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th 쉘라흐 레카

שְׁלַח לְךָ

너를 위해 보내라

파라샤 Numbers (민) 13:1-15:41

하프타라 Joshua (수) 2:1-24

브리트 하다샤 Hebrews (히) 3:7-4:11 / Matthew (마) 1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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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냄 받은 자들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 미리암과 아론의 영적 교만으로 모세를 대적한 사건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바란 광야에 진을 치게 됩니다. 이 백성을 데리고 에덴-동산의 회복을 시작하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으며 하나님은 이들이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먼저 약속의 땅을 살펴보도록 명하셨습니다. 모세는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선별하여 정탐을 보냈고 선별된 자들은 모두 지휘관들이었습니다. 지휘관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나씨נשׂיא는 ‘왕자, 우두머리, 대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파송된 자들은 모두 각 지파에서 가장 으뜸이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각 지파의 로쉬רֹאש, 머리였다고 말합니다. 머리였다는 것은 이들이 영향력이 많은 사람들이었음을 나타내 줍니다. 에스겔서에서는 왕이신 메시아를 지칭할 때 나씨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현대 히브리어에서 나씨는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입니다. 나씨는 단순한 지도자가 아닌 한 민족, 나라, 족속을 대표하는 왕의 권위를 가진 존재입니다. 12명의 정탐꾼으로 뽑힌 사람들은 모두 각 지파에서 왕적 권위를 가진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지도자들인만큼 그들의 이름에도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할 목적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삼무아(ַַַׁשּׁמוּע알려진 명성), 사밧(ָשׁפָט재판과 다스림), 갈렙(כֵּלֵב충성스러움, 개), 이갈(יגְאָל그가 속량하리라), 호세아(ַַהושע구원), 발디(פלְטִי나의 구출), 갓디엘(ַגדיֵאֵל하나님은 나의 행운), 갓디(גדי나의 행운), 암미엘(עמּיאֵל하나님의 백성), 스둘(סְתוּר숨겨진), 나비(נחְבּי비밀스럽게 감춰진), 그우엘(גאואֵל하나님의 높으심)

보냄 받은 자, 사도는 하나님이 주신 명령만을 이행할 사명이 있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지시하신 그 일만을 해내면 사도의 역할은 충분히 해낸 것입니다. 그런데 보냄 받은 자가 보낸 이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한다면 아무리 열심을 가지고 한들 그는 자신의 사명을 이행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도를 보내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킹덤을 전하고 확장하기 위해서입니다. 12명의 정탐꾼이 보내진 이유는 약속의 땅을 취하기 전 그 땅의 상태와 사는 민족들이 어떠한지를 알기 위해서였고, 예수님의 12사도가 보내진 이유는 영혼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여 병들고 약하고 귀신에게 고통당하는 자들을 자유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모두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땅에 하나님의 킹덤을 세우기 위해서 파송된 것이었습니다. 12정탐꾼들은 그 땅을 잘 살펴보고 오면 그것으로 자신들의 사명을 다한 것이고, 12사도들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에게로 찾아가서 예수님이 전하라고 하신 메시지를 전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도들을 보내실 때 명확한 비전과 사명을 전달하십니다.

오늘날 보냄 받은 자들은 전도자들과 선교사들입니다. 전도자들과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고 확장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주신 그 땅을 험담하지 말고 사랑하고 그 땅과 그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며 하나님이 지시하신 그 일을 해내면 그것으로 자신의 사명을 다한 충성된 사도가 될 것입니다.

사명을 다하지 못하게 하는 것 세 가지

각 지파에서 파송된 지도자들의 이름은 모두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들의 정체성은 모두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하고 나머지 10명의 지도자들은 자기 이름에 담긴 부르심의 소명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민13:31)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13:33)

하나님이 그들을 보내신 이유는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그들에게 보고 오라고 하신 것은 그 땅의 아름다움과 풍성함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군대로서의 정체성이 아닌 이집트의 노예의 눈을 가지고 바라본 그 땅은 그들이 차지하기에는 너무 강하고 두려운 곳이었습니다. 모세는 그들을 보내면서 ‘담대하라(민13:20)’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그 땅의 실과를 들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명령대로 담대하게 40일 동안 그 땅을 정탐하였고 그 땅의 아름다운 실과도 들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보기에도 그 땅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민13:27). 그들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입장에 서 있지 않았고 그들의 관점은 하나님의 관점과 달랐습니다. 그들은 그 땅 주민과 자신들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하찮게 여겼고 심지어는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고 그 땅 주민들이 하지도 않은 말로 추측하며 그 땅 주민의 입장을 대변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을 보지 않고 자기 자신들의 안전과 유익만 보았습니다. 이들의 관점은 온전하게 사람에게 맞춰져 있었습니다. 사람의 눈에 보기에 어떠한지, 생각이 어떠한지를 더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히3:10)

히브리서 기자는 광야에 있었던 이 세대를 향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마음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카르디아καρδία는 몸이나 영의 ‘중심’을 뜻합니다. 미혹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플라나오πλανάω는 ‘방황하다, 잘못된 길로 빠지다, 속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이 미혹된다는 것은 마음의 중심이 정함이 없고 우왕좌왕하며 방황하고 쉽게 잘못된 길로 빠지기도 하고 속기도 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들의 마음은 늘 우왕좌왕한 상태, 중심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중심에 정함이 없는 사람은 죄를 향해서도 쉽게 문을 열어줍니다.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히3:12)

그들의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히3:19)

하나님은 믿지 않는 것을 악한 마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파의 머리이자 지휘관인 그들과 그들을 따른 모든 이들은 불신이라는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입장에 서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신의 입장에 섰습니다. 결국 이들이 자신들의 이름에 부여된 사명뿐 아니라 하나님의 킹덤을 위해 지혜와 전략을 가지고 와서 백성들과 함께 약속의 땅을 차지해야 할 부르심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이유는

첫째, 사람의 관점

둘째, 마음의 중심에 정함이 없는 상태

셋째, 불신 때문이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사명을 다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주변에 악평을 전염병처럼 퍼트리게 했습니다. 악평이 전염병처럼 퍼지는 이유는 그것이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 합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대적하며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게 만듭니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자기만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방황하고 헷갈리게 만듭니다. 우리의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들이 말씀을 붙잡았다면 그들의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을 것 입니다. 열두 명의 정탐꾼은 똑같이 그 땅의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열 명의 정탐꾼은 사람의 관점으로 그 땅을 보며 악평하였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그 땅을 보며 올라가서 취하자고 하였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은 우리가 그들이 보기에 메뚜기 같다고 말했지만(민13:33)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이 우리의 먹이라고(민14:9) 말했습니다. 사람의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은 너무나도 극명하게 갈립니다. 무엇을 붙잡고 있느냐, 무엇을 따르고 있느냐, 무엇을 보고 있느냐에 따라 생명이냐, 죽음이냐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 삶의 태도, 성품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따르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있고 하나님의 입장에 서있는지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격동케 하는 불신의 세대와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가는 믿음의 세대

불신이 있는 자들은 마음이 교만합니다. 불신이 있는 이유는 믿지 않겠다고 스스로 결정했기 때문이며 자기의 기준과 자기의 말과 생각을 더 높이 두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불신 자체가 교만이며 죄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말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그 땅을 차지하러 가겠다고 하면서 그들은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곳으로(자의적 해석)’ 올라가겠다고 합니다(민14:40). 하나님이 이미 허락하지 않겠다고 하셨는데도 자기들이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때에 맞지 않는 자의적인 해석을 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신 곳으로 가자’고 합니다. 모세가 또 한 번 경고했음에도 그들은 ‘그래도(민14:44)’ 올라갑니다. 

불신은 사람의 마음을 고집스럽게 만듭니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자기 기준에 편한대로 해석하고(편집적 해석) 결국은 자기 뜻대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똑같은 것을 보고도 불신이 있는 자들은 전혀 다른 해석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악한 지도자들의 편집적 해석은 많은 백성들을 불순종과 거역, 죽음의 길로 이끌어 갑니다.

마지막 때에 (예슈아를 예표하는) 여호수아가 약속의 땅으로, 에덴-동산으로 마지막 세대를 이끌고 들어가기 전에 두 종류의 세대가 격돌할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격동케 하고 시험하는 세대이며, 또 하나는 하나님과 함께 안식으로 들어가는 세대입니다(히4:9-10).

하나님의 말씀에 권위를 두지 않고 자신들의 판단과 경험에 더 권위를 두면서 믿지 않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증명해 보라는 식의 태도를 가진 세대가 하나님을 격동케 하는 세대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세대를 향해 하나님을 시험하는 세대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히3:9-10). 마치 ‘하나님 당신이 옳다면 증명해 보세요’라는 식의 태도로 마음을 완고하게 하는 세대입니다. 완고란 ‘퇴적물이 쌓이다가 굳어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딱딱하게 하여 하나님을 자극해서 화나게 하는 것은 사탄이 하나님을 격동케 하려는 것입니다. 격동케 한다는 것은 몹시 화가 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세대는 적극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고의로 믿지 않음으로 자기뿐 아니라 주변까지 믿지 않게 만듭니다. 자기가 다른 사람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을 잘 이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말하는 사람을 비합리적이라고 하면서 핍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안식으로 들어가는 세대는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는 세대입니다(히3:14). 즉,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 세대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가는 세대가 가진 것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믿지 않는 세대는 안식으로 들어가지 못하며(히3:19) 믿는 세대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안식에 참여하게 됩니다(히3:19, 4:3). 열 명의 불신이 가득한 지도자들의 말을 따른 세대들은 결국 모두 광야에서 죽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의 관점에 따라 악평하였고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였습니다. 그들은 믿지 않음으로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영원한 안식, 새 창조에 속한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발악합니다. 사탄은 이 안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참여란 파트너가 되는 것이고 함께 공유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가지신 것을 우리도 함께 누리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그리스도가 하시는 일에 나도 참여하고 그리스도의 영적 권위를 나도 가지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영원한 기업을 나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역과 직분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권위와 신성에도 참여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모든 것을 가지게 되고 누리게 되고 참여하게 되는 것을 안식에 들어간다고 표현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진정한 안식이 남아 있습니다(히4:9).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누구든지 순종하지 아니하는 완고한 자들의 불신과 불순종의 본에 빠지지 말고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권면합니다(히4:11). 안식에 들어가길 힘쓰는 것 중 하나가 우리에게 주신 부르심의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에게 주어진 독특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 각 사람의 이름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부르심을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은 계명과 사명, 무엇을 해야 할지와 어떻게 해야 할지를 허락하십니다. 주어진 계명에 따라 각자의 사명을 다하는 날, 우리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 받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하게 될 것이며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부르심의 계명과 사명을 다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불신으로 하나님을 시험하고 격동케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을 끝까지 따르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부르심을 성취하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세대가 되길 소망합니다.

출처: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적 관점으로 읽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Quoting from Reading the Torah Portion from the Hebrew Perspective in Jerusalem (Gen. Exod. Lev. Num. De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