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nd 마토트

מטות

지파들

파라샤 Numbers (민) 30:1-32:42

하프타라 Jeremiah (렘) 1:1-2:3

브리트 하다샤 Acts (행) 9:1-22 / Mark (막) 1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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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안과의 전쟁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권위와 질서 아래서 움직이길 원하셨습니다. 지도자들은 철저히 하나님의 음성을 따르고 또 백성들은 지도자들을 신뢰하며 그들의 말을 따르는 것이 질서입니다. 그러나 방자한 지도자들은 미디안 여인과 행음하면서 바알브올을 숭배함으로 하나님의 권위와 질서를 벗어났고 어리석은 백성들은 방자한 지도자를 따라갔습니다(민25:2-4). 그래서 40년 광야 여정의 끝부분에 모세가 조상들에게로 돌아가기 직전에 모세가 해야 할 마지막 과업으로(민31:2) 하나님은 미디안에게 원수를 갚으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은 미디안에게 원수를 갚으라고 명령하시면서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 갚음이라고 말씀하셨지만(민31:2) 모세는 이것이 여호와의 원수 갚음이라고 말합니다(민31:3). 하나님의 백성을 건드린 것이 곧 하나님을 건드린 것과 같고 그 백성의 원수는 곧 하나님의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에서 나와 아직은 연약한 상태였던 이스라엘을 뒤에서 공격했던 아말렉을 향해서도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를 건드렸다고 말씀하시며 아말렉과 대대로 싸울 것을 선포하시고 그들을 영원히 이 땅에서 지워버리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거룩한 하나님의 진영을 음행으로 더럽혀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거룩한 연합을 깨뜨린 미디안의 악함을 모세는 하나님을 위한 보복이라 말하며 전쟁을 준비합니다.

모세는 전쟁을 위해 각 지파에서 천 명씩을 선출합니다(민31:5). 선출된 천 명은 이스라엘 백만 명 중에서 뽑힌 자들이었습니다. 전쟁을 위해 특별하게 선출된 12,000명의 무장된 군인들 앞에는 제사장 비느하스가 앞장섰습니다. 모세는 비느하스에게 성소의 기구와 신호 나팔을 들려서 그들과 함께 전쟁에 보냈습니다(민31:6). 아람어 성경 탈굼에서는 비느하스가 우림과 둠밈이 있는 흉패를 매고 나갔고, 우림과 둠밈을 통해 전쟁터에서 군인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전략을 받았다고 기록했습니다(Targum Yonatan Numbers 31:6). 탈무드는 비느하스가 들고 간 성소의 기구가 법궤였다고 말하며, 이스라엘의 군인들은 전쟁터에서 여호와의 임재의 호위를 받으며 전쟁했다고 말합니다. 법궤가 이스라엘 군인들 앞에 섰을 때 모세는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민10:35)”라고 외쳤습니다. 법궤는 전쟁터에서 초자연적인 무기였습니다.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미디안의 모든 남자들은 완전히 전멸되었지만, 이스라엘의 군인들은 단 한 명도 다치거나 죽지 않았습니다(민31:49). 미디안과의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의 군인들은 초자연적인 승리를 경험합니다. 

또한 비느하스는 신호 나팔을 가지고 나갔는데 이것은 민수기 10장에서 하나님이 불라고 명하신 은 나팔로 그는 전쟁을 알리는 나팔을 불어 미디안과의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비느하스의 나팔은 마지막 날 메시아가 오실 때 불려지는 나팔 소리를 예표합니다.

31장의 미디안과의 전쟁은 종말 때의 전쟁을 예표합니다. 미디안은 모압 왕 발락과 함께 이스라엘을 없애 버리기 위해 저주하려고 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 계략이 실패하자 이스라엘을 음행하게 함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하도록 한 민족입니다. 마지막 때 사탄이 가진 계략이자 가장 치열한 전쟁은 음녀와의 전쟁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 때 음녀는 음란으로 세상을 완전히 장악해 버리고 사람들과 지도자들의 분별력을 상실시켜 버릴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목도하고 있습니다. 음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합리성이라는 명분 아래 세상과 타협하게 할 것이며 타협한 후에는 지켜줄 것이라고 미끼를 던져주며 자기 안으로 들어오도록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여러 우상, 곧 사탄의 권위 아래로 들어가 버리고 말 것입니다. 사탄은 음란과 경제적인 두려움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타협하게 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고 음란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만든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적그리스도와의 치열한 전쟁 가운데서 살아남은 남은 자가 약속의 땅 에덴-동산으로 입성하게 될 것입니다.

결산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전쟁에서 돌아온 자들에게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몸을 깨끗하게 하고 진영으로 돌아오도록 하십니다(민31:19). 그들이 죽음의 현장에 있으면서 시체들을 접촉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리품 가운데서 금, 은, 동, 철과 주석과 납 등과 같이 불을 지났을 때 견딜 만한 모든 물건은 불을 지나게 하며 불을 지나지 못하는 것은 물을 지나게 해서 깨끗하게 하도록 명령하십니다(민31:22-23). 하나님은 예슈아의 재림의 과정 가운데서도 치열한 전쟁 때문에 부정하게 된 것들을 깨끗하게 하신 뒤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부정을 처리하는 시간은 완전함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은혜의 시간입니다. 또한 전리품이 불과 물을 견디고 통과해야 하듯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우리들에게도 이와 같은 정화의 과정이 있을 것입니다.

이 닦아 놓은 기초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놓을 수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적이 불타면 손해를 당하리라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전3:11-15)

하나님은 모든 것을 결산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반드시 갚으시는 하나님입니다. 잘한 것은 잘한 대로 상 주시고, 잘못한 것은 반드시 벌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발락의 달콤한 부귀영화의 유혹에 결국 넘어가버린 발람은 당장 명성과 부를 얻은 듯했지만 결국 이스라엘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수13:22). 악인의 형통은 잠시뿐이며 그것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시37:7-9).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이 아무리 방해하려고 해도 절대 사탄의 뜻대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사탄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를 방해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권위와 질서를 떠나도록 하려 했지만 끝까지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 뜻은 이뤄지지 않았고 도리어 파괴자(발락)의 뜻을 따랐던 민족이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 시대의 끝에는 끊임없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를 방해하고 저주하며 끌어내리려 했던 아자젤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미디안에게 원수를 갚은 이스라엘 백성은 어마어마한 전리품을 취하게 됩니다. 전리품은 직접 전장에 나가 싸운 군인들도, 백성들도, 그리고 레위인도 나눠 가지게 됩니다. 전쟁할 때 최전방에 나가 싸우는 군인이 있는가 하면, 전쟁에 군인들을 내어준 가족들이 있고, 그들이 잘 싸울 수 있도록 군수 물품을 대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중보자들이 있습니다.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전쟁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큰 승리를 안겨주시면서 승리 후에 남겨진 전리품들을 싸움에 나갔던 사람들뿐 아니라 모든 회중이 함께 나눠 갖게 하심으로 승리를 함께 누리도록 하십니다.

전리품은 대적의 문을 취한 승리의 상징입니다. 전리품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모욕한 원수들이 차지하고 있던 것을 되찾아와서 하나님께로 귀속시키고 그 백성에게로 돌려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군대의 지휘관들과 천부장, 백부장들은 자기들 중에서 전쟁에 나갔던 자들이 단 한 사람도 죽거나 다치지 않은 것에 대해 그들의 생명을 대신하여 전쟁에서 승리하고 얻게 된 전리품들 가운데 보석들을 하나님께 헌물로 바칩니다(민31:49-50). 마지막 날에 메시아는 당신의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면서 즐거움을 더하게 하실 때에 추수의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으로 하나님 앞에서 기쁨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사9:3). 이사야 선지자는 이 기쁨이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신 미디안의 날과 같다고 비유하였습니다(사9:4). 미디안과의 전쟁에서의 승리는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남겨진 거룩하고 의로운 자들을 다치지 않게 보호하시며 원수를 완전히 멸하실 것을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날에 원수에게 빼앗겼던 것을 찾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며 영원한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예레미야 1장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살구나무와 북에서부터 기울어진 끓는 가마의 환상을 통해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신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사용해서 남유다의 죄악을 반드시 징계하시겠다라는 의지를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그 과정 가운데 예레미야가 직면해야 할 영적인 충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두려워하면 두려움을 당하게 되지만, 두려워하지 않으면 두려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렘1:17). 하나님이 우리의 입에 권세를 두었다 하더라도 우리가 두려워하면 두려워하는 것이 우리에게 임하게 됩니다. 이 원리는 믿음의 원리와 같습니다. 영적인 세계는 믿으면 내게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둠을 믿으면 어둠과 두려움이 오지만, 하나님을 믿으면 두려움이 아닌 담대함이 일어납니다. 사탄은 두려움과 걱정을 통해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마비시켜서 굳어지게 만들려고 합니다. 이것은 자유를 빼앗기는 것입니다.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욥3:25)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두려워하지 말 것을 당부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입술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과정에서 마주치게 될 영적인 저항감과 충돌, 그리고 받게 될 여러 공격들을 거뜬히 이겨 내도록 예레미야를 대적들 앞에서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렘1:18). 마지막 때의 영적 전쟁은 진리로 싸워 이기는 전쟁입니다. 이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두려워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견고한 성읍(이르 미브짜르עִיר מִִבְצָר)의 견고한(미브짜르מִִבְצָר)은 ‘강화됨, 무장됨, 요새, 견고한 진’이라는 뜻을, 성읍(이르עִיר)은 ‘깨어서 지키고 방어하는 성’을 뜻하며 쇠기둥(아무드 바르젤עַַּמוּד ברְזֶל)은 ‘위로 곧게 세워진 높은 쇠기둥’을 뜻합니다.

보라 내가 오늘 너를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지도자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1:18-19)

그러나 예레미야의 주변은 모두 예레미야의 적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열방의 왕들과 지도자들, 제사장들, 백성들에게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며 심판과 멸망의 예언을 선포하면서 회개를 촉구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예레미야를 위협하고 두렵게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미리 아신 하나님은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라고, 내가 너를 이미 강하게 하였다고 미리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예레미야를 구원하실 것이라 약속하십니다(렘1:19).

남유다의 멸망의 과정 가운데 살았고, 또 멸망을 지켜보았던 예레미야를 부르시며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을 향해서도 동일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치열한 전쟁 가운데 전리품을 얻어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과정에는 심판이 동시에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치열한 전쟁 가운데서 우리를 대적들 앞에서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시고 그들이 우리를 치겠으나 이기지 못하게 하시며 우리를 높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 서지 않으면 우리에게 쉽게 두려움이 오게 됩니다. 우리가 견고하게 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입장에 서는 것은 곧 믿음을 취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스탠스stance,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반면 우상 숭배는 나의 입장, 사람의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 좋은 것,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원하는 입장에 서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입장과 대치되며 결국은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게 합니다. 하나님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은 심판자, 혹은 입법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무엇인가 보고 알게 되었을 때 판단하지 말고 중보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 안에서 권면해야 합니다. 비방과 판단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어떤 영으로 말하고 행하는지가 중요합니다.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렘2:19)

이스라엘이 가장 수치를 경험했을 때는 바로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을 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교회가 잃어버리면 수치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악하다고 외치기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 회개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회에 있어서 가장 큰 고통은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음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을 두려워하면서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없는 것, 그 결과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지기 전에,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이 임하기 전에 회개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회복할 뿐 아니라 새로운 세대에게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르쳐야 할 때입니다.

예슈아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이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이 길에서 예슈아를 빛 가운데 만나고 눈이 멀었을 때 하나님은 아나니아를 통해 사울에게 가서 기도해 주라 말씀하십니다(행9:12). 그러나 아나니아는 하나님께 ‘그가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9:14)‘을 가졌다고 하며 사울에게 가기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울을 부르시면서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행9:15)’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나니아의 기도로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 사울은 힘을 얻은 후에 즉시 나가서 예슈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전파하기 시작합니다(행9:20). 그러나 듣는 사람들이 놀라면서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행9:21)’고 말하며 두려워합니다. 아나니아와 변화된 사울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은 모두 예슈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행9:14),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행9:21)’ 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구절은 초대교회 시대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곧 ‘예슈아’를 부르는 것과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그들은 ‘예슈아’ 또는 ‘예호슈아’ 즉 여호와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른 자들이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곧 예슈아를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 마지막 때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욜2:32)’고 말했습니다. 예슈아의 이름이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에 교회와 성도들을 구원할 것이며, 유대인들 가운데 남은 자들이 ‘바룩 하바 베쉠 아도나이’라고 외치며 예슈아를 맞이할 것입니다. 예슈아의 이름은 마지막 때 믿음으로 끝까지 남 겨진 자들에게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출처: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적 관점으로 읽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Quoting from Reading the Torah Portion from the Hebrew Perspective in Jerusalem (Gen. Exod. Lev. Num. De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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