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th 봐예셰브

וַיֵּשֶב

그리고 그가 정착했다

파라샤 Genesis (창) 37:1-40:23

하프타라 Amos (암) 2:6-3:8

브리트 하다샤 Matthew (마) 1:1-6, 16-25 / (마)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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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사랑받는 자와 더 미움받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신다.

야곱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는 여정은 결코 평탄치 않았습니다. 여러 차례 생명을 위협하는 죽음을 뚫고 오는 과정에서 자신의 자아를 완전히 부서뜨리고 기적을 경험했지만 딸로 인한 수치와 모욕,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에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죽음, 큰 아들 르우벤이 자신의 첩 빌하와 동침한 사건, 그리고 헤브론에 계신 어머니 리브가를 만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비보까지 그에게는 시련이 멈추지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모든 과정을 거쳐서 야곱은 마침내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 약속의 땅에 거주하게 됩니다(예쉐브). 그리고 토라는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창37:2)라고 말하면서 요셉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야곱의 족보를 이야기하고자 하면서 왜 요셉의 이야기를 먼저 시작했을까요? 야곱의 씨를 통해 태어날 세상의 구원자 메시아에 대한 비밀스러운 계시가 요셉의 삶을 통해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크게 받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야곱이 14년이나 무료 봉사하면서까지 얻고자 했던 아내 라헬의 큰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토라는 요셉이 야곱이 노년에 얻은 아들이었기 때문에 더 사랑했다고 말합니다(창37:3). 시간적 순서를 살펴봤을 때 르우벤과 요셉의 나이 차는 약 14세 전후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것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형들과 요셉은 나이 차이가 그다지 많이 나지 않는 고만고만한 사이였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동일하게 아버지의 사랑이 필요한 나이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통해 태어났고 노년에 얻게 된 아들 요셉이 사랑스럽고 너무 소중했습니다. 게다가 막내 동생 베냐민이 태어나자마자 라헬이 죽고 요셉은 친어머니 없이 자랐습니다. 더욱 애틋한 마음으로 야곱은 요셉을 사랑했지만 형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함으로 더 요셉을 시기하였습니다. 야곱의 요셉을 향한 사랑은 채색옷을 통해 더욱 극대화되었습니다. 옷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상징합니다. 채색옷은 요셉의 고귀함과 높은 상태를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그가 아버지의 특별한 아들이라는 것을 나타내 주었습니다. 거기에 요셉은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이것은 야곱이 형들로부터 더욱 미움을 받게 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형들은 그들이 요셉을 미워하는 것이 질투 때문이 아니라 요셉의 오만함 때문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런 명분을 요셉이 만들어 주었습니다. 야곱의 편애, 요셉의 눈치 없음, 형들의 비교의식과 열등감은 이 가정안에서 복잡하게 뒤엉켜져서 서로를 향해 편안하게 생각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요셉이 꾼 꿈은 이 모든 복잡한 관계에 불을 지르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요셉이 큰 자, 리더가 될 것이라는 두 번의 꿈은 형들의 열등감을 더욱 부추겼고 견딜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요셉은 이 역시도 너무 스스럼없이 가족들에게 나누었고 그로 인해 결국 큰 화를 당하게 됩니다.

야곱의 편애는 형제들 사이를 이간하는 결과를 낳았지만, 결국 요셉을 통해 성취하셔야할 하나님의 뜻이 이뤄질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언제나 선하십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죄를 하나님의 선함으로 바꾸는 능력을 지니신 하나님을 매 순간 신뢰하는 것이 이러한 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실수를 하였는가?’에 집중하게 하여 정죄하는 사탄에게 참소를 당하지 말고, 나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선하게 바꾸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집중’해야 합니다.

더 사랑을 받는 자는 더 질투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자들을 사탄은 미워하고 질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있지 않은 종교의 영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시기를 받습니다. 사탄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있지 않은 자들을 종교의 영으로 덮어서 그들을 통해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에 있는 자들을 핍박하고 괴롭혀서 마음을 상하게 하고 아버지로부터 떨어뜨려 놓으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자들 주변에는 언제나 공격자들이 있습니다. 공격자들이 노리는 것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어버려서 그가 아버지로부터 오는 사랑과 특권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더 주어진 자, 더 사랑받는 자로서 책임과 소명을 다하기 위해 요셉은 다루어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가 형들에 의해 팔리는 상황을 허락하시고 요셉이 다가올 큰 환난에서 세상을 구원할 자로서 하나님 앞에 그 자신의 믿음으로 설 수 있도록 다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형들의 질투가 오히려 요셉이 총리 되게 하셨고, 사울의 질투는 다윗이 왕이 되게 하였으며, 종교인들의 질투는 예슈아를 죽게 하였지만 부활의 능력으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셔서 예슈아를 통해 세상이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사탄의 질투는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을 더욱 정금같이 하여 마지막 날에 찬란한 영광으로 옷 입게 할 것입니다.

형통한 노예, 형통한 죄수

요셉은 꿈을 꾸고 그것을 형들에게 알린 이유로 격하게 미움을 받고 겨우 죽음을 면합니다. 꿈꾸며 비전을 가진 자에게 찾아온 것은 미움과 고난이었습니다. 야곱에게는 ‘이미 죽은 아들’이 되어 요셉은 이집트의 노예로 팔려가게 됩니다. 아버지로부터 받아온 모든 사랑이 단절되면서 아버지의 사랑받는 아들이라는 신분도 박탈됩니다. 그런데 그는 노예의 신분 중 에도 형통합니다(창39:2). 그의 주인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을 보았고 그가 하는 모든 일에 형통함을 보았습니다(창39:3). 하지만 또 모함을 당하여 억울하게 더 낮은 자리로 떨어집니다. 감옥에 갇힌 그는 이제 완벽한 죄인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죄인의 신분 중에도 그는 형통합니다(창39:21). 상황과 환경은 그에게 분명 엄청난 고난인데 그에게는 형통함이 있었습니다. 그의 형통은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을 인식하게 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 주변 사람들이 인식할 만큼 분명히 보였지만 요셉은 여전히 노예이며 죄인의 신분으로 감옥 안에 갇힌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는 시간들임에도 요셉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안배하심에 따라 허락되어진 갇힌 환경 안에서 보내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노예와 죄인이라는 신분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는 분명 형통한 자였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 중에도, 다 설명해 낼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그의 삶을 통해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오히려 그런 고난의 환경이 그를 더욱 정금같이 단련시켰고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은 고난 중에 있는 그의 삶 속에서 더 빛이 났습니다. 그는 더욱 지혜로워졌고 혼은 정결하고 건강해졌으며 영성이 더 깊어지면서 영적 권위가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땅의 일 즉, 이집트의 언어와 문화를 배움으로서 일하는 능력과 사람 다루는 법, 국가 경제를 경영하는 법 등을 다양하게 익히게 되었습니다. 상황은 그를 노예이고 죄인이라고 정했지만 그는 숨겨진 채 더욱 빛나는 보석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모든 고난은 그에게 더욱 유익이 될 뿐이었습니다. 요셉의 그릇은 더욱 깨끗해졌고 더욱 넓어졌습니다. 감옥중의 요셉은 마치 나실인의 삶 같았습니다.

형통한 노예, 형통한 죄수 요셉. 외모도 뛰어나고 능력도 출중한 요셉.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더 혹독히 그의 인생을 낮추십니다.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교만하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런 과정을 허락하십니다. 과정 마다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통과합니다. 돈과 음란을 확실히 잘라내었고(창39:10) 억울함과 피해의식으로 묶이지도 않았습니다(창40:15). 죄수의 신분을 벗겨내기 위해 구구절절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않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질 것을 기다렸습니다. 과정이 혹독하고 힘들지만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한 요셉의 형통함을 요셉 스스로가 몰랐을리 없습니다. 또한 요셉이 두 죄수의 꿈을 해석해 줄 정도로 영적인 통찰력이 있었다면 열일곱 살에 헤브론에서 자신이 꾼 꿈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도 요셉은 하나님을 더 깊이 신뢰하며 하나님과 깊은 친밀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상황에 매이지 않고, 상처에 매이지 않을 수 있었던 성숙함은 그가 하나님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정확하게 알았기에 그의 믿음이 그를 견고하고 정직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은 우리를 견고하고 정직하게 만듭니다. 또한 우리가 낮아질 수 있음이 큰 은혜입니다. 고통과 고난은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루실 일을 반드시 하시겠다는 그분의 의지가 나를 다루고 있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내게 꿈을 주셨기 때문에 내게 고난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무조건 고난을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 보다 이 고난을 잘 이겨나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 앞에서 내가 다룸 받아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집중하고 그것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그분의 완전한 선하심이 모든 것을 아름답게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보이시는 꿈(할람 חָלַם)과 비밀(쏘드 סוֹד)

꿈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꿈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아모스 2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받을 벌에 대해 말씀하시지만 하나님의 비밀(쏘드סוֹד)을 선지자들에게 보이시지(갈라גָּלָה) 않고는 결코 행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암3:7).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반드시 자신의 친구에게, 자기 종에게 보여주십니다(친구인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미리 알려주셨듯이). 비밀로 덮여 있는 듯하지만 하나님은 선택한 자에게 분명히 먼저 가르쳐 주시고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향한 구원 계획을 열 일곱 살의 청소년 요셉에게 꿈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처음에 요셉은 자신의 꿈을 정확히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고난의 순간이 지나고 나서 돌이켜 보면서 깨닫게 됩니다.

“그 어느 것 하나 주님의 손길이 안 미친 것 하나 없구나!”

하나님은 요셉에게 주신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가고 계셨습니다. 작게는 요셉을 통해 야곱의 가족들을 구원할 계획을, 크게는 요셉으로 인해 이집트와 이웃 모든 나라들이 구원받을 계획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구원 계획의 순서는 먼저는 이집트와 이웃 백성들에게 이루어 졌고, 그리고 나서 야곱의 가족들이 요셉에게 옴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먼저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가 찬 뒤에(이집트와 이웃 백성들) 유대인들이(야곱의 가족들) 구원받게 하실 계획을 요셉을 통해 미리 보여주심으로 종말에 있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비추신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꿈(할람חָלַם)을 통해 메시아이신 예슈아로 인해 온 인류가 구원을 얻으리라는 비밀(쏘드סוֹד)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꿈은 가족 모두에게 알려졌지만, 그들은 그 비밀을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아버지와 형들은 “우리가 너에게 절한다는 말이냐?”라고 하면서 꿈의 일부는 정확하게 해석했지만 그것의 진짜 의미는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아버지 야곱만이 야단은 치면서도 자기 마음에 담아두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꿈을 꿀 수도 있고, 혹은 전해 듣고 그 내용을 알 수는 있지만 여러 겹으로 쌓인 그 비밀의 깊이를 깨닫는 자는 많지 않고 그 꿈이 이뤄지기까지 인내하며 견디는 자들도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꿈을 본 것, 비전을 본 것에 멈추지 말고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신뢰를 가지고 하나님의 시간이 될 때까지 인내하며 견뎌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입니다. 꿈을 꾼 자가 치러야 할 대가는 끝까지 믿고 인내하고 견디는 것입니다.

요셉은 아버지께 사랑받는 아들이자 아버지의 양 떼를 돌보는 목자였습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다른 형제들에게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형제들은 요셉을 죽이려고 땅 아래로 던졌습니다. 그는 죽음을 면해 이방 땅에 팔려 갔습니다. 이방 땅에서 노예의 삶을 살다가 죄수로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이방 땅에서 높임 받고 그 땅을 구원합니다. 그리고 그 큰 구원 안으로 야곱의 가족들이 들어옵니다.

요셉은 ‘구원’의 이름인 예슈아의 삶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아들이자 아버지의 양 떼를 돌보는 목자이십니다.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고 형제들에게 갔지만 형제들이 예수님을 팔고 죽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망과 음부를 통과하시고 일어나 높이 들림 받으셔서 그를 의지하는 자들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그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위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형제들을 그 큰 구원 안으로 불러 들어오게 하셨고, 계속 구원을 이루시고 완성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비밀(쏘드)을 요셉의 삶에 심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얼마나 놀랍고 세심한지를, 그것이 얼마나 오래전부터 계획되어져 왔었던 것이었는지를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꿈을 통해 인류 구원에 대한 계획을 셋팅하십니다. 요셉을 통해 이방인들이 기근 중에도 먹을 것을 얻고 구원을 받게 되고, 그 다음에는 야곱의 가족들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원에 대한 그림입니다. 또한 곡식단이 절하는 꿈을 통해 땅의 추수에 대한 계획을(계14:14-20), 하늘의 광명체들이 절하는 꿈을 통해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들(눅20:36)이 얻게 될 영광에 대해서 보여주십니다(고전15:40-41). 그런데 이 비밀은 때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종들에게, 선택받은 자들에게,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자들에게 보여집니다. 시편 25:14에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꿈, 비전, 계획은 그와 친밀한 자들에게 보여집니다. 그것은 결코 가리어져 있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비밀(秘密)의 한자 비(秘)는 보일 시(示)와 반드시 필(必)이 합쳐져 숨길 비가 되었습니다. 즉, 숨겨져 있는 것 같지만 반드시 보여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한 때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들에게 반드시 보여주기 위해서 비밀은 비밀이 되었습니다. 덮여 있던 비밀이 어떤 자에게 벗겨지고 드러나 보이게 되면 더 이상 비밀은 비밀이 아니며 그 비밀은 그에게 너무 쉽게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보지 못하는 자,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는 그 비밀은 너무 어렵고 이해되지 않고 눈으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귀로 들어도 듣지 못하며 마음으로도 깨달아지지 않는 어려운 비밀로 남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사모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비밀이, 하나님의 계획이, 하나님의 꿈이 보여질 것입니다.

말씀의 많은 내용들이 초림의 예수님을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유대인들은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천년간 토라를 연구하고 묵상하고 지켜온 유대인들이지만 자신들의 믿음의 선조들의 삶에 숨겨져 있는 비밀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은 자신의 선지자로서 믿음의 선조들에게 이미 메시아를 가르쳐 주셨고 그들도 자신의 자손들에게 메시아의 비밀을 가르쳐주었지만 그 비밀을 전수받고도 유대인들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여전히 봉해져 있는 이 비밀이 그들에게 다시 열리는 하나님의 때를 소망하며 기다립니다.

말씀의 많은 내용들이 재림의 예수님을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그리스도인들은 그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대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잠자는 자들이 되어 있습니다.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불타고 있는 시온을 향해 대로를 열고 왕의 오실 길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꿈꾸는 것은 온 우주의 왕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부활의 몸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왕과 제사장으로 이 땅을 섬기며 영생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리고 반드시 이루실 하나님의 꿈이며 우리의 꿈입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계5:9-10

출처: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적 관점으로 읽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Quoting from Reading the Torah Portion from the Hebrew Perspective in Jerusalem (Gen. Exod. Lev. Num. De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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