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th 바미드바르

במדבר

광야에서

파라샤 Numbers (민) 1:1-4:20

하프타라 Hosea (호) 1:10-2:20

브리트 하다샤 Romans (롬) 9:22-33 / Matthew (마) 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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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정렬하라

한자로는 이 책의 이름을 ‘민수기民數記’라고 번역하였고 그 뜻은 ‘백성들의 수를 세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이 계수하도록 하신 것은 백성 전체가 아니라 싸움에 나갈 만한 20세 이상의 남자들이었습니다(민1:3). 하나님이 싸움에 나갈 남자들을 계수하게 하신 이유는 땅에 하나님의 통치를 섬길 하나님의 군대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계수하다’로 쓰인 히브리어 나싸נָָָׂשׂא는 ‘들어올리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군대가 되어 하나님의 킹덤을 위해 싸울 거룩한 자들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들이 싸워야 할 싸움은 욕망과 욕심으로 점철된 민족 간의 정복전쟁이 아니라, 거룩한 그 땅에 하나님의 킹덤을 세우기 위해 어둠과 악을 몰아내는 거룩한 전쟁이 될 것이기에 그 전쟁에 참여할 군대들이 하나님께 거룩하게 드려지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전쟁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사탄과 이 세상의 임금들에게 빼앗긴 영역을 우리가 되찾아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친히 용사가 되어 앞으로 나가시며 대적들을 치십니다(사42:13). 대적들을 치실 때 하나님은 친히 자신의 군대 장관을 세우시고 그에게 기름을 붓고 하늘의 권위를 더하십니다. 그리고 하늘의 군대와 함께 싸울 땅의 군대를 소집하시고 정렬하십니다. 마지막 날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왕이자 모든 군대의 군대 장관으로 진두지휘하시면서 사탄과 땅의 임금들을 완전히 멸망케 하시고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모두 되찾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킹덤이 세워질 때 그 나라의 리더가 될 자들은 결단코 어둠에 자리를 내어 주지 않고 싸워야 할 때는 싸워서 하나님의 것을 지켜내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세우기 위해 비진리로 섞여 있는 말씀이 아닌 순전한 진리를 사모하고 그것을 위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길 힘쓰는 자들을 하나님의 군대로, 용사이자 신부로 세우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악하고 더러운 민족들이 차지하고 있던 약속의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하기 위해 전쟁할 수 있는 군대를 모집하셨던 것처럼, 지금 마지막 때 세상과의 싸움에서 진리를 들고 치열하게 싸워내고 메시아닉 킹덤에서 다스리며 왕노릇 할 자들을 세우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계수되어 하나님께 올려졌을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머무는 곳을 군대의 진영(마하네מַחֲנֶה)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질서대로 진을 치도록 명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각각 자기 진영의 군기와 자기의 조상의 가문의 기호 곁에 진을 치되 회막을 향하여 사방으로 치라(민2:2)

군대의 진영은 히브리어로 마하네מחנה지만 하나님의 군대의 진영을 말할 때 성경에서는 마하나임מחנים이라고 부릅니다(창32:2). 이 단어는 마하네מחנה의 쌍수 형태로 ‘두 군대의 두 진영’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군대는 두 군대의 진영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며 두 군대란 하늘의 군대와 함께 이 땅에 이뤄질 땅의 군대를 의미합니다. 하늘의 군대는 가장 높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를 여러 겹으로 둘러서 하늘 보좌를 호위하는 천군들이며 땅의 군대는 땅에 있는 하나님의 성막(미쉬칸)을 중심으로 둘러 진을 치고 그 임재를 보호하는 군대이자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를 호위하는 군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군대를 계수(나싸נשא)하셔서 그들을 하나님께 올려지도록 하심으로 하나님의 마하나임מחנים, 두 군대의 진영을 완성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군대는 거룩한 자들로 하나님의 킹덤을 위해 싸우고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슈아가 온 하늘과 땅을 통치하시기 위해 오실 때가 가까웠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은 군대 장관으로서 전쟁하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천사들의 군대의 가장 앞에 서서 내려오시고 천사들의 군대는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이 땅에서의 전쟁과 하나님의 일을 수 행할 것입니다(마13:41, 49, 16:27, 24:31, 25:31).

하나님은 하나님의 킹덤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의 표가 새겨진 거룩한 군대를 세우고 계십니다. 이 거룩한 군대는 이스라엘 백성이 미쉬칸을 중심으로 움직였듯이 하나님의 임재를 자신의 삶의 중심으로 두고 하나님이 움직이라 하실 때 움직이고 멈추라 하실 때 멈추며 어느 곳에 있든지 감사와 찬송으로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자들로서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낮출 줄 아는 예배자들일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거룩한 군대가 정렬되는 때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되찾고 하나님의 킹덤을 이루기 위해 싸우고 되찾아 차지할 군대를 하나님이 세우고 계십니다.

미쉬칸을 지키는 레위인

군대를 계수할 때 하나님은 레위 지파는 계수하지 말도록 명하셨습니다(민1:49). 그리고 계수되지 않은 레위 지파의 사람들을 하나님은 레위인이라 부르시며(민1:51) 그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다른 지파들과는 구별된 직무를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군대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호위하는 사명을 맡기셨다면 레위인들에게는 영광과 임재가 머무는 미쉬칸, 증거의 성막을 지키고 관리하고 나르는 책임을 맡기셨습니다(민1:53).

하나님은 레위인들의 진영을 이스라엘 지파들처럼 동서남북으로 진을 치게 하셨는데 그들을 성막과 백성들 사이에 두심으로 레위인들이 성막 주위를 둘러싸서 성막이 거룩하게 지켜지도록 하셨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서서 중보하는 일을 하며 하늘과 땅을,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여 하나되게 하는 자들입니다. 오늘날 레위인의 직무로 부름받은 자들은 예배자들입니다. 예배자는 이 땅에서 하늘 보좌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함으로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하나님께 나아가길 소망하는 회중들의 시선과 마음이 보좌를 향할 수 있도록 회중들을 하나님과 연결하는 자들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 앞에 겸손히 엎드리며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자의 삶은 엎드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엎드릴 때 비로소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서서 섬길 수 있을 것입니다.

레위인은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를 대신해서 하나님께 드려진 자들입니다(민3:41). 장자는 생명과 힘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의 시작인 장자가 하나님께 속하도록 하심으로 생명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는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셨습니다. 또한 이집트의 사람이나 짐승의 모든 첫 번째 것을 치시던 그 날에 하나님은 모든 장자를 구별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민3:13). 그래서 하나님에게 있어서 장자는 생명의 시작이자 구별된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장자들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대신 레위 지파를 선택하셔서 그들이 하나님께 드려짐으로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의 역할을 대신하도록 하셨습니다(민3:41). 그래서 레위인은 하나님께 구별되어 드려진 영적인 장자입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자로서, 또한 영적인 장자로서 드려진 레위인들이 맡은 직무는 샤레트שֵר ת라고 불렸는데 이것은 성소의 기구들을 다루거나 섬길 때 쓰였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4:3에서 레위인으로서 봉사의 직무를 감당할 때 ‘회막의 일’이라는 단어와 4:23, 35, 39, 43의 ‘회막 봉사’라는 단어는 샤레트שרת가 아닌 짜바צבא라는 단어로 쓰였습니다. 짜바צבא는 군복무를 의미하는 단어로 ‘군대가 행진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또 하늘의 천체들이 움직일 때도 이 단어가 사용됩니다.

레위인이 회막의 일과 봉사를 감당하는 것은 샤레트שרת, 섬김이면서 동시에 군복무를 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레위인의 봉사 자체는 여호와의 군대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임재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전쟁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천군천사들이 하늘 보좌를 지키듯이 땅의 보좌인 미쉬칸(성막)을 위해 악한 것들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는 일이 레위인의 일이었습니다. 성막을 나르고 이동하는 일은 단순히 물건을 나르는 것이 아니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의 거처를 나르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이 움직이실 때 레위인들의 섬김으로 움직이셨고 하나님의 영광을 운반하는 자들로 레위인들을 택하시고 그들의 어깨에 영광을 맡겨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드리고 이 땅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미쉬칸을 섬기고 지킴으로써 하나님과 백성을 연결하는 자들인 레위인은 오늘날 예배자들입니다. 예배자들은 레위인처럼 하늘의 영광을 땅에 전달하도록 부름받았고 또한 하나님을 가까이서 섬기는 영적인 장자입니다. 예배자의 어깨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운반하는 일이 맡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자의 삶은 레위인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한 새사람을 통해 정렬되는 땅의 군대

하나님은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을 배신하였을 때 진노하심으로 선포하셨던 로루하마לֹא רֻחָמָה와 로암미לֹא עַמִִּי는 오히려 긍휼히 여김 받지 못했던 백성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 자들을 긍휼히 여김을 받게 하시고(루하마רֻחָָמָ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는(암미עַַמִִּי) 은혜로 더 넘쳐 흐르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호2:1).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변 민족들로 흩어져서 혼혈 정책으로 섞이게 되면서 이방인과 다름없이 되어 구분되지 않을 정도가 되었지만, 오히려 북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계획은 열방에 흩어진 이방인들에게로 흐르게 되었습니다.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들이라’ 일컬음을 받은 구원받은 자들이 열방 가운데서 바닷가의 모래같이 되어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이 많아지게 되면서 ‘이스라엘’로서 유대인들과 연합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9:24-26에서 호세아 1:10의 개념을 인용하면서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많음’을 ‘이방인 가운데서 구원받은 자들의 수가 많음’으로 연결시켜서 이해하였으며 이것은 로마서 11:25의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즉, ‘이방인 가운데 구원받을 자들의 그 수가 충만하게 다 찰 때’라는 개념으로 해석했습니다. 우리 이방인들은 전에는 하나님의 긍휼을 받지 못했고 하나님의 백성도 아니었으며 죄와 허물로 죽어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엡2:2-3).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 크신 사랑으로 사랑하셔서 전에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 우리가(로암미)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받아 주셨고(암미), 전에 긍휼을 얻지 못하던 우리가(로루하마) 이제는 긍휼을 얻는 자들이 되게 하셨습니다(루하마). 

사도 베드로도 호세아 1:10의 개념을 그의 서신에서 인용하며 이방인이 긍휼을 얻고 그분의 백성이 되어 이스라엘 자손의 수에 들어오게 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2:10)

결국 그 날에는(바욤 하후בַַיּוֹם־ ַהַהוּא) 유다 자손(유대인)과 이스라엘 자손(이방인)이 함께 연합하여 한 우두머리인 예슈아를 중심으로 에덴-동산의 자리로 다 모여서 한 분 메시아를 섬기게 될 것입니다(호1:11). 오랜 시간 동안 멀리 분리되어 있었던 유대인과 이방인의 연합은 결국 한 새 사람을 이루어 이 땅의 강력한 하나님의 군대로 서게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가려졌던 눈과 귀가 열리면서 예슈아가 유대인의 왕이시고 참 통치자이시며 우두머리이심을 인정하고 고백하게 될 때, 그리고 교회가 예슈아의 재림과 여호와의 날을 말씀을 통해서 바로 보고 깨닫기 시작하여 이스라엘과 함께 설 때 땅의 군대가 한 새 사람의 연합으로 정렬될 것이고 지금 우리가 그러한 때 바로 직전에 서 있습니다. 땅에 세워질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서 호위하고 그 보좌에 좌정하실 메시아의 영광을 둘러 쌀 땅의 거룩한 군대가 한 새 사람으로 정렬되어 가고 있습니다.

출처: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적 관점으로 읽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Quoting from Reading the Torah Portion from the Hebrew Perspective in Jerusalem (Gen. Exod. Lev. Num. De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