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nd 노아흐
נחַ
노아
파라샤 Genesis (창) 6:9-11:32
하프타라 Isaiah (사) 54:1-55:5
브리트 하다샤 Matthew (마) 24:36-46 /Luke (눅) 17:20-27
의인이요 완전한 자, 노아
“노아는 의인(짜디크צַדִּיק)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타밈תָּמִים)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창6:9)
노아는 쩨데크צֶדֶק한 사람이었습니다. 쩨데크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세워진 올바름을 뜻합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 안에 있었기에 온전한(타밈תָּמִים)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온전함을 뜻하는 히브리어 탐תַ ּם은 영, 혼, 육이 모두 건강한 상태를 뜻합니다.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부서지고, 파괴되고, 망가진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노아는 영, 혼, 육이 온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온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쩨데크가 잘 세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노아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잘 세울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진리로 영점 조준하고, 하늘 보좌에 초점을 맞추면서 하나님께 시선을 떼지 않은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의롭고(쩨데크) 완전한 자(타밈)였던 노아는 하나님과 히트할렠הִתְהַלֶּך, 동행하였습니다. 그의 삶은 말씀을 따라가는 삶이면서 말씀을 듣고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옮긴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주관자이시면서 나는 또한 내 삶의 개척자입니다. 내 삶은 하나님의 손에 있지만 또한 나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과 히트할렠הִתְהַלֶּך하는 삶은 이와 같습니다. 마냥 세상에 끌려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냥 내 힘으로만 아등바등하는 삶이 아닌 하나님께 모든 주권을 내어드리면서 또한 나에게 주신 권세를 당당하게 사용하는 삶, 이것이 하나님의 킹덤에 속한 의롭고 완전한 자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마지막을 준비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은 주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과 동역하십니다. 하나님에게는 사역이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세워져 있는 것이 먼저입니다. 노아는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과의 관계(쩨데크)를 잘 세웠기에 하나님의 뜻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우리를 전인격적으로(영, 혼, 육) 타밈하게 합니다.노아는 이보다 더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이 극심하게 부패한 것도 보았고 또 아무것도 없는 새로운 세상도 보았습니다. 부패한 세상이 앞으로 다가올 멸망도 알아보지 못하고 더욱 악하게 치달을 때 노아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그렇다고 악한 세상이 완전히 멸하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의 새로운 세상을 마주했을 때 노아가 마냥 신나고 기대감으로만 부풀기만 했을까요? 멸망 이전의 상태이든, 멸망 이후 아무것도 없이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태이든 노아에게 막막한 부담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과 히트할렠, 동행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자신 앞에 마주한 상황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드리며 그분의 말씀을 따랐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말씀을 들고 개척해 나갔습니다. 이것이 동행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세상이 조이고 압박한다고 위축되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반대로 자신의 능력과 스펙을 자랑하면서 오만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우리가 마지막 날까지 우리에게 부딪쳐 오는 삶의 모든 상황을 피하는 것이 아닌 마주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땅의 상태와 마지막 세대를 준비시키는 아비 세대
창세기 1장에도 땅의 이야기가, 6장에도 땅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1장에서의 땅은 회복으로 새로워진 땅의 모습을, 6장에서의 땅은 죄악으로 부패하여 완전히 더럽혀진 땅의 상태를 보여줍니다. 처음 창조 때 땅의 중앙은 하늘의 에덴과 연결되어 있고 그 동산을 중심으로 생명의 강들이 흐르고 의와 평강과 기쁨, 사랑이 충만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홍수가 있기 직전에 죄악으로 인해 부패한 온 땅에는 음란과 포악함이 가득하였습니다(창6:11-12).
‘부패’라는 샤하트שָחַט는 무너지고, 파괴되고, 망쳐진 상태를, ‘포악함’이라는 하마스חָמָס는 잔인하고 난폭한 폭력을 뜻하며 지금 우리의 언어로 ‘테러’와 같은 의미입니다. 그런데특별히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하였다고 말합니다창6:12. 여기서 행위라는 단어의 히브리어 데렉דֶּרֶך은 ‘방법’ 이라는 뜻입니다. 즉, 사람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방법이 부패(샤하트, 무너지고, 파괴되고, 망쳐진 상태)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의 생각과 방법은 도를 넘어버렸 고 지나치게 잘못된 결정들은 음란과 폭악함으로 땅을 더럽히고 파괴시켜 버렸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각자 자기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잘못된 생각과 방법, 결정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스스로 높아져서 탐욕으로 탈취하고 억압하고 살인하는 방법으로 땅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갔습니다. 그러자 땅은 온갖 종류의 폭력과 싸움, 음란과 더러움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 하나님의 길과 사람의 길은 너무 다릅니다(시55:8). 하나님의 생각과 방법이 아닌 사람의 생각과 방법은 멸망과 죽음, 세상을 하마스로 가득 채우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한탄하시고 근심하게 됩니다(창6:5-6). 그리고 최종 결정을 내리십니다.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창6:7
사람의 악한 생각과 계획으로 죄악이 가득해진 땅의 최후는 멸망이었습니다. 세상이 악해져 가는 가운데서도 아담으로부터 믿음의 계보가 이어집니다. 아담의 칠대손 에녹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다가 천사들의 안내로 하늘을 갔다 오는 체험을 했고 그 후에 죽음을 보지 않고 다시 하늘로 완전하게 들려 올라갑니다. 그는 하늘 방문 경험을 통해서 보고 들은 것을 그의 아들 므두셀라에게 전합니다(에녹1서82:1, 83:1). 므두셀라는 그의 아들 라멕과 그의 손자 노아에게 에녹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들과 책들을 전해줍니다. 하나님과 친밀함을 누리고, 그 언약을 붙드는 아비 세대는 자녀에게 믿음을 유업으로 흘려 보내줍니다. 에녹이 누린 하나님과의 친밀함은 므두셀라를 통해 라멕에게로, 그리고 노아에게까지 흘러갑니다. 그리고 그들은 알게 됩니다. 세상이 걷잡을 수 없이 죄악으로 가득차 있는 가운데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세상을 구원하고 부패한 땅을 회복하기 위해 땅을 뒤엎으시고 다시 시작하실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라멕은 노아를 낳고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위로하리라”창5:29
노아נח의 이름은 눈נ과 헤트ח 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눈נ은 ‘퍼지다, 자손, 후손, 행동, 생명, 보좌의 유업, 신실함’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고, 헤트ח는 ‘울타리, 깊은 방, 분리하다, 잘라내다, 보호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두 글자가 합한 노아흐נח는 ‘안식, 쉼’이라는 뜻을 가지게 됩니다. 악한 세상으로부터 분리되고 구별될 때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게 되며 하나님의 보호는 진정한 ‘안식’이 됩니다.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 하늘의 유업이 자손들에게로 흘러가는 것, 이것이 노아라는 이름의 정체성입니다. 라멕은 노아가 태어났을 때 아기가 남다른 것을 보고 아버지 므두셀라와 함께 그 특별한 아이를 보며 에녹에게서 들은 것을 통해 그 아이의 시대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한 아들을 통해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인의 씨에 대한 약속을 이어 가실 것을 기대하며 그의 이름을 ‘노아흐’라고 부르게 됩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동행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을 알았던 선지자 에녹은 자녀들이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세대가 될 수 있도록 준비시켰습니다. 그는 아들을 낳으면서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했고 300년을 땅에서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에녹은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불렀고, 이는 ‘그가 죽을 때’(므투מְתו) ‘심판을 보내신다’(쉘라흐שֶׁלַח)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므두셀라라는 이름을 통해 에녹의 삶이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진 삶이었고 그가 종말론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에녹의 종말론적인 신앙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과 깊이 동행하게 하였고 하나님은 에녹에게 종말에 대한 메세지와 사명을 주기위해 그를 하늘에 방문하게 하셨습니다.
에녹은 가까운 미래의 홍수 심판이 있을 것도 자녀들에게 알렸으며 또한 먼 미래에 악하고 불경건한 자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종말 심판이 있을 것이지만 택함 받고 의로운 자들을 위해서는 부활과 상급과 새로운 시대가 준비되어 있음을, 주께서 수많은 거룩한 자들과 함께 오셔서 악한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지만 그 후 땅을 새롭게 하실 것임을 그의 자녀들과 오고 오는 세대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마지막 세대를 준비하게 하는 것은 믿음을 가진 아비 세대입니다. 하나님은 아비 세대에게 그 계획을 미리 보여주십니다. 이러한 아비 세대가 마지막 세대를 준비시킵니다. 믿음은 아버지로부터 자녀에게로 흘러갑니다. 그리고 믿음은 아버지의 장막 안에서 자녀에게로 들려지고 전승됩니다.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들려 올려졌습니다. 노아는 죽지 않고 심판으로 완전히 멸망당한 이 땅에 남아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갔습니다. 에녹은 마치 마지막 때 휴거하는 성도들과 같고 노아는 마치 마지막 때에 메시아닉 킹덤으로 바로 들어가는 살아남은 자들과 같습니다.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성도들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성도들도 있을 것입니다.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성도들은 그 순간부터 이미 영원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성도들은 비록 첫째 부활은 아니지만 마지막 백보좌 심판 앞에서 부활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대로 상급을 받으며 영생으로 들어가는 부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에녹과 같이 휴거하여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복을 누리는 것이 더할나위 없는 가장 큰 축복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살아남은 자들로서 이어지는 천년왕국에 계속 살아가게 될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진노의 일곱 대접이 땅에 부어지는 동안 마지막까지 땅에 살아남은 자들 중에서도, 하나님은 노아를 구원하셨던 것처럼 남겨진 자들에게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에녹처럼 들림받는 영광이 있기를,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복을 누리게 되기를 더욱 사모합니다.
멸망 중에 구원의 장막을 넓히시는 하나님
부패하고 썩은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새로운 땅이 된 곳에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그의 장막터를 넓히고, 처소의 휘장을 펼치게 하셨습니다창10,11장. 노아의 자손을 통해 많은 민족이 일어났습니다(사54:2,3). 그 민족들 가운데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믿음의 유업을 먼저 이어받은 이스라엘을 택하셨고 그들이 열방을 차지하고 황폐한 성읍을 사람 살 곳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내가 너의 남편이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백성이 어떤 존재인지 정체성을 분명하게 하십니다(사54:5). 잠시 버렸어도 큰 긍휼로 다시 모으시는 하나님(사54:7)께서 당신의 자비가 떠나지 않고 화평의 언약이 흔들리지 않겠노라고 선언하셨습니다(사54:10). 그리고 아무 대가 없이 그냥 오라고 하십니다사55:1. 돈 없이 먹고, 값없이마시고 무엇보다도 들으라(샤마שָׁמַע)고 말씀하십니다(사55:2,3). “듣고 들어라, 귀를 기울이고 들으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살 것이다”라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이 언약이고 확실한 은혜라고 말씀하십니다(사55:3). 그분의 왕국에서 우리가 하는 것은 결국 그분과 함께 먹고, 마시고, 누리며 그분 앞에서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를 준비하도록 부름 받은 우리들에게 다시 하나님 나라의 장막터를 넓히고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넓게 펼치라고 말뚝을 견고히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열방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왕 되신 주님 앞으로 나아가 그분과 함께 거하며, 먹고, 마시고, 듣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음성으로부터 나오는 달콤한 사랑과 아름다운 교훈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천년 왕국이며 또한 이어지는 영원 세상입니다. 우리가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서 주님과의 코이노니아, 형제, 자매들과의 코이노니아를 갖는 것은 함께 먹고, 마시고, 주님의 말씀을 들음을 통해 하나됨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천년왕국과 영원 세상을 미리 앞당겨 맛보고 누리는 아버지의 집입니다.
노아의 때는 땅이 부패하여 포악함이 가득하고창6:11 심지어 심판의 날이 다가와 홍수가 나도 깨닫지 못하는 때였습니다마24:37. 지금은 노아의 때와 같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깨닫지 못하는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준비하고 깨어있는 자들은 복을 받을 것입니다(마24:42,44). 그러므로 노아의 때에 우리는 메시아를 기대하고 준비하고 깨어있는 것에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할 뿐 아니라 메시아의 다시 오심을 알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기대하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노아의 때에 주인의 집의 음식을 때에 따라 잘 나눠주는 종이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 되어 복을 받을 자를 찾고 계십니다마24:45. 여기서 잘 나눠주는 종이란 헬라어 원어로 집안 살림뿐 아니라 식구들이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아픈 것이 없이 건강할 수 있도록 잘 섬기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라고 하는 헬라어 원어는 ‘지명하여 그 자리에 두셨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마24:46-47
이미 한 번 맡겼지만 완전히 신뢰하시기 때문에 더 맡기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양식을 적시 적소에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잘 나눠줄 수 있는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 필요한 때 가 노아의 때입니다. 노아는 의롭고 완전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서창6:9 하나님이 찾으신 바로 그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가족과 호흡이 있는 모든 생명체를 살렸습니다. 그는 세상과 사람의 뜻에 따르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준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조직과 전통에 충성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그의 말씀에 충성된 지혜로운 사역자가 노아의 때와 같은 마지막 때에 필요한 사역자입니다. 우리는 준비하고 있으면 됩니다(마24:44). 노아의 때와 같이 그날이 되기 전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다 멸할 때까지도 사람들이 깨닫지 못할 때(마24:38.39), 주님의 시간이 이끄는 주기와 시절을 계속 따르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키고, 신실한 약속을 붙잡고, 먹을 양식을 준비하여 자신도 먹고, 방주에 들어간 모든 생명체를 먹여 살릴 수 있도록 준비하는 자가 바로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될 것입니다(마24:45).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면서 한 가지를 더 준비하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먹을 모든 양식을 가져다가 저축하는 것(아싸프אָסַף, 모으다, 수집하다)이었습니다(창6:21). 그래서 그 양식이 노아와 방주에 들어간 자녀들과 모든 생물들을 먹이고 생명을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위해 생명이 유지될 수 있는 양식까지 챙겨 준비하도록 하셨습니다.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사람은 전략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나에게 주신 삶의 터전에서 지혜롭게 양식을 저축하고 모으는 사람은 자신뿐 아니라 많은 생명을 살립니다. 땅과 역사의 마지막 날은 새로운 시작의 순간이 될 것입니다. 그날을 위해 준비하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은
*노아처럼 철저하게 주님에게 맞춰져 있는 관계(쩨데크) 안에서
*온전함(타밈)을 가지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분의 신실한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이 맡기신 영역에 장막터를 넓히고 견고하게 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가고
*때를 따라 많은 생명을 먹이기 위해 전략을 가지고 양식을 저축하고 준비하는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역사의 마지막, 만물이 새로워지는 그날을 기대하며 다시 오실 만왕의 왕 예슈아를 기다립니다
출처: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적 관점으로 읽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Quoting from Reading the Torah Portion from the Hebrew Perspective in Jerusalem (Gen. Exod. Lev. Num. De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