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th 쉐미니

שמיני

여덟째

파라샤 Leviticus (레) 9:1-11:47

하프타라 2 Samuel (삼하) 6:1-7:17

브리트 하다샤 Hebrews (히) 7:1-19 / John (요) 11:4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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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째(8), 새로운 시작과 영원

아론과 아들들은 칠일 동안 회막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준행합니다(레8:35). 7은 완성의 숫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일곱 번째 날에 완성되었듯이 인류 역사도 7000년의 때에 완성될 것입니다. 제사장 위임식이 7일에 끝났다는 것은 거룩한 직무를 감당할 모든 준비가 마무리되고 완성된 성막 안에서 땅으로 내려온 하늘로 들어가 땅에서 하늘을 누리며 하나님을 섬길 준비가 마무리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마침내 여덟 번째 날, 첫 제사를 드림으로 새로운 시작을 열어가게 됩니다.

8은 새로운 시작이자 또한 영생으로 들어가는 시간, 영원을 의미하며 부활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드리는 주의 첫날이면서도 여덟 번째 날에 드리는 주일예배는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것이면서 새로운 한 주간의 시작에 영원을 기대하는 믿음으로 올려드리는 예배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므로 주일예배는 영생을 맛보는 날입니다. 이전의 죄짓기 쉬운 연약한 육체를 벗어 던지고 예수님처럼 부활하여 완전히 새롭게 된 부활의 거룩한 몸을 입고 영생을 살게 될 것을 기대하며 기쁨으로 드리는 예배가 주일예배입니다. 7일째 창조를 끝내고 안식을 통해 창조를 누리며 8번째 날 새 창조가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8일째는 세상과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분리가 있는 날이며 아주 작은 섞임도 허락될 수 없는 날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주일예배는 영생의 시간을 맛보는 날이자 세상과 완전히 분리된 날이며 부활의 기쁨을 누리는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7일째 되는 천년왕국의 시간이 지나고 8일째가 되면 새 하늘과 새 땅의 시간이 시작되고, 옛 창조(처음 창조)에 속한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새 창조에 속한 부활의 몸으로 영원히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 날은 모든 것이 완전하게 새로워지며 하나님의 영광이 온 우주에 충만하게 나타나는 날이 될 것입니다. 또한 빛나는 부활의 몸을 입은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날을 위해 택하신 제사장들을 거룩하게 함으로 그들을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자들이 거룩함으로 준비가 되었을 때 모든 백성들이 함께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친히 백성들에게 나타내시기 위해 택하고 준비된 자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리고 택하고 준비된 자들에게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속된 것으로부터 완전히 구별된 상태인 거룩입니다.

거룩한 불 VS 이상한 불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친히 내려 주신 영광의 불을 경험하였습니다. 거룩한 불이 제단에서 타올랐고 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희생제물로 번제의 예배를 드리는 제사장들의 임무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7일의 제사장 위임식을 통해 그들이 지켜야 할 것을 자세하게 가르치셨으며 그들은 회막 안, 하나님 앞에서 깊이 머무는 시간을 지냈습니다. 이 시간동안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모든 것을 숙지하면서 그들은 거룩하게 구별되었고, 모든 것이 완성되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예배를 통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경험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경험했고, 또 자신들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시간을 보냈지만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하늘에서 내려준 불이 아닌 다른 불(레10:1)로 하나님 앞에 분향했습니다. 결국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켜버렸고 이 일로 그들은 죽게 됩니다 (레10:2). 그들은 정확하게 두 가지 잘못을 범했는데 하나는 대제사장인 아론이 행해야 할 분향하는 일을 각자의 향로를 가져다가 자기들이 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로 분향한 것입니다. 여기서 ‘다른’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자라 זרה는 ‘이상한strange’이라는 뜻입니다. 이상한 불, 정체를 알 수 없는 불, 어디서부터 왔는지 모르는 불입니다. 이 단어는 창녀prostitute, 매춘부harlot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 앞에 올려드린 불은 번제단의 거룩한 불, 하나님의 영광의 불이 아닌 어디서부터 왔는지 모르는, 섞여 있는 이상하고 음란한 불이었습니다.

도대체 그들은 이 불을 어디서 가져온 것일까요? 7일 동안 하나님의 회막을 떠나지 않으며 그 말씀을 지켰는데도 왜 그들은 눈 앞에 보이는 번제단의 거룩한 불을 사용하지 않은 것일까요? 그리고 왜 그들은 자신들의 직무가 아닌 대제사장의 임무를 행한 것일까요? 그들 안에 있던 자기 생각, 자기 의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자기의 생각대로 좇은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으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생각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자기 생각은 결국 그들의 불신과 교만으로부터 나온 조급한 행동이었으며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시는 자비의 하나님이시지만 결코 가볍게 넘어가지 않는 죄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거역’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거역할 때 엄하게 다스리셨습니다. 거역은 점치는 죄와 같습니다(삼상15:23). 점치는 것은 귀신이나 어두운 영을 통해 앞일을 보는 것으로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어둠의 영이나 귀신)의 권위 아래로 들어가는 것이기에 이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죄이며, 또한 영적 음란의 죄입니다. 아답과 나비후가 자신의 생각과 의를 좇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죄는 곧 우상숭배, 영적 음란의 죄를 범한 것이었습니다.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불, 하나님의 에너지가 아닌 자신의 불, 자신의 에너지를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과 역사를 막고 결정적인 순간에 사탄(대적자)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답과 아비후처럼 하나님의 불이 아닌 나의 힘으로 쓰는 불은 결국 죽음을 불러옵니다. 자신만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합니다. 예배자들은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불을 경험하고 있는지 아니면 자신의 불(자기 의와 생각과 열정)을 사용하고 있는지 늘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자신을 겸손하게 엎드릴 때 가능합니다. 교만함은 조급하게 행동하게 하며 결국은 하나님을 거역하게 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나타내는 불을 쓰지 않으려면 우리는 겸손을 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해야 합니다. 철저히 구별, 분리되어야 합니다. 외적으로는 세상으로부터도 분리되어야 하고 내적으로는 나의 혼에 섞여 있는 것들을 분리해야 합니다. 분리가 곧 거룩의 과정입니다. 혼에 섞여 있는 것들을 분리하는 거룩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나답과 아비후처럼 영광을 경험하고도 자신의 옛 자아를 좇다가 심판과 죽음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의 본성은 쉽게 가져올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이상한 다른 불, 섞여 있는 불 혹은 자기 생각에 옳다고 여기는 합리적인 불을 사용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안에 그리고 교회 안에서 사용되고 있는 불이 세상에서 섞여 들어 온 이상한 다른 불이기에 하나님의 거룩한 소멸하는 불이 이것들을 태우고 있는 것은 아닐 까요?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가까이(카로브קרוב) 하는 자에게 내 거룩함(카도쉬קדוש)을 나타내겠고

내 영광(카보드כבוד)을 나타내겠다.” (레10:3)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을 가까이한 것 같았지만(카로브קרוב) 가장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생각(세상)을 따라감으로써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았음을 나타냈습니다. 하나님의 회막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은 그들의 결국은 죽음이었습니다. ‘다른’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자라זרה의 첫 번째 뜻이 ‘이상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면 두 번째는 ‘별거하고 있는 즉, 친밀함이 떨어지는’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떨어지면 결국 자기에게 더 익숙하고 친밀한 것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무엇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세상으로부터 온 것인지 분별력을 잃게 됩니다. 분별력을 잃으면 섞이게 됩니다. 자라זרה의 세 번째 뜻은 ‘음란, 매춘하는’이라는 뜻입니다. 세상과의 섞임, 그것이 영적인 음란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볼 수 없고 그는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습니다(레10:3).

교회에서 예배 드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교회에 있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과 가까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의와 생각을 철저하게 구별하고 분리해 내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구할 때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회막에 들어갈 때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하신 것은(레10:9) 세상이 주는 쾌락과 생각을 가지고 들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레10:10). 분별력을 잃으면 거룩함도 잃게 됩니다. 분별력을 잃을 때 무엇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게 되며 그렇게 되면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바로 판단할 수 없기에 섞이게 되고 그 때 거룩함을 잃게 됩니다. 거룩함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하나님과의 친밀함입니다.

내 안에 무엇을 받아들일 것인가?

나답과 아비후의 실수 이후 하나님은 백성에게 거룩함을 더욱 강조하셨고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가르치신 것이 먹는 것에 관한 규례였습니다(레11장). 먹는 것을 구별하도록 가르치신 이유는 먹는 것이 우리의 생명과 관계되어 있고 사람이 무엇을 먹는가가 그 사람을 만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먹는 것은 존재를 결정합니다. 우리가 듣고 보는 것, 우리의 육체로 받아들이는 모든 것은 먹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먹는 것을 구별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철저하게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듣고, 보고, 먹음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룩하게 지켜나가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 혼, 육 모두가 하나님 앞에 거룩함으로 드려지기 원하셨고 그래서 우리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레11:44)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하십니다(롬12:1).

부정한 것은 더러운 것과 다릅니다. 부정한 것은 깨끗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아직 완전히 더러워진 상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깨끗한 것도 아닙니다. 깨끗하지 않은 것을 먹는다는 것은 우리를 결국 더러운 상태로 만들어 완전히 망가지게 합니다. 우리의 몸이 부정해지면 생각도 마음도 같이 부정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먼저 선택한 백성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모범이 되어야 했고 또한 그들의 혈통으로 메시아가 태어나야 했기에 하나님은 그들의 몸도 거룩함으로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정한 음식, 부정한 음식까지 나누어 그들의 몸을 거룩하게 하여 섞이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섞이는 것은 모든 죄와 어둠의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함을 위해 철저히 내 안에 섞여 있는 것들, 특별히 세상으로부터 섞여 들어온 가르침과 생각의 영역을 분리해야 합 니다. 완전한 분리는 거룩함이며, 거룩함의 결과는 영생입니다.

부정한 것을 먹는 것도 안 되지만, 그 부정한 동물의 주검 즉, 시체에 닿아서도 안 됩니다. 시체에 접촉하는 것은 사망에 접촉하는 의미합니다. 또한 죽은 시체는 이미 변질된 요소를 가지고 있어 사람에게 또 다른 종류의 질병을 통한 죽음을 가져오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무엇을 먹느냐 무엇을 받아들이고 있느냐도 중요하고 내가 무엇을 접하고 있느냐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네페쉬נפש)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레11:44)

이 구절에서 몸이라는 단어는 네페쉬נפש로 쓰여 졌는데 네페쉬는 생명, 혹은 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우리 몸만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혼도 구별하도록 하셨습니다. 영, 혼, 육 모두를 정결하게 구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주님의 나라를 기대하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을 향해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거룩해야 함은 하나님을 가까이하기 위함이며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속해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완전히 하나되는 시간을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영, 혼, 육을 정결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영, 혼, 육이 정결하고 온전한 한 사람은 많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거룩한 통로가 될 것입니다.

출처: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적 관점으로 읽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Quoting from Reading the Torah Portion from the Hebrew Perspective in Jerusalem (Gen. Exod. Lev. Num. De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