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th 나쏘
נָשֹא
머리를 들어올리라(계수하다)
파라샤 Numbers (민) 4:21-7:89
하프타라 Judges (삿) 13:2-25
브리트 하다샤 John (요) 12:20-36 / Luke (눅) 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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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쏘 נָָשֹא, 올려드림
이스라엘 군대의 계수가 끝나고 하나님은 레위 자손들의 수를 계수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스라엘 군대의 수를 계수할 때처럼 ‘계수하다’로 쓰인 히브리어는 ‘나쏘 엩 로쉬נָשֹא אֶת־ראׁש’입니다. 나쏘נָשֹא는 나싸נָשא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것으로 ‘들어 올리다(lift up, elevate)’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로쉬רֹאש는 머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레위 자손들의 ‘머리를 들어올리라’고 명령하십니다. 머리는 몸의 시작이며 생명과 존귀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군대와 레위 자손의 수를 계수하실 때 그들의 ‘머리를 들어올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들의 생명의 시작과 가장 존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스라엘 군대의 수를 계수하실 때도, 레위 자손의 수를 계수하실 때도 하나님은 그들의 머리, 가장 존귀한 것을 올려드리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수나 레위 자손의 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닌 하나님께 드려지고 헌신된 거룩한 백성의 숫자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레25:55). 완전히 하나님께 속하였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야 하는 사명을 가진 백성이기에 하나님은 다른 민족들과 구별된 특별한 목적을 계획하셨고 그에 따른 특별한 임무를 부여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군대의 머리를(생명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고(나쏘נָשׂא) 또 하나님의 거룩한 집을 섬기는 레위인들을 따로 계수하여 그들의 머리를(생명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게(나쏘נָשׂא) 하셨습니다. 또한 이집트에서 나와 거룩한 산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도 올려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올려드렸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소속과 관계,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는 거룩한 생명을 가진 자라는증거가 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군대와 레위 자손들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게 하심으로 하나님께 소속된 거룩한 자들임을 입증하셨듯이 우리가 하나님께 ‘나를 올려드립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자들로서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께 소속되었고 하나님께 봉헌된 거룩한 자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올려드림(나쏘)은 소속, 관계, 생명 그리고 거룩을 나타냅니다.
나지르נִָזִיר, 봉헌된 삶
하나님께 특별한 서원을 하여 자기 몸을 구별하여 드린 자를 하나님은 나실인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나실인의 히브리어 나지르נִָזִיר는 ‘봉헌되다, 보존하다, 거룩하게 유지하다’는 뜻입니다. 나지르인은 하나님을 위해서만 살겠다고 서원하며 일정 기간 구별된 시간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나지르인이 하나님만을 위해 드리는 구별된 시간은 자신을 거룩하게 지키겠다는 결정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나지르인이 자신을 거룩하게 유지하고 보존할 수 있도록 몸을 구별하도록 하셨고(민6:6) 그렇게 스스로를 구별한 나지르인에게 하나님은 4가지 규칙을 주십니다.
첫째,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고 포도와 관련된 어떤 것도 먹지 말라고 하십니다(민6:3). 시편 104:15은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이 포도주’라고 하며, 전도서 10:19에서는 ‘잔치의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포도주는 땅의 즐거움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나지르인에게 하나님을 위해서만 살겠다고 결정한 기간 동안에는 잠시 땅의 즐거움과 누림을 멀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로지 빛에 속한 하늘과 하나님께만 더 집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지르인은 몸을 구별한 자들입니다. 몸은 땅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나지르인의 삶의 기간 동안에 몸과 혼의 즐거움과 땅의 즐거움을 멀리하고 하늘에 집중하고 영의 즐거움에 집중하도록 하셨습니다.
둘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민6:5). 몸을 구별하는 것 중에서도 특별히 하나님은 머리에 그 표, 상징을 두십니다(민6:7). 나지르נִָזִיר를 네제르נֶזֶר라고 읽으면 ‘구별, 왕관’이라는 뜻이 되는데 머리에 씌여지는 왕관은 ‘구별됨의 싸인’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 스스로 구별하고자 서원한 자들은 몸을 구별해야 하는데 특별히 머리를 보호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머리는 몸의 가장 첫 부분이자 문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로 쎄아르שעַר는 ‘머리카락’이라는 뜻인데 같은 단어를 샤아르שַׁעַר라고 읽으면 ‘문gate’이라는 뜻이 됩니다. 머리는 몸의 시작이며 문입니다. 나지르인은 몸의 시작이며 문인 머리를 지켜야 합니다. 문이 어둠을 향해 열려 있으면 모든 것이 어두워집니다. 문이 빛에 속한 하늘을 향해 열려 있으면 생명으로 충만해집니다. 생각이 어두운 자는 결국 몸을 지키지 못하지만 생각이 생명으로 충만한 자는 거룩한 영향력을 흘려보냅니다. 구별된 자인 나지르인은 자신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음으로 자신의 머리와 생각을 보호합니다. 삭도를 대지 않은 머리카락의 길이는 하나님과 보낸 시간의 길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구별된 시간 동안 머리카락이 길면서 그가 얼마만큼의 시간을 하나님 앞에서 나실인으로 구별된 삶을 살며 하나님께 헌신된 삶을 지냈는지 알 수 있게 합니다. 또한 머리는 권위를 상징합니다. 고린도전서 11:3에서 여자의 머리는 남자,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내 위에 계신 하나님이 나의 권위자입니다. 그래서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거나 결정 하지 않음으로써 나의 머리, 나의 권위가 하나님이라는 것에 대한 확실한 표가 됩니다.
셋째, 시체를 가까이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서원한 기간 중에는 심지어는 가족의 죽음에도 가까이하지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십니다(민6:6-7). 시체는 사망입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자기 몸을 구별한 사람이 늘 생명의 상태를 유지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가족일지라도 인간적인 애정 때문에 사망에 접촉되어 부정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시체를 가까이하지 않도록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만 자신을 드리겠다고 서원한 나지르인이 사람과의 관계나 인정에 끌려 가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넷째,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인한 시체에도 가까이하지 말라고 하십니다(민6:9). 하나님은 나지르인이 죽음의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있는 곳에는 근처에도 가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원하지 않음에도 부지불식간에 사망의 부정함이 들어올 수도 있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셨기에 나지르인에게 더 철저하게 주의하도록 명령하십니다.
구별된 나지르인에게 하나님이 강조하셨던 것은 그들이 땅이 아닌 하늘의 영역에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땅의 즐거움을 내려놓고 하늘에 집중하도록 하신 것(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라), 하늘을 향해서만 문을 열고 하늘의 권위 아래 있으라고 하신 것(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생명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으라고 하신 것(어떤 이유에서든 시체를 가까이 하지말라)은 모두 그들이 하늘의 생명으로만 충만하게 채워져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나지르인은 이 땅에 살지만 그 구별된 시간 동안만큼은 모든 것을 하늘에 집중하는 자들입니다.
여호와의 사자를 통해 마노아는 태어날 때부터 구별된 나지르인이 되어야 할 아이에 대한 명령을 받습니다. 어떤 나지르인은 스스로 서원하여 되기도 하지만 어떤 나지르인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으로부터 구별되어 태어나기도 합니다.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나지르인으로 부름받았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는 블레셋으로부터 민족을 구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잉태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몸은 아무것이나 먹고 마실 수 없었으며 그의 머리카락은 잘려질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라면서 단 한 번도 그의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음으로 하나님 앞에 드려진 자인 나지르인으로서의 부르심과 사명을 가지고 자랐습니다. 삼손의 머리카락은 그의 정체성이면서 그의 머리카락의 길이는 하나님과 함께 지낸 시간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음으로 철저히 자신의 권위자가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었고 하나님의 영이 그와 함께 하고 있음을 나타내었습니다.
하나님은 신비하게도 역사의 진행이 가장 암담한 시대 속에서 친히 구별하신 나지르인을 태어나게 하십니다. 그것도 본래 임신하지 못하거나(삿13:3), 혹은 태의 문을 닫아 놓으셨거나(삼상1:6), 나이가 많아 낳을 수 없는 자(눅1:18)를 통해서 생명을 잉태하게 하시고 그들을 그 탄생 전부터 구별하십니다. 삼손의 어머니, 한나, 그리고 엘리사벳이 그러했습니다. 삼손, 사무엘, 세례요한은 나지르인으로 태어났습니다. 삼손과 세례요한은 포도주와 독주를 입에 대지 않은 나지르인으로 하나님이 친히 부르셨고, 사무엘은 한나의 서원으로 태어나 구별 받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나라가 압제 당하는 시대, 이상이 희귀하여 보이지 않는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가장 어둡다고 여겨지는 시대에 하나님이 친히 작정하고 부르신 사람들, 그들은 모두 나지르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땅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가장 소망이 없다고 여겨질 때 친히 일하십니다. 거룩이 끊어져 버린 깊은 어두움의 시대에 하나님은 친히 구별하신 나지르인들을 세우십니다. 나지르인은 그 머리와 몸에 표를 지닌 자들로서 이 표는 그가 하나님께 봉헌되어졌다는 뜻입니다. 그 머리에 하나님의 표를 가진 자는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린 자입니다. 하나님은 어둠이 짙어가는 마지막 시대를 살아갈 마지막 세대가 나지르인으로 하나님께 드려지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오랜 시간 함께 지낸 자(긴 머리카락), 자기의 생명을(머리를) 지키는 자, 자기의 권위자가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자, 그래서 아무것이나 받아들이지 않고(아무것이나 먹지 않고 아무 정보나 받아들이지 않는 것)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자, 하나님은 이런 나지르인의 세대를 지금 준비시키고 우리를 통해서 일으키고 계십니다.
부활과 영생을 위해 올려지신 예슈아
명절에 예배하기 위해 올라온 사람들 가운데 헬라인(이방인)들이 있었고 그들은 예슈아 뵙기를 청하였습니다. 그들의 청함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말씀하십니다(요12:23). 이방인들이 예슈아 뵙기를 청한 것과 예슈아가 영광을 받는 것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예슈아가 받을 영광은 십자가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여 땅에서 하늘로 올려지실 때 모든 사람 즉,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온 열방이 예슈아로 말미암아 한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됨으로 얻게 될 영광을 의미합니다(요12:32). 여기서 ‘들려지다’는 헬라어 휘프소hupso는 ‘올려지다(lift up, raise, exalt, elevate)’라는 뜻을 가집니다. 히브리어의 나쏘נָשֹא와 같은 뜻입니다. 예슈아의 생명이 하늘 높이 올려지는 것은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승천을 의미합니다. 예슈아는 자신이 십자가로부터 들려 올려질 때 많은 영혼들이 생명으로 가까이 나아와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슈아는 이 들림을 통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으시고 많은 생명을 낳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2:24).
예슈아는 완전한 희생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바쳐졌고 하늘로 올려지셨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은 곧 우리가 부활하여 하늘로 올려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늘로 들려올려지기 전에 먼저 십자가의 죽음이 있습니다. 이 죽음은 한 알의 밀알이 썩어 죽은 것과 같습니다. 죽었지만 결국은 더 많은 생명이 자랍니다. 주님은 썩어져 죽었으나 더 많은 생명을 낳은 첫 밀알이 되셨고 우리도 주님과 같이 또 하나의 다른 밀알이 될 것입니다.
나쏘נָשֹא, 휘프소hupso, 우리의 머리가 올려지는 것은 생명을 드리는 것이며, 나지르נִָזִיר, 봉헌되어지는 것은 더욱 특별히 우리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죽음을 경험하겠지만 결국 더 많은 생명을 낳고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요12:25)
자기 생명을 아까워하지 않고 죽을 수 있는 사람,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바치는 사람이 나지르인입니다. 그리고 이런 나지르인은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우리는 바미드바르בּמִִדְבַר, 광야에서 하나님의 군대가 정렬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군대를 향 해 나지르인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몸을 구별하고 머리를 보호하며 생명까지 아까워하지 않고 완전히 드리는 자, 바로 예슈아께서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분이 친히 나지르인의 본이 되어 주셨고 우리도 나지르인으로 살도록 격려하고 계십니다.
거룩이 끊어진 시대, 나라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한 시대,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는 시대 속에서 구별된 자들이 태어나고 일어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마지막 세대이며 하나님의 군대로 정렬되도록 나지르인으로 구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세대가 하나님의 군대로, 구별된 자로 자라지 못하도록 세상은 미친듯이 이 세대를 공격하고 끌어내리고 있습니다. 세상의 지혜와 방법을 우선순위에 둔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나의 자녀라고만 생각하며 하나님께 묻지 않고 아이를 향한 계획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이 자신의 군대로서 구별하신 세대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반드시 하나님께 묻고 순종해야 합니다. 나지르인은 절대 세상과 섞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지혜와 방법을 따르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군대는 광야에서 정렬되어집니다. 이집트와 바벨론의 시스템으로는 하나님의 군대로 정렬될 수 없습니다. 광야에서도 여전히 이집트, 세상의 사고로 사로 잡혀 있었던 세대는 약속의 땅, 에덴으로 입성하지 못했고 하나님은 이집트를 모르는 광야에서 나고 자란 세대만 데리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우리는 이집트를 사모하는 아비 세대가 아니라 하늘을 사모하는 삶을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가르쳐 줌으로써 이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순종하는 세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또한 마지막 세대로서 나지르인의 삶을 살 수 있길, 그리고 예슈아처럼 드려지길 기도합니다. 나의 십자가와 나의 부활과 나의 들림을 위해 나의 삶을 올려드리고(나쏘נָשׂא), 봉헌된(나지르נָזִיר)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출처: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적 관점으로 읽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Quoting from Reading the Torah Portion from the Hebrew Perspective in Jerusalem (Gen. Exod. Lev. Num. De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