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rd 마쎄이
מסעי
노정
파라샤 Numbers (민) 33:1-36:13
하프타라 Jeremiah (렘) 2:4-28, 3:4
브리트 하다샤 James (약) 4:1-10 / Luke (눅)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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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여정 회고
이집트의 노예 근성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여 하나님의 마음과 지도자 모세의 마음을 아프게 한 연약하고 완고한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의 여정을 군대의 행진이라 말씀하시며 모세에게 그들이 걸어온 여정을 기록하도록 명하십니다(민33:2).
이들의 여정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집니다.
첫째, 이집트 라암셋에서 출발하여 시내 광야까지의 여정(민33:5-15)
둘째, 시내 광야에서 가데스바네아까지의 여정(민33:16-36)
셋째, 가네스바네아에서 모압 평지까지의 여정(민33:37-49)입니다.
첫 유월절을 지키고 이집트 라암셋에서 출발하던 그 날은 이집트인들이 자신들의 죽은 장자들을 장사할 때였습니다(민33:3-4). 하나님은 크신 권능으로 이집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높이 들린 손’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이끌고 나오셨고 그들의 신들에게도 벌을 주셨습니다. 이 담대한 출발이 얼마가지 않아 그들 앞에는 큰 바다요, 뒤에는 이집트 군대의 추격을 받는 진퇴양난,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하지만 하나님의 높으신 손이 그들을 바다 가운데로 지나게 하셨고 그들은 이집트 군대의 완전한 심판을 목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한 시나이 산에 이르게 하시고 그곳에서 그들과 혼인 서약을 맺으시며 연합하십니다.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첫 여정은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이집트로부터 되찾으시고 그들 가운데 영원히 거하겠다고 언약하신 약혼과 혼인의 과정이었습니다. 마치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언약의 장소로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의 군대로서, 신부로서의 정체성을 갖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은 번번이 하나님께 도전하고 거역합니다.
두 번째 여정은 이들이 약속의 땅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38년을 광야에서 방랑한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끝까지 하나님께 중보함으로 이 백성을 놓지 않게 한 모세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과 무한한 자비로 그들은 멈추지 않고 이 여정을 계속하여 마침내 요단 동편의 모압 평지에 이르러 약속의 땅 직전까지 서게 되는데 이 과정이 세 번째 여정입니다. 광야에서의 방랑의 시간 동안 이들은 참혹한 심판을 여러 번 겪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잘려 나가야 할 것들이 잘려 나가고 다뤄지면서 어느 새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방 왕들을 제압하는 하나님의 강한 군대로 성장하게 됩니다.
광야의 여정은 겉으로 보기에는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방황처럼 보였지만 사실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의 인도하심을 받은 가장 안전한 여정이었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 마실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하나님은 적으로부터 늘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광야의 여정을 통해 이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확실히 서는 것이었으며 그래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왕국을 세우고 열방의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이었기에 그들을 더 깊이 다루시고 단련하였습니다.
자기 백성들을 엄하고 억압적으로 다뤄서 꺾어버리려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가지지 말아야 할 것을 가지고 있고, 매이지 말아야 할 것에 매여 있음으로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는 얽매이기 쉬운 모든 죄를 벗어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볼수 있는 곳으로 광야를 택하셨습니다. 그래서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지만 전적으로 하나님의 공급을 통해서 신뢰를 쌓아가며 훈련되어지는 곳입니다. 광야에서 우리는 여호와 이레(창22:14), 라파(출15:26), 닛시(출17:15)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어느 곳에서보다 하나님을 가장 친밀하게 경험하는 곳, 그곳이 광야입니다.
산당을 파쇄하라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모압 평지에 선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하나님은 그 땅에 들어가서 반드시 그들이 해야 할 일을 명령하십니다.
첫째, 가나안 일곱 족속을 몰아내고 반드시 모든 우상과 산당을 다 헐고 거주하라(민33:52-53).
하나님은 당신에게 특별하게 속한 땅이며 셈과 셈의 후손들에게 주어진 몫이었던 에덴-동산의 땅 이스라엘 중앙 산지를 폭동과 난동으로 빼앗아 들어와 살고 있던32 가나안 거주민들이 땅이 그들을 토해낼 정도로 그 땅을 더럽히고 악으로 채워왔던 것을 보셨고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완전히 파쇄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땅을 거룩하게 하길 원하셨습니다. 그 땅의 죄악을 파쇄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악과 타협하고 따라가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고 영광을 짓밟는 일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분의 소유가 되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이전에 우리를 차지했던 습관들과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것들을 반드시 잘라내고 처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하나님의 통치로 채워야 합니다.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자들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십니다.
둘째, 점령한 땅을 제비 뽑아 수가 많은 자에게는 많은 기업을 주고 수가 적은 자에게는 적은 기업을 주어 지파를 따라 기업을 받게 하라(민34:54). 하나님은 공평하게 분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공평이란 모두에게 똑같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수가 많은 자에게는 많이, 적은 자에게는 적게 줌으로써 각자에게 맞는 분량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공평입니다. 인본주의는 남성, 여성의 역할의 차이를 두지 않는 것이 평등이라 말하고, 수와 능력에 관계없이 똑같이 나눠 갖는 것이 공평이라 말합니다. 이것은 듣기에는 합리적인 것 같지만 완벽한 속임입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모습, 특징, 분량이 다 다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고 하나님이 만드시고 계획하심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탄은 미묘한 어감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거역의 마음을 자극합니다. 마지막 때 사람들은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욕심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른다고 하였습니다(딤후4:3-4).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고 하나님이 옳다고 말씀하신 것이 옳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따르고 있는 생각과 감정과 사상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늘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지적 욕구를 채워주고 감성을 자극하는 말씀이 아니라 들을 때 마음이 따갑더라도 진리를 계시해 주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지적 욕구나 감성을 채워주는 말씀을 들을 때는 달콤하지만 세상과 섞이게 만들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하고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하나님은 불의와 죄악으로 땅을 더럽히고 있는 그 땅의 가나안 거민을 반드시 몰아내라고 하셨고 그렇지 않으면 남겨 둔 자들이 너희 눈과 옆구리에 가시가 되어 괴롭게 할 것 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민33:55). 더 나아가 하나님이 아끼시는 땅을 더럽힌 민족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하셨던 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하실 것이라고 엄중하게 경고하십니다(민33:56).
하나님께서 이 땅을 다른 어느 곳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시며 이 땅에 살아가는 자들이 누구든 그들에게 높은 기준을 제시하시면서 이 땅을 거룩하게 하라고 하시는 이유는 이 땅이 하늘에서 내려올 새 예루살렘을 받을 터가 되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땅을 우주의 중심으로 삼으시고 하늘에 있던 여호와의 보좌를 이 땅의 중앙인 예루살렘에 두셔서 온 우주의 통치 중심 수도로 삼으실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세상과는 조금의 타협도 있을 수 없습니다. 작은 타협이 큰 올무가 되고 가시가 된다고 하나님은 분명히 경고하셨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와 정 때문에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것, 혹은 하라고 하신 것을 놓치는 것도 타협의 한 부분입니다. 깨끗하고 순수하면서 동시에 냉철한 분별력과 지혜를 가진 자들이 마지막 때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뤄지도록 행군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군대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땅, 하나님이 거하시는 백성
하나님은 ‘너희가 거주하는 땅 곧 내가 거주하는 땅(민35:34)’이라 말씀하시며 그 땅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람도 땅도 하나님은 거룩한 하늘에 속한 것처럼 거룩하게 하길 원하셨습니다. 거룩한 사람은 거룩한 하늘과 하나되어 그 땅을 거룩하게 하고 하나님의 킹덤의 영역을 확장해 갈 것입니다. 그 첫 무대가 되는 땅은 에덴-동산이었고 첫 주인공은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땅과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으며(렘2:7)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고 하면서 하나님을 무시했고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으며 관리들은 하나님을 거역했고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좇아갔습니다(렘2:8). 거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두 가지 악을 행하였는데 그것은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버린 것과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렘2:13).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실 것인데 도둑이 붙들리면 수치를 당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집 곧 그들의 왕들과 지도자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라 경고하셨습니다(렘2:26). 자신의 성읍 수만큼 신들을 세워놓고는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뻔뻔하게 나오는 이스라엘을 향해 앗수르로 말미암아, 또한 이집트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렘2:28,35,36).
이들의 뻔뻔한 우상숭배와 거역, 음란과 행악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몰아내라고 한 음란하고 우상숭배하는 가나안 주민을 몰아내지 않고 세상과 벗하였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벗된 것은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고 이것이 곧 간음입니다(약4:4).
타협, 그것은 세상과 벗하도록 미혹하는 것이며 결국은 하나님을 대적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거하시면서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하신다고 하셨습니다(약4:5). 우리와의 하나됨을 열망하시는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과 벗하는 것은 교만으로부터 비롯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 땅과 성전, 그리고 자기 자신을 더럽히면 결국은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처음에는 달콤하고 친절하게 받아주는 것 같지만 세상과 벗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결국에는 손가락질하고 모욕합니다. 그리고 정죄하고 참소합니다. 우리가 세상과 벗하지 않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들은 늘 하나님을 찾게 되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기를 열망합니다. 가까이하고자 하는 열망은 하나님의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마음을 성결하게 하는 자를 하나님은 높이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을 거룩하게 지키는 자를 통해 하나님은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음란과 행악에 대해 분노하시지만 여전히 진실(에메트אֶמֶת)과 공의(미쉬파트מִִשְׁׁפָָט)와 정의(쩨덱צֶדֶק)로 돌라오라고 하십니다(렘4:1-2). 진실, 에메트אֶמֶת는 진리이며 공의(미쉬파트מִִשְׁׁפָָט)와 정의(쩨덱צֶדֶק)는 하나님의 킹덤의 보좌의 두 기초입니다(시89:14).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곧 예슈아입니다. 예슈아는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진리이시며 하나님의 킹덤을 공의(미쉬파트מִִשְׁׁפָָט)와 의(쩨덱צֶדֶק)로 세우시고 영원히 통치하실 것입니다.
광야의 여정에서 끝까지 붙드시고 결국은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와 은혜로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남은 자들과 함께 하셔서 요단 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안식으로, 천년왕국으로, 회복된 에덴-동산으로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입성하실 만왕의 왕 예슈아를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 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 중에 함께 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거하는 곳은 거룩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진영에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시키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말아야 했기에 하나님은 광야 여정 중에서 그들에게 거룩을 지킬 수 있는 것을 매우 상세하게 가르치셨을 뿐 아니라 반복 강조하여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럼에도 끈질기게 이스라엘 백성을 따라다니며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거스르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집트 즉,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세상이 주는 미끼를 끊지 못하는 마음, 세상이 주는 육신의 쾌락, 세상의 가치관과 세상의 입장, 하나님의 임재가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함께 하고 계심에도 눈에 보이는 우상을 만들어 놓아야 하는 어리석음, 더 나아가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들의 권위를 침범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끊임없이 거역하고 불순종하게 했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싸움과 다툼은 정욕, 육신의 욕구로부터 나온다 하였고(약4:1) 이것은 결국 하나님의 사랑을 버리고 세상을 선택하게 하여 하나님과 원수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약4:4). 한글 성경으로 ‘간음한 여인들아’라고 번역된 헬라어 원어는 ‘간음한 자들과 간음한 여자들’이라고 쓰여있어서 남성과 여성 모두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자들을 향해서만 말한 것이 아니라 간음을 하는 모든 자들을 향한 말로 간음은 곧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세상과 섞여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도 야고보는 세상과 벗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의 보호와 공급하심 아래 배운 것은 이집트(세상 정욕과 견고한 진)를 버리고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성막을 중심으로 배우면서 우상과 세상을 버리는 것을 훈련함으로써 약속의 땅에 들어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메시아닉 킹덤으로 들어가기 직전 하나님은 우리들이 거룩한 삶,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강도높게 훈련하십니다.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우상의 산당을 파쇄하고 악한 영이 거하지 못하도록 깨끗하게 하라고 명하십니다. 세상과 벗하면서 하나님의 킹덤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 나무는 찍어 버리라고 하셨습니다(눅13:7). 열매 맺지 않는 나무는 땅을 못쓰게 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마음의 부패함과 더러움에서 돌이키는 회개가 없으면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초대하신 그분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찍혀 불에 던지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하는 땅은 곧 ‘내가 거하는 땅’이므로 그 땅을 더럽히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민35:34).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중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성령님이 계시는 곳에 세상의 영이 있을 수 없습니다. 첫째 부활에 참여하기를 소망하고, 천년왕국 동안 부활의 자녀로서 왕과 제사장으로 이 땅을 다스리고 섬기길 원한다면 더욱 거룩하기를 힘쓰고 온 맘과 힘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 사랑하기를 내 몸같이 함으로 왕이신 예슈아를 맞이할 수 있길 소망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4:8)
출처: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적 관점으로 읽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Quoting from Reading the Torah Portion from the Hebrew Perspective in Jerusalem (Gen. Exod. Lev. Num. De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