보는 것은 곧 그분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핵심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영광을 보여주시기 위해 그들을 율례와 법도 즉, 토라의 말씀으로 준비시키시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오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 신부들인 우리들은 말씀으로 우리의 몸과 혼과 영을 정결하게 하여 예복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나의 소유, 나의 보석, 나의 신부라 부르시는 하나님과 하나되어 약속하신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출처: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적 관점으로 읽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Quoting from Reading the Torah Portion from the Hebrew Perspective in Jerusalem (Gen. Exod. Lev. Num. De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