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th 미케츠
מִקֵּץ
그 끝에
파라샤 Genesis (창) 41:1-44:17
하프타라 1Kings (왕상) 3:15-4:1
브리트 하다샤 Matthew (마) 27:15-46 / John (요) 10: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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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정한 시간 – 미케츠מִקֵּץ, 그 끝에
요셉이 술 관원장의 꿈을 해석한 뒤, 2년이 꽉 차고 그 끝에(미케츠מִקֵּץ) 요셉은 바로 왕 앞에 서게 됩니다. 창세기 41장 1절의 “만 이 년이 지나고, at the end of two full years”의 히브리어 원어는 ‘미케츠 슈나타임 야밈 םקֵּץ מִקֵּץ שְנָתַים יָמִים’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케츠는 ‘끝’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케츠קֵּץ의 단어 중간에 유드‘י’를 넣으면 카이츠קַיִץ가 되는데 이것은 ‘여름’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의 비유에서 “무화가 나무가 연하여지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여름(카이츠)의 때가 곧 마지막(케츠) 때임을 언어 유희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마24:32).
여름의 끝은 가을의 시작으로 이어지고 가을은 추수의 계절입니다. 가을의 시작인 티쉬레이 월 초하루는 민간력으로 한 해의 시작인 로쉬 하샤나 ראש הַשָנָה 즉, 나팔절(욤 테루아 יוֹם תְּרוּעָה)입니다. 요셉에게 주신 꿈 중 곡식단이 절하는 꿈은 ‘추수’를 상징합니다. 또한 추수는 인류 구원 농사의 ‘마지막 대추수’를 의미합니다. 술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줌으로 요셉의 억울함이 풀어지고 요셉의 꿈이 이뤄지는 순간을 향해 성큼 다가가는 듯했지만 술 관원장은 복직되면서 요셉에 대한 일을 왕에게 말해주기로 약속한 것을 잊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술 관원장이 요셉을 잊어버린 것 역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 2년이 꽉 차고 나서야(미케츠 슈나타임 야밈מִקֵּץ שְׁנָתַיִם יָמִים) 요셉에게 정하신 하나님의 시간이 왔습니다. 비록 요셉은 꿈 해석 이후 2년이나 기다림의 시간을 더 가져야 했지만 요셉이 믿음으로 기다림으로써 정확한 하나님의 시간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요셉의 억울함이 풀어지는 것 이상을 넘어서 그가 열방을 구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과 다릅니다. 그분의 시간은 그분의 뜻이 완벽하게, 그리고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때입니다.
마지막 때는 곧 하나님의 뜻이 온전하게 성취되는 때로서 사탄에 의해 다스려졌던 세상이 심판을 통해 끝이 나고 온 인류의 왕으로 예슈아께서 오셔서 다스리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마지막 때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입니다. 요셉에게 있어서 미케츠, 마지막 때는 그의 이집트에서의 노예의 상태, 죄수의 상태가 끝나고 더러운 의복은 벗겨지고 왕과 같은 권위의 새 옷을 입게 되는 때였습니다. 주님이 왕으로 오시면 사탄이 왕 노릇 하던 이 세상에서 죄의 노예였던 우리는 완전한 자유를 얻음과 동시에 왕의 권위를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요셉에게 있어서 미케츠 는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의 미케츠 를 예표하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언제일지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끝)’이 가까운 줄을 알 듯이 주님이 말씀하신 많은 징조들을 보면(마24장) 우리는 마지막 때가 오고 있음을, 주님이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마24:33)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마지막 때가 사탄의 왕국, 세상의 왕국에 있어서는 마지막 때이지만, 하나님의 왕국에 속한 우리에게는 새로운 시작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열방이 함께 구원받는 마지막 때, 미케츠
꿈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자(창41:38), 지혜로운 자를 통해 풀어집니다. 지혜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힘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지혜의 영이며 이것에 감동된 자는 하나님의 꿈, 비전을 이해할 뿐 아니라 성취합니다.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이해한 자는 생명을 살립니다. 요셉은 7년 풍년과 7년 흉년의 꿈의 비밀을 풀어내었을 뿐 아니라 그것을 통해 열방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고 실행하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자,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시간까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실 때까지 서둘러 조급하게 나서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그때, 그 시간에 나섭니다. 이런 사람은 주어진 시간을 견디며, 기다리며, 준비합니다. 7년 풍년의 시간에 요셉은 7년 흉년을 대비하는 전략을 세웁니다. 만물을 풍성케 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7년 풍년을 통해서 나타났지만, 7년 흉년의 기간에는 흉년 중에도 열방을 먹여 살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꿈을 간직한 채 오랜 시간 기다리며 견디며 준비된 자 요셉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이스라엘과 온 열방이 함께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흉년 기간 중 주변 나라들까지 먹이심으로 구원하셨고, 이스라엘(야곱)의 아들들이 요셉을 찾아오도록 하셨습니다(창42,43장). 오히려 흉년이 계기가 되어 이집트와 주변 나라,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한자리 모여 함께 구원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 한 가운데는 요셉이 있었습니다. 가장 어려운 시간에 요셉은 열방을 먹였고 자신의 가족들(이스라엘)을 먹였습니다. 앞으로 닥칠 어려운 시간(흉년)은 교회를 더욱 깨어나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을 깨어나게 할 것입니다. 그렇게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 될 것이며 교회와 이스라엘이 하나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는 끝까지 견디며, 기다리며, 준비한 요셉들이 서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그러한 요셉들이 드러나지 않은 채 인내로서 준비되어지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타이밍에 쓰임 받게 될 요셉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요셉이 총리가 되고 주어진 새로운 이름인 사브낫 바네아(창41:45)는 이집트어로는 ‘비밀이 맡겨진 자, 세상의 구원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이름의 히브리어 ‘짜프낱 파네아흐צָפְנַת פַּעְנֵח’는 영광스럽게 남겨진 자의 보물(treasury of the glorious rest) 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꿈, 비밀이 맡겨진 자로 끝까지 남겨진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서도 보물같은 존재가 됩니다. 마지막 때는 끝까지 견디는 자들이 승리합니다(마24:13). 타협과 머뭇거림, 사람들로부터 질타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자들은 다 어둠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내 안에 어둠이 조금도 허락되지 않을 만큼 정결하게 되기 위해 하나님은 고난이라는 긴 시간을 허락하십니다. 꿈을 가진 자들은 그 꿈 때문에 더 큰 미움과 고통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낙심과 좌절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을 더욱 정결케 하는 도구가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남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타협하지 말고, 두려움에 머물러 있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 내 안에 진리의 퍼센테이지(%)를 더욱 높이며, 7년 흉년을 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미케츠מִקֵּץ, 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람 붸니싸 하마쉬아흐(높이 들리신 메시아)
하나님의 킹덤은 역설 그 자체입니다. 죽어야 살고, 버려야 얻고, 가장 낮아져야 높아집니다. 믿음의 선조들의 삶은 모두 하나님의 킹덤의 역설 그 자체의 삶이었습니다. 역설의 삶은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합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이 가지신 믿음, 창조와 부활의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열방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말씀하시고는 아들 한 명을 주셨습니다. 심지어 그 아들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이삭에게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손을 주겠다 하셨지만 아들 두 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두 아들의 싸움의 골이 깊어 분열이 일어나기까지 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밟는 땅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아브라함이 평생을 나그네 삶으로 살면서 얻은 땅은 헤브론의 막벨라 굴이 전부였습니다. 이삭은 나그네의 삶을 살면서 시기당하고 빼앗기기 일쑤였습니다. 야곱은 인생 자체가 쫓기고 속임 당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일찍이 잃을 뿐 아니라 수많은 왕이 일어날 것이라 말씀하셨지만 가족 내의 불화, 형제들의 불화가 끊이지 않는 삶이었습니다. 요셉은 시기당하여 빼앗기고 죽을 뻔하고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잃어버린 삶이었습니다.
요셉은 가장 사랑받는 아버지의 아들, 아버지로부터 모든 특권을 받는 아들의 자리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졌습니다. 이것은 마치 아버지의 모든 권위를 가지신 예슈아가 땅의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것을 연상케 합니다. 이미 다 떨어졌는데 하나님은 그를 더 떨어뜨리십니다. 고대의 감옥은 땅을 깊이 파서 동굴 같은 곳에 죄수들을 가두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무덤을 연상케 하는데 요셉은 죄수로서 땅 밑까지 떨어졌습니다. 죽음까지 떨어진 것과 같습니다. 예슈아도 무덤까지 떨어지셨습니다. 그러나 땅의 밑, 무덤까지 떨어진 요셉을 하나님은 가장 높은 곳, 이집트의 통치권의 자리까지 끌어 올리셨습니다. 예슈아는 죽음에서 부활의 생명으로 일어나셔서 가장 높은 곳인 하늘 아버지의 보좌 우편까지 올라가셨고 그는 온 우주를 통치할 왕으로 하늘에 계십니다. 요셉을 들어 올리신 것은 높이 들리신 메시아인 예슈아를 의미합니다. 자기 가족과 형제들의 구원뿐 아니라 이집트와 주변 온 땅의 백성들을 구원한 요셉은 이방인을 구원하시고 또한 유대인을 구원하시는 예슈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원대한 계획을 요셉의 삶에 심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리신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마23:11-12). 겸손한 자가 높임 받을 것입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할 것입니다.
출처: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적 관점으로 읽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Quoting from Reading the Torah Portion from the Hebrew Perspective in Jerusalem (Gen. Exod. Lev. Num. De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