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th 짜브

צו

명령하라

파라샤 Leviticus (레) 6:8-8:36

하프타라 Jeremiah (렘) 7:22-8:3, 9:23-24

브리트 하다샤 Hebrews (히) 9:11-28 / Matthew (마) 9:13-25

말씀을 누르면 성경을 읽으실 수 있는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Clicking the word will take you to a Bible reading page

코르반 올라, 다 태워 올려 드리는 예배를 위한 하나님의 명령

희생제사는 하나님이 예물을 받으시려는 것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는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신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감으로 생명을 얻고 하늘에 속한 것을 맛보고 하나님과 화목함을 누리도록 하신 것이 희생제사의 목적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자신의 백성들에게 부어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고(봐이크라 ויקרא) 먼저는 5가지 희생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는 길을 가르쳐 주셨고, 다음으로는 제사들을 행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규례들을 명하셨습니다(짜브צַו). 특별히 이 규례들은 제사를 드리는 과정 가운데서 제사장들이 숙지해야 할 내용들을 명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고 모세를 통해 아론과 그의 아들들(제사장들에게)에게 제사의 규례들에 대해 말하도록 하셨습니다(레6:9,25).

희생제물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태워드려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번제(코르반 올라)의 제사를 위해 하나님은 번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할 것을 3번 반복하여 말씀하시며, 저녁 시간에 번제로 드렸던 제물이 그 다음 날 아침까지 있게 하여 제단의 불이 다음 날 아침까지 꺼지지 않게 하라고 명하십니다(레6:9-13). 번제단의 제물을 태우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24시간 동안 번제단의 불자체가 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라고 명하셨을까요? 이 불은 성막 완공 후 봉헌식 때 하늘에서 떨어진 불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 드려지는 희생제물을 태우는 불은 하늘의 불이어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불이 아닌 하늘에서 내려온 거룩한 불로써 하나님은 번제단과 희생제물까지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번제단과 분향단에서 쓰이는 모든 불은 하늘에서 내린 거룩한 불로만 사용하도록 하셨습니다.

거룩한 불이 임하여 우리에게 닿으면 그 불은 우리를 거룩하게 타오르게 합니다. 마치 메마른 떨기나무에 거룩한 불이 붙어 타오르지만 소멸하지 않고 그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했듯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룩한 불을 내려주시면 우리가 아무리 메마른 상태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와 함께 할 것이며 우리 안에서 타오르는 거룩한 불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하늘의 불은 땅에 내려온 하늘의 현현이고 하나님의 임재이며 영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늘에서 보내주신 거룩한 불이 번제단에서 꺼지지 않게 하여 희생 제물이 거룩한 불에 의해서만 태워지도록 명령하신 것이고, 이후 이 불은 수백년 동안 꺼지지 않게 지켜졌습니다. 거룩한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유지되게 하기 위해 제사장들은 아침과 저녁으로 매일 드리는 상번제의 제사를 하나님께 올려드렸고, 제사를 드릴 때 희생제물을 남김없이 다 태워드림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려지는 향기로운 예배가 되게 하였습니다.

코르반 올라, 번제의 제사는 자기의 생명을 다하여 모두 태워드리는 것이고 이 제사를 위해 드려진 희생예물의 절정은 죽음입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명과 전 인생을 온전한 번제로써 하나님께 드리심으로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주시며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셨습니다.

향기로운 냄새로 번역된 히브리어 레아흐 니호아흐 ריח ניחוח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위로하는 향기’라는 뜻입니다. 레아흐ריח는 ‘향기fragrance, 냄새scent, 아로마 aroma’라는 뜻이며 니호아흐ניחוח의 동사 원형인 누아흐נוח는 ‘쉬다, 잠잠히 머물다’는 뜻 입니다. 누아흐가 니호아흐ניחוח가 되어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는, 진정시켜주는’이라는 뜻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아낌없이 모든 것을 태워드리는 예배를 올려드릴 때 그 예배가 하나님의 마음을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며 위로하는 향기가 되어 하늘 보좌에 퍼진다는 것을 하나님은 ‘향기로운 냄새’라고 표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그저 예물을 태운 냄새가 아니라 예물을 통해 담긴 사랑과 헌신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종교 의식이 아니고 형식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오도록 부르시고 길을 열어주신 예물(코르반)을 통해 우리의 사랑과 헌신, 중심을 담아 나아갈 때 그 예배는 하나님과 하늘을 위로하고 평온하게 하는 향기로운 냄새가 됩니다. 그리고 사랑과 헌신이 담긴 이 예물은 바로 우리 자신이 됩니다.

성도의 삶은 희생의 삶입니다. 자기의 생명을 산 제사로 드리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희생의 마지막 종착점은 재가 되는 것입니다. 다 타고 남은 재가 사람의 눈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지만 하나님께는 거룩하고 귀하게 여겨졌던 것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 다 태워드리는 성도의 삶을 귀하게 보시며 그 삶을 향기로운 냄새로 받으십니다.

코르반, 제물과 제단

소제의 제사에서 중요한 것은 제물에 누룩을 넣지 않는 것입니다. 누룩을 넣지 않은 제물에 기름과 유향을 섞어서 태워 올려드림으로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예배가 소제입니다. 누룩은 부풀어 오르게 하는 것으로 신약성경에서 누룩은 악한 것들(고전5:6,8)과 악한 교리들을(마16:6,11-12) 의미합니다. 그래서 소제의 제물에는 어떤 것도 섞지 않고 오직 그 자체만으로 순수하게 하여 하나님께 드려지도록 했습니다.

속죄제와 속건제에서 제물은 지극히 거룩합니다. 이 제물로 제사를 드린 후에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이 그 거룩한 제물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화목제는 감사와 서원과 자원의 제사로서 화목제에 드려지는 제물은 성전으로 경배하러 온 경배자들이 성막 뜰에서 함께 나눠 먹었습니다. 그러나 부정한 자는 함께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한결같이 말씀하신 것은 ‘제물은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레6:17,25, 7:6). 제물(코르반)은 거룩하지 못한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드려지는 것으로써 희생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향입니다. 그래서 모든 제물은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한 제물을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완전히 하나님께 속하게 하기 위한 것입 니다. 제물 자체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으셨던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과 연합하려고 하셨던 것이 본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제사를 드린 후에 제물을 끝까지 거룩하게 다루라고 명하십니 다(레6:26,27, 7:6,15). 제사는 거룩하게 드렸는데 후에 바쳐진 제물을 부정하게 다루거나 그 제물을 먹는 자들이 합당하지 못할 경우 앞에서 드렸던 제사의 모든 것이 더렵혀지고 오히려 가증한 것이 되어 하나님이 받으실 수 없는 제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태도와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끝까지 거룩하게 이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제사가 사랑과 경배가 아닌 의무와 책임으로 흘러가서 제사의 본질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드리는 우리들이 왜 제사를 드리고 있는지 끝까지 기억하여 그 거룩함을 삶에서도 이어가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통해 자신의 백성들이 삶 속에서도 거룩하기를 원하셨기에 제사를 드리는 규례들을 명령하시고 이것에 대해 책임을 다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린 후에 삶의 자리에서 자기의 기준과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예배와 삶이 이중적이 되며 거룩함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 자체가 우리의 목적이 아닙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하나님과 연합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예배 후에 삶의 자리에서 우리의 부정함이나 합당치 못함이 앞서 드렸던 예배가 열납되느냐와 열납되지 않고 오히려 가증히 여기시게 되느냐를 결정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제사들이 예슈아의 몸과 피, 그분 자체를 의미한다면 화목제(제바아흐 쉴라밈)는 예슈아의 사역의 절정을 예표합니다. 화목제(샬롬의 제사)는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를 하나로 이어주는 제사입니다. 예슈아는 아버지와 우리를 하나되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미드라쉬 라바에서는 오직 샬롬이신 그분(메시아)만이 화목제를 올려드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샬롬의 왕이신 메시아만이 진정한 샬롬의 제사를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있으며, 샬롬을 이루실 수 있다는 의미로 이미 유대인들은 그들의 조상들로부터 받은 토라를 통해 메시아가 샬롬의 사역을 하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 니다. 예슈아는 샬롬의 왕이신 메시아로서 오셨고, 다시 오실 때 완전한 샬롬을 온 우주에 충만하게 하실 것입니다.

레위기 7장에서는 화목제의 규례를 가장 마지막에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또한 레위기 8장에서 제사장의 위임식을 위한 제사를 드릴 때도 화목제는 속죄제와 번제 다음으로 드려졌습니다. 제사의 순서에서 화목제가 마지막으로 드려지는 것은 마지막 날에 예슈아로 인해 하나님과 우리의 하나됨이 완성될 것이라는 것을 예표해 줍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그분의 식탁에서 그분과의 사귐, 교제를 누리기 전에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죄와 장애들이 다뤄진 뒤에 화목제가 드려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속죄제는 흠없고 완전하며 무한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성과 잘못된 자아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가기에 우리가 얼마나 자격 없는 자들인지를 인정하게 합니다. 속죄제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한 뒤에는 번제를 통해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하게 내어드리는 제사를 올려드리게 됩니다. 이것은 나를 완전히 하나님께 굴복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완전히 굴복하여 나 자신을 드린 뒤에 우리는 비로소 하 나님과의 화목을 누리는 사귐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속죄제와 번제 이후에 화목제를 올려드리도록 하심으로 거리낌 없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릴 수 있도록 하셨습니 다.

화목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분열이 극복되고 하나님과의 사귐을 누리게 됨을 예표하는 평강(샬롬)의 예배입니다. 성경의 수많은 구절들은 하나님이 샬롬을 자신의 백성들에게 주실 것임을 말하고 있으며, 또한 샬롬이 가장 큰 축복이라는 것을 증언합니다. 아론의 제사장 축복에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샬롬을 주실 것을 마지막에 언급합니다(민6:24-26). 이 모든 것은 샬롬이 인류 역사 가운데, 그리고 이 땅에 이뤄질 모든 것의 절정이 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배의 본질과 예배의 삶

하나님은 제사와 예배가 그 본질이 섞이거나 더럽혀지지 않도록 제사의 질서를 잡아 주시고 제사 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성실하게 가르쳐 주시고 명령하셨지만 이스라엘은 그것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결국 우상을 숭배함으로 하나님의 노를 일으킵니다(렘7:18).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명한 것은 사실은 번제물들이나 희생제물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번제와 희생을 너희에게 가르쳤던 본질은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들으라고 한 것이었다.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다고 한 것이다. 너희는 내가 명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너희가 잘되리라 하였다 (렘7:22-23 진리의 집 번역)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번제와 희생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레위기 1~8장에 제사의 종류와 방법과 규칙들을 말씀하시고 명령하신(짜브 צו) 이유는 하나님 앞에 와서 지성소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고 하신 것입니 다. 제사와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샤마 שמע)이며 순종하는 것(샤마 שמע)입니다. 그래서 얼마만큼 예배를 잘 드리고 얼마만큼 예물을 많이 바쳤는지 그런 것들로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체험으로 아는 것으로 자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렘9:23-24). 하나님이 정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고자 한다면 예배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레위기에서 가르치는 모든 제사는 하늘의 것들에 대한 모형입니다(히9:23). 예수님이 오셔서 자기 피를 흘리시고 단번에 희생제물이 되심으로 더 이상 피흘리는 희생제사의 방법이 없이도 실제이신 예슈아 하마쉬아흐(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직접 하늘의 영역에, 하나님께 나아오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나 출애굽기와 레위기의 본문에서 성막과 제사장과 희생제사와 관련된 모든 세세한 것들은 폐기처분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에게 영적으로 적용되는 지침들이 되며 우리로 하여금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를 더 풍성하고 깊게 체험하며 알아갈 수 있게 하는 토라(하늘에서 내려온 가르침)로써 유효합니다. 그러므로 레위기에서 말씀하시는 예배의 본질(하나님의 음성을 들음)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체험으로 알아가는 일에 힘쓰는 것이 오늘날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우리들이 드려야 할 삶의 예배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비본질적인 요소에 마음을 빼앗기는 예배가 아니라 영과 진리로, 우리의 모든 것을 거룩한 산 제물로 코르반 올라, 하늘을 향해서는 다 태워 올려드리는 예배이고, 땅에서는 재만 남는 예배입니다. 이런 예배는 향기가 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케 합니다. 이 향기는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예배의 향기를 받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1:17,2:2,9,12,3:5,16)

출처: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적 관점으로 읽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Quoting from Reading the Torah Portion from the Hebrew Perspective in Jerusalem (Gen. Exod. Lev. Num. De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