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th 봐예라

וַיֵּרָא

그리고 그가 나타났다

파라샤 Genesis (창) 18:1-22:24

하프타라 2Kings (왕하) 4:1-37

브리트 하다샤 Luke (눅) 1:26-38, 24:36-53

헤브론 חֶבְרוֹן(친구, 연합, 우정의 도시)에서 나눈 하나님 나라의 전략 회의

햇빛이 강렬한 대낮에 마므레(מַמְרֵא 기름지고 풍성한) 상수리 수풀 근처의 장막 문에 아브라함이 앉아 있습니다(창18:1).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사래에서 사라로 정체성이 바뀌고 할례를 통해 자아의 죽음을 지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친히 나타나 보여지십니다(봐예라וַיֵּרָא). 그곳의 이름은 헤브론입니다. 헤브론이란 친구, 연합, 우정이라는 뜻의 헤베르חֶבֶר에 접미어가 붙어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차고 넘치자 직접 확인하기 위해 오신 여호와와 두 천사는 바로 그 도시를 향하셨어도 됐을텐데 굳이 헤브론(친구의 도시)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들르십니다. 아마도 하나님은 속마음을 나눌 친구가 보고 싶으셨나 봅니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데 가는 김에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고, 마음을 나누고 싶은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아브라함도 바로 알아보고(할례를 행한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 완전히 아물지 읺았을 텐데) 달려나가 그들을 맞이합니다. 늘 장막 문에 앉아 있던 아브라함은 뜨거운 한낮,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시간에 세 사람이 눈앞에 다가오는 것을 보고 하늘에서 보냄 받은 분들 이심을 바로 알아봅니다.

“내 주여(아도나이), 내가 당신의 눈에서 은혜를 찾고자 합니다”(창18:3)

마치 노아가 하나님의 눈에서 은혜를 찾았듯이창6:8 아브라함도 그분들의 눈에서 은혜를 찾고자 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냥 지나가지 마시기를 간곡히 요청합니다. 하나님께 시선을 두고 있는 사람들, 하나님께 마음의 중심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찾습니다. 은혜를 간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함께 하심(임재), 그리고 동행입니다. 여호와는 여호와의 눈에서 은혜를 찾은 노아와 동행하셨고, 여호와의 눈에서 은혜를 구한 아브라함과 함께 머무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임재) 은혜를 절대 놓치지 않았던 아브라함은 근사한 점심 식사의 자리를 마련합니다. 식사의 자리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친구인 아브라함에게 두 가지를 나누십니다. 죽은 것과 같은 사라의 자궁에서 약속한 생명이 태어나게 될 것, 그리고 악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한 가지는 죽음을 이긴 생명을, 다른 한 가지는 심판과 멸망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점심 식탁은 하나님 나라의 전략 회의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을 통해 약속한 자녀를 낳게 하시려는 것은 그 자녀의 씨를 통해 메시아를 낳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계획하셨기 때문이며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반드시 악한 자들을 심판하실 것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였습니다.

사람들은 가장 친한 친구에게는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합니다. 속상한 이야기, 놀라운 계획, 좋고 나쁜 것 등 친구와 마음을 나눕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러셨습니다. 친구, 우정, 연합이라는 이름을 가진 헤브론에서 하나님은 친구인 아브라함에게 생명과 사망, 부활과 멸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깊은 이야기를 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향해 친구라고 부르기를 기뻐하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친구입니까? 나의 헤브론, 하나님과 가장 친밀함을 누리고 우정을 나누며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나의 헤브론은 어디입니까? 내가 하나님과 추억을 만들어 가는 장소가 나의 헤브론이 됩니다. 그곳 헤브론으로 우리를 찾아 들리시는 하나님의 눈을 바라볼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듣고 보고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초 – 쩨다카 צְדָקָה와 미쉬파트 מִשְפָּט (의와 공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생명과 죽음, 심판에 대한 모든 계획을 보이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친구로 여기셨기 때문이며 “그가 그의 자녀들과 그의 집안 사람들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창18:19). 여기서의 의, 쩨다카צְדָקָה는 ‘바른 상태’를 말합니다. 공도, 미쉬파트מִשְפָּט는 ‘바른 판단과 바른 결정, 재판에서의 판결’을 말합니다. 쩨다카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기초로 세워진 의로움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바로 서 있는 사람, 그 중심이 하나님께 정확히 맞춰져 있는 사람을 하나님은 의롭다고 하십니다. 이러한 쩨다카의 기초로부터 올바른 행위들이 자연스럽게 열매로서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도 쩨다카의 한 부분입니다. 또한 쩨다카,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서 있는 자는 바른 미쉬파트 즉, 바른 판단과 바른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판단과 결정의 기준이 하나님께 바로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해 하나님의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하신 이유는 이 두 가지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킹덤의 보좌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시편89:14에서는 “의와 공의 (쩨뎈 우미쉬파트צֶדֶק וּמִשְׁפָּ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 앞에 있나이다”라고 찬양합니다. 주님의 보좌는 그분의 나라의 통치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하나님의 킹덤을 세우기 위해 요구하시는 두 가지는 쩨다카와 미쉬파트, 의와 공도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기초와 기준으로 삼으려 하지 않고, 각자의 기준대로 판단하고 결정하려 합니다. 바른 쩨다카와 미쉬파트가 없는 세상은 점점 더 꼬이고, 혼란스럽고, 다툼, 분열, 살인, 전쟁 등과 같은 악과 불의로 가득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의가 가득한 이 세상에 쩨다카와 미쉬파트를 기초와 터전으로 든든하게 세워 그분의 보좌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오게 할 백성들이 아브라함을 통해 일어서게 될 것임을 계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반드시 크고 강한 나라(고이 가돌)가 되고 천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쩨다카)와 공도(미쉬파트)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창18:18-19)

여기서 그의 자식들은 아브라함의 혈통적 자녀들을 의미하며 권속들(아브라함의 집에 속한 자들)은 이방인들 중에서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녀가 되어 아브라함의 집에 속한 가족으로서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게 될 믿음의 자녀들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복을 받게 될 천하 만민(땅의 모든 민족들)이 크고 강한 나라의 백성이 되어 의)쩨다카(와 공도)미쉬파트(를 행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견고하게 세우고 보존하고 영원히 증가하게 하는 일을 하라고 아브라함을 먼저 택하셨습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3:7-9)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실 때부터 땅의 모든 족속들이 아브라함으로 인하여(안에서) 복을 받게 될 것을 계획해 놓으시고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가 된 우리는 창세기 12:1-3의 계획대로 아브라함의 자손과 그 집에 속한 자들이 되어 아브라함이 받아 누릴 복을 우리도 함께 누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3:2)

혈통적 자녀들뿐 아니라 이방인들 중에서도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녀가 된 믿음의 자녀들까지 모두 다 약속대로 아버지의 나라의 유업을 잇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롬4:16)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그에게 ‘죽은 것과 같은 사라의 자궁’을 통해 생명이 태어나게 하셨고 ‘죽은 것과 같은 혼돈과 공허의 세상’에서 빛과 생명이 충만한 하나님의 킹덤이 세워질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동시에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통해 반드시 잘못된 쩨다카와 미쉬파트는 하늘의 불로 심판하실 것임을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 안에서(쩨다카) 바른 행위를 하는 것과 바른 판단과 결정을 하는 것(미쉬파트)만으로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뢰하며 진리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섞여 들어와서 잘못 세워진 미쉬파트들의 기초와 뿌리를 뽑아내고 처리해야 합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아는 방법은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진리로부터 벗어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우리는 기준, 본질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을 알고 그 진리에 자신을 튜닝한 자는 자기 안에 쩨다카와 미쉬파트를 바로 세울 것이고주님은 이런 사람들을 모아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권과 평강의 증가함이 끝이 없이 확장되어 나가게 하실 것입니다.

예슈아로 완성된 부활과 영생

하나님은 사라의 죽은 자궁에 창조의 능력으로 이삭을 태어나게 하셨고, 처녀인 마리아의 자궁에 성령으로 예슈아를 잉태하게 하셨습니다(눅1:35).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믿음으로 자신을 내어드린 자의 순종을 통하여서 예슈아라는 구원을 오게 했습니다. 예슈아가 오시기까지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죽음을 통해 어떻게 사람들을 부활의 생명으로 일으키시는지 여러 번 보여주십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사르밧 과부의 독자가 죽었을 때 엘리야를 통해 살리시고(왕상17:22), 엘리사를 통해 어렵게 얻은 수넴 여인의 독자가 죽자 엘리사를 통해 살리십니다(왕하4:35). 하나님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주셨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슈아는 이 땅에 오셔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11:25-26)

예슈아는 죽으셨고, 또 부활하여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부활에 대해 들었지만 믿지 못했던 제자들은 부활을 직접 보고 믿고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슈아는 부활의 몸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자신을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씀 가운데 숨겨놓으셨던 아버지의 비밀이신 예슈아를 제자들에게 열어 보여주십니다(눅24:44-45). 예슈아는 부활을 통해 자신이 토라이시며 토라의 내용이시며 토라의 완성이심을 제자들에게 명확하게 알게 하시고 이것을 모든 족속에게 증거하는 증인이 되라고 명령하십니다(눅24:47-48). 그리고 이 증거는 오늘도 예슈아의 부활을 믿고 소망하는 증인들을 통해 전파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믿음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부활하여 천년왕국에서 예슈아와 함께 왕과 제사장이 되어 땅에서 다스릴 것 입니다.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계5:10)

누군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은 지금의 삶이 중요하지 왜 오지도 않은 재림과 부활을 이야기합니까? 믿음으로 이 땅에서 잘 사는 것이 더 낫습니다.” 이것은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은 사람들의 비웃음을 견뎌야 하고 그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 속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완성은 예슈아의 다시 오심을 통해 이루어질 우리 몸의 구속을 통해서 그분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오심이 멀지 않은 이때에 믿음으로 그것을 바라보며 환영할 준비를 하는 것이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합니다. 부활은 우리가 이 땅에서 더욱 믿음으로 살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통치를 실제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고 소망하는 것을 실제가 되게 합니다.

소돔의 심판을 통해 하나님은 온 세상을 향한 공의의 심판이 있을 것이지만 반드시 남은 자의 구원이 있을 것을 보여주십니다. 소돔은 의와 공도, 미쉬파트와 쩨다카가 무너진 세상을 보여줍니다. 그런 세상은 결국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킹덤을 이루실 계획을 아브라함을 선택하심으로 본격적으로 시작하셨고 그를 통해 의와 공도를 행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나타나고 그 백성들이 그 나라를 주님과 함께 세울 것임을 보여주십니다. 이삭의 출생과 그를 죽음에 내어주고 다시 살게 하신 과정은 하나님의 아들 예슈아의 탄생이 우리에게 구원을, 그의 죽음이 부활을 우리에게 가져오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할 것임을 예표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킹덤이라는 큰 나무 안으로 온 열방이 접붙임 받고 들어와 영생의 복을 누리도록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부활에 대한 믿음이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이고 하늘 본향에 대한 믿음이며 새 예루살렘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의 삶을 통해 보여주신 구속의 역사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밀입니다. 예슈아는 의와 공도, 쩨다카와 미쉬파트로 보좌의 기초를 삼으시고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통치를 이루실 것입니다.

“그의 나라는 영원하며 그의 통치는 무궁하리라”(단7:14,27)

출처: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적 관점으로 읽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Quoting from Reading the Torah Portion from the Hebrew Perspective in Jerusalem (Gen. Exod. Lev. Num. De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