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nd 베하르

בהר

산에서

파라샤 Leviticus (레) 25:1-26:2

하프타라 Jeremiah (렘) 32:6-27

브리트 하다샤 Luke (눅) 4:16-27 / Luke (눅) 4: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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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샤밭, 안식년

하나님은 사람을 쉬게 하시듯 땅을 쉬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하나님께 속해있듯이 땅도 하나님께 속해있기 때문입니다.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레25:23)

하늘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땅도 다스리십니다. 다만 땅의 영역을 사람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죄로 인해 자기 몸을 더럽혔고 땅도 더럽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구별되게 살 수 있도록 몸을 거룩하게 관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고 마찬가지로 땅을 건강하게 관리하는 방법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첫 번째 방법은 사람이 6일의 노동을 하고 7일에 샤밭 하듯이 6년간 열매를 내기 위해 수고한 땅을 7년째 쉬게 하는 것입니다. 땅은 생명을 낳고 자라게 합니다. 그 생명을 사람에게 주어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게 합니다.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땅도 노동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위해 수고한 땅을 쉬게 하시고 7년째에는 땅에 파종도 하 지 말고 가꾸지도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땅을 쉬게 하는 이유는 땅도 쉬어야 계속 사람을 위해 열매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7일째 쉼을 통해 회복과 새로운 사이클을 시작하듯이, 땅도 7년째 쉼을 통해 회복과 신선한 열매 맺음으로 나아갑니다. 7일째 안식일이 사람의 쉼과 회복을 위한 사이클이라면, 7년째 안식년은 땅의 쉼과 회복을 위한 사이클입니다. 쉼과 회복을 통해 하나님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샤밭은 회복과 재창조를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시간이며 완성을 위한 시간입니다.

레위기 25:2에서 말씀하는 안식년 규정이 땅에 대한 규정이긴 하지만 정확하게는 ‘그 땅, 하아레쯔הערץ’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너희가 들어가서 살게 될 ‘그 땅, 하아레쯔הארץ’라고 말씀하실 때 그 땅은 약속의 땅 곧 이스라엘이며 우주의 중심인 예루샬라임을 말합니다. 광야의 땅에서는 안식년에 대한 규례가 없었습니다. 이 규례는 ‘그 땅, 하아레쯔הֲארץ’에서 적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땅’이라고 강조하신 이유는 ‘그 땅’을 태초부터 특별히 구별하셨고 ‘그 땅’을 통해 하나님의 킹덤의 영역이 확장될 것을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구별된 땅을 통치의 중앙 수도로 삼으시고 온 땅을 통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에게도 땅에게도 구별된 시간을 허락하셨습니다. 멈춤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하고 쉼을 통해 회복을 거쳐 더 새로움으로 나아가고 새로운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새로움을 위한 멈춤의 시간이 샤밭입니다. 또한 샤밭은 우리가 할 것이 아무것도 없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주님의 통치를 누리는 시간입니다. 자칫 우리가 땅의 소출에 묶이고 재산에 묶이고 일에 묶여 노예가 되지 못하도록 샤밭을 통해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맛보게 하십니다. 그래서 샤밭에 쉬어도 하나님이 준비해두신 더블 포션의 은혜로(금요일 새벽에는 두 배의 만나를 거둘수 있도록 내려주셔서 사밭을 준비하게 하심) 우리는 우리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풍성하게 살 수 있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7번째 날의 샤밭을 위해 전날 2배의 은혜를 준비해 주시는 것처럼 하나님은 땅의 7번째 해의 샤밭을 위해 그전 해인 6번째 해에 3년 동안 먹을 음식을 넉넉하게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레25:21). 6번째 해에 먹을 음식과 7번째 해에 먹을 음식, 또 7번째 해에 파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8번째 해에 씨를 뿌려도 거두는 시간이 있기까지 여전히 소출이 없기에 그 해까지 먹을 수 있는 것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7번째 해에 땅에 파종도 하지 않고 소출도 없으면 무엇을 먹으며 살까 염려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신뢰함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은 3년 동안 먹을 것을 책임져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샤밭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과 내가 하지 않고 하나님이 하신다는 믿음의 훈련을 갖게 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논리로 볼 때 일을 멈추면 그만한 대가를 받을 수 없고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샤밭이라는 시간은 없어지고 닳아버리는 시간이 될 것 같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모든 것을 책임져 주겠다는 약속이자 하나님이 이미 주신 것을 더 풍성히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구별하신 땅은 이스라엘이고, 처음으로 구별하신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이며, 처음으로 구별하신 시간은 샤밭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특권이 아니고 시작입니다. 시작이 있다는 것은 끝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땅과 사람은 샤밭이라는 시간의 패턴을 통해 하나님을 기억하고, 모든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에 의해 완성될 것입니다. 멈춤과 회복을 통해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 이것이 안식일, 안식년(샤밭)의 의미입니다.

모든 것을 원상태로 돌리시는 희년의 은혜

땅과 사람을 회복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선포하신 또 하나의 시간은 ‘희년’(요벨יוֹבל)입니다. 희년은 시간뿐 아니라 땅이라는 공간의 회복을 포함합니다. 7년의 안식년을 7번을 지나면 49년이 되고, 다시 49년의 주기가 시작하는 첫 해인 50번째 해를 하나님은 희년으로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50번째 해인 희년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사람도 땅도 원래대로 회복되고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그래서 희년에는 땅, 가옥, 돈, 사람의 몸까지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하나님은 땅은 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레25:23). 또한 이스라엘 백성은 나의 종이라고 말씀하십니다(레25:55). 하나님은 처음부터 구별하신 땅 이스라엘을 돌보고, 가꾸고, 다스릴 구별된 백성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내 땅에 거주하며 나를 섬기는 나의 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자기 소유를 팔고, 빚도 지다가 몸까지 종으로 팔리게 되는 상황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구별하신 땅과 사람들이 이런 묶임과 노예 상태에 계속 있지 않도록 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유를 얻게 하기 위해 모든 상황을 다시 원점으로 돌리는 시간인 희년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희년은 놀라운 자유와 해방의 해입니다.

희년이 선포되는 날은 50번째 해의 대속죄일입니다. 금식하며 스스로 괴롭게하는 안식일 중에 안식일인 대속죄일이 끝나는 저녁 무렵에 전국에서 뿔나팔이 불리면서 자유와 해방이 선포됩니다. 대속죄일은 아사셀(아자젤)에 의해 들어온 인류 죄악의 근원을 다시 아사셀(아자젤)에게 돌려보냄으로써 죄악으로부터 분리의식이 집행되는 날입니다. 우리의 죄를 하나님이 덮어주실 뿐만 아니라 죄악으로부터 완전하게 분리시켜 주십니다.

예슈아는 초림의 사역 때 이미 각 개인에게 희년을 선포하시고 희년을 적용해 주시며 공생애를 시작하셨고(눅4:19) 재림 때 인류와 지구를 위해 희년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대속죄일에 재림하심으로 완전한 희년을 선포하실 것입니다. 레위기 25:9에서 ‘뿔나팔 소리를 내라’고 할 때 뿔나팔은 요벨יוֹבל이라는 단어인데 이것이 희년을 뜻합니다. 희년, 요벨יוֹבל은 숫양의 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벨יוֹבל은 야발יבל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되는데 야발יבל은 ‘나르다, 가져오다, 혹은 앞장서서 인도하여 데리고 들어가다’는 뜻을 가집니다. 또 ‘흐르다’는 뜻도 있습니다. 예슈아는 희년에 희년의 뿔나팔이 울릴 때 앞장서서 인도하여 당신의 왕국으로, 회복된 에덴-동산으로 우리들을 데리고 들어가실 것입니다.

희년 사역자

예슈아는 공생애 첫 사역을 나사렛에서 이사야 61장의 희년을 선포하심으로 시작하셨습니다(눅4:16-21). 모든 것이 정렬되는 은혜의 해를 선포하심으로 질병과 재앙과 탐욕으로 물들어진 사람과 땅의 회복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희년은 의와 공평과 평강으로 다스려지는 하나님 킹덤의 모형입니다. 이것은 시간의 회복이자 공간인 땅의 회복이며 사람의 회복입니다. 예슈아께서 첫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이사야 61장을 선포하실 때 은혜의 해까지만 읽고 선포하셨습니다(눅4:19). 이사야 61장에서는 기름부음 받은 자가 은혜의 해뿐만 아니라 신원의 날 즉, 보복하여 원수 갚아 주시는 날을 선포할 것이라 말씀합니다. 그러나 예슈아는 자신의 사역을 시작하면서 은혜의 해는 선포하셨지만 신원의 날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슈아의 초림부터 재림 직전까지는 모든 이에게 구원의 기회가 주어 지며 예슈아를 믿음으로 고백하는 이들은 은혜로 하나님 나라에 받아들여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슈아의 재림 사역 때에 그분은 신원의 날을 선포하실 것입니다. 신원의 날은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영화로운 날’에 하실 사역이기에 예슈아는 초림의 초기 사역에 은혜의 해만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은혜의 해에 살고 있습니다. 기름부음 받은 메시아의 이 두 가지 사역은 이사야 61:2에서 접속사 하나의 간격을 두고 있지만 시간적으로는 약 2천 년이라는 긴 시간 간격이 있습니다. 긴 은혜의 해가 지나고 신원의 날이 이제 곧 올 것입니다. 그 날이 오기 전에 아직도 구원의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슈아처럼 은혜의 해를 선포해야 합니다. 사탄과 사탄을 따르는 악한 자들의 창궐로 예슈아를 믿는 의인들은 고통을 당하게 되겠지만 예슈아가 오기 전까지는 악인들에게도 여전히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여호와의 신원을 날’을 선포해야 할 마지막 때에 가까이 이르렀습니다.

예슈아의 사역은 희년 사역이었습니다. 눈 먼 자의 눈이 회복되어 다시 볼 수 있게, 눌린 자들, 묶인 자들을 자유롭게, 마음이 상한 자를 치유하심으로 영, 혼, 육의 온전한 회복을 가져오셨습니다. 희년은 모든 것의 회복입니다. 물질과 인간의 회복, 소유 관계의 회복, 소속 관계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균형을 가지고 함께 자라고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경계를 정해 주셨습니다. 이 경계는 서로를 보호하는 경계이자 또한 생명을 침범하지 않고 함께 자랄 수 있도록 지켜주고 누릴 수 있게 해 주는 경계입니다. 처음에는 사람에게 물질이 주어졌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물질에 집착하게 된 사람은 어느 순간 물질에 종속되고 지배를 받게 됩니다. 소속이 바뀌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주객이 전도되면서 자유가 감소할 때 물질의 권세가 증가합니다. 이것이 종말의 때에 세상의 대부분을 장악하고자 하는 큰 성 바벨론 시스템입 니다. 하나님이 우상숭배를 하지 말 것과 안식일을 지킬 것을 말씀하신 것도 시간이 흐르면서 무질서하게 되고 주객이 전도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상숭배는 섞이게 되고 거룩함과 하나님 형상으로서의 고귀함을 잃어버리게 되는 요인이고 샤밭을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의 시간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오차가 생겨 무엇이 우선 순위가 되어야 하는지를 놓치게 합니다. 희년의 축복은 회복과 완성입니다. 희년의 축복은 희년의 해에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상숭배를 철저히 차단하고 주님의 시간 안에 맞춰진 삶은 우리로 하여금 희 년의 축복을 누리게 할 것입니다.

우리 안에 주객이 전도된 부분이 있다면 희년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말씀대로 살 것을 결단해야 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거부하고 거짓말을 진리처럼 둔갑시켜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속박이라고 하면서 자유롭게 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자유가 아닌 세상과 마귀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자유를 줄 수 없습니다. 세상은 조건을 걸고 통제하고 조종하려고 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 안에서 사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평안합니다.

희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는데도 희년을 적용하는 것이 게울라(토지무르기, 기업무르기, 구속)입니다. 예슈아께서는 바로 이러한 게울라를 위해서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기름부어주신 이유는 그리스도의 게울라를 통하여서 자유케하는 성령의 부어짐으로 내 안에 이루어진 희년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빼앗긴 자들에게 찾아가 희년을 선포해주는 희년 사역자로 부름받았습니다. 나에게 기름부어 주신 이유는 빼앗긴 영혼들에게 때가 이르기도 전에 때를 앞당겨서 희년의 뿔나팔을 불고 선포해 주어서 희년을 맛보게 하고 희년을 미리 살아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기름부음 받은 당신은 희년 사역자입니까?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눅4:18-19)

출처: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적 관점으로 읽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Quoting from Reading the Torah Portion from the Hebrew Perspective in Jerusalem (Gen. Exod. Lev. Num. De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