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rd 베후코타이

בחקתי

나의 규례 안에

파라샤 Leviticus (레) 26:3-27:34

하프타라 Jeremiah (렘)16:19-17:14

브리트 하다샤 Mathew (마) 22:1-14 / Mathew (마) 16: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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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은 것을 의로 여기시고 반드시 그 자손들에게 하나님이 선택하신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며 하나님 단독으로 쪼갠 제물 사이를 지나가시며 무조건적인 언약을 맺으십니다(창15:17-18). 이 언약은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무엇인가를 지키거나 행해야만 실행되는 언약이 아니라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이 스스로 반드시 실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언약입니다.

그 후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탄식하며 부르짖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시며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시나이 산으로 이끌게 하셔서 시나이 산 언약을 맺으십니다(출19:5-6). 이스라엘 자손을 하나님이 선택하신 땅으로 들여보내실 준비를 하시면서 그들이 완전히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말씀하시며 ‘거룩’을 요구하십니다(레19:2). 그들의 정체성과 존재의 목적이 세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시면서 그들이 다르게 살아야 할 것을 규례와 계명을 통해 가르쳐 주십니다. 세상과 다르다는 것은 그들이 이 땅에 속해 살지만 땅에 속한 자들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들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늘에 속한 자들, 하나님께 속한 자들로서 거룩을 지키며 살 때 그들이 비로소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열방의 축복의 통로인 제사장 나라가 될 수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시나이 산 언약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이 얼마나 연약한 질그릇인지 잘 아셨으며 그들이 쉽게 깨어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설 것을 미리 아시고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과는 다르게 조건 언약을 맺으십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땅으로 들어가게 하고 차지하게 하는 것은 그들의 어떠함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주권으로 무조건적으로 행하시겠다고 하셨지만 그 땅을 거룩하게 하고 그 땅에서 잘 살아가는 것은 그들이 어떻게 선택하고 행하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어떤 조건 즉, 바운더리를 허락하십니다.

이것은 마치 에덴-동산의 중앙에 있었던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처럼 그들 앞에 생명(하임חיים)도 있지만 사망(마벹מבת)도 있고 복(브리카ברכה)도 있지만 저주(클랄라קללה)도 있고 좋고 선함(토브טוב)도 있지만 나쁘고 악함(라아רע)도 있음을 말씀하시며 그들에게 선택권을 주신 것과 같습니다(신30:15, 30:19). 하나님은 가장 선하고 좋은 것을 그들에게 주셨지만 그것을 지키고 유지하며 확장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미래는 결국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달려있음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지극히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을 누리며 번영하게 하는 것은 우리들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앞에 언제나 생명과 사망, 선함과 악함, 좋음과 나쁨, 복과 저주가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택권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존재로서 우리에게 하나님과 같은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조종하고 통제하는 신이 아니라 자유함 가운데 기쁨과 축복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자발적인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선택하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우리의 자유의지는 타락했습니다.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기준이 모두 제각각이고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어둡고 악한 것, 보기에는 좋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사실은 사망에 속한 것을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문을 열어 주었기에 선택의 기로에서 온전한 분별력을 가지지 못한 채 머뭇머뭇하거나 어둠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 때에 비로소 우리는 선과 악의 명확한 기준을 알 수 있게 되고 바른 선택을 할 수 있기에 하나님을 아는 것에 힘써야 합니다(호6:3).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신 조건은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레 26:3)”입니다. ‘준행한다’는 히브리어 할라크הֲֲלך는 ‘걷다, 행하다’는 뜻을 가집니다. 하나님의 규례와 계명 안에서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결정하고 그 안에서 걸어갈 때 하나님은 물질의 번영과 이방 민족들이 함부로 하지 못할 강성함과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처소를 두시고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레26:3-13). 이집트에서 오랜 시간 노예로 살았기에 선과 악의 분별도 불분명하지만 이방 풍습과 문화에 익숙한 그들은 하나님 킹덤의 문화와 삶의 모습을 알지 못하기에 하나님이 규례와 계명들로써 그들을 보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땅,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약속하신 땅은 그냥 땅이 아니고 하늘이 땅으로 내려와 하늘과 땅이 만나 어우러졌던 첫 장소였으며, 다시 하나님의 집이 세워질 장소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영원한 새 예루살렘 터가 될 장소의 땅이었기 때문에 그 거룩한 땅을 이스라엘 자손이 합당하게 지키지 못할 경우 하나님 스스로 땅을 보호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땅을 에덴-동산의 중심으로, 온 우주의 중심으로 삼으셨기에 가장 소중 한 곳을 자신이 친히 선택하신 백성에게 맡기셨고 그들이 그것을 잘 가꾸고 지켜주길 원하셨습니다(창 2:15). 그들이 에덴-동산의 중심인 그 땅을 잘 관리하고 지켜주어야 온 열방으로 에덴이, 하늘 통치가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 땅을 잘 지킬 수 있는 방법은 그들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고 그것은 곧 하나님의 규례와 계명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규례와 계명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땅에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받고 번영과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규례와 계명은 ‘넌 내 소유이기 때문에 내 말만 들어야 돼’라고 하는 조종과 통제가 아니라 ‘너가 내 안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고 행복하다’고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그 규례와 계명 안에 살아가고 걸어갈 때 우리의 정체성과 존재 목적을 분명히 알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막(성소)를 지키라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따로 불러내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심을 천하에 알리신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거하셨고 그곳이 바로 성막입니다. 성막(성소)은 이스라엘 자손을 친히 진두지휘하시는 하나님의 현존하심, 임재가 역동적으로 머무는 곳입니다. 이곳은 하나님과 결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는 거룩한 처소이기에 이 처소를 가꾸고 돌보는데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의 헌신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소를 위한 헌신으로 서원값을 성별과 연령별로 지정하시고 성막의 유지와 성막을 직접 돌보는 제사장들의 수고비를 채워주는 일에 사용하도록 하십니다. 서원값이란 이스라엘 자손들이 신부로서 신랑과 함께 머무는 집을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필요한 재정이면서 동시에 연합의 아름다운 장소를 위한 사랑과 헌신의 마음입니다.

서원값 이외에도 하나님은 가축으로 드려지는 예물이나 자기 소유 중 집이나 밭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기 원할 때, 혹은 하나님께 자원하여 드렸지만 특별한 이유로 다시 무르고 싶을 때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찾아야 할지에 대한 규례를 주심으로써 하나님께 바쳐지는 모든 것들을 거룩하고 소중하게 다룰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 께 바쳐진 것 중에서도 완전히 드려진 것의 경우는 거룩하기 때문에 다시 무르지 말라고 하십니다(레27:28). 여기서 ‘완전히 드려지다’는 의미의 히브리어 헤렘חרם은 ‘완전히 헌신되다, 혹은 완전히 파멸되다’라는 두 가지 상반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이방 신들과 하나님을 모욕한 경우 하나님은 어떤 것도 살려두지 말고 완전히 진멸하라고 명령하시는데 이 때 쓰이는 단어가 헤렘חרם입니다.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고 거역한 것이라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조금이라도 남겨두지 말고 아까워하지 말고 완벽하게 파괴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같은 단어인 헤렘이 하나님께 바쳐질 때 역시 아까워하지 말고 조금의 주저함 없이 온전하게 바쳐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모든 생축의 처음 것과 하나님이 주신 모든 소유 중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이것은 거룩한 예물이기에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라고 명령하십니다.

서원값과 자원하는 예물, 집, 땅, 생축의 처음 것, 그리고 십일조는 모두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막과 그 성막을 섬기는 제사장들을 위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헌신과 섬김입니다. 또한 성막을 지키는 것은 우리 자신을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거하시는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막을 돌보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을 돌보는 것이며 이것은 하나님을 향해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순종은 우리에게 생명과 축복을 주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예복을 준비하라

한 왕이 자신의 나라와 아들을 위해 잔치 자리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청한 사람들, 왕국의 잔치에 참여하도록 초청장을 받을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자기 밭이나 자기 사업으로 인해 거절하거나 혹은 왕이 보낸 종을 잡아 모욕하고 죽임으로 왕을 대적하였습니다. 왕은 노하여 왕의 청함을 처음으로 받았던 동네를 진멸하고 불살라 버립니다. 그리고 청한 사람들이 합당하지 않으니 만나는 대로 아무나 길에 가서 사람들을 데려오도록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먼저 하나님 킹덤의 잔치에 초대하셨습니다. 그들을 먼저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사랑하시는 그 땅에 들어가게 하였고 그들에게 밭도 주시고 집도 주시고 소유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에게 허락한 왕의 은혜는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 소유에 집착하거나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종을 죽이며 대적하는 과감한 거역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먼저 선택받은 그들이 합당하지 않음으로 그들의 악함을 불살라 버리시고 하나님 킹덤의 잔치 자리에 모든 이들, 열방을 초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초대에 모든 사람들이 청함을 받아 참석할 수 있었지만 예복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결국 손발이 묶여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청함은 받았지만 택함은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마22:14). 예복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단장된 우리의 속사람을 의미합니다. 속사람, 생각과 의지와 마음이 하나님의 규례와 계명을 지키고 따름으로써 다듬어지고 정결하게 된 사람이 예복을 준비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규례와 계명인 말씀을 따르지 않은 사람은 예복이 준비되지 않아 결국은 하나님의 킹덤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규례와 계명은 우리의 예복을 잘 준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고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우 리의 속사람, 성전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속사람이 항상 하나님을 향하여 있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는 세상과 나를 구별하여 거룩함으로 사는 자가 될 것입니다. 거룩, 그것은 하나님의 킹덤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완 성시켜 주는 길입니다.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자기에게 주어진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계22:14)

출처: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적 관점으로 읽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Quoting from Reading the Torah Portion from the Hebrew Perspective in Jerusalem (Gen. Exod. Lev. Num. De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