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th 후카트

חקת

율례

파라샤 Numbers (민) 19:1-22:1

하프타라 Judges (삿) 11:1-33

브리트 하다샤 John(요) 3:1-21 / John(요)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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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카트

거듭된 반역으로 많은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군대인 이스라엘의 진영은 계속되는 여러 반역으로 인한 심판으로 초토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반복적인 거역과 불신, 불순종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출이집트 세대를 죽음으로 다루셨습니다. 한 번의 반역이 지나갈 때마다 죽음이라는 심판의 대가가 치러졌지만 인자와 자비가 무궁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결케 하는 특별 속죄제의 규례들을 가르치심으로 다시 그들을 일으키셨습니다. 출이집트 세대는 죽었지만 광야 세대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을 계속 진행해 가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심판의 과정으로 인해 이스라엘 진영은 사망의 기운이 짙어졌고 많은 사람들의 죽음으로 시체에 닿게 된 사람들도 늘어남에 따라 진영 전체가 거의 다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체에 닿음으로 부정하게 된 사람들과 또 그로 인해 부정해진 진영을 정결하게 하는 법의 율례(후카트 하토라חֻקַּּת הַּתורָה)를 허락하십니다.

토라תּורָה는 법을 의미하고 호크חֹק는 율례를 의미하는데 법은 포괄적인 상위의 개념이고 율례는 그 법 아래서 지켜야 할 세부 법령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토라의 법 가운데서 지켜야 할 하나의 율례는 부정을 씻는 물을 만드는 붉은 암송아지의 재였습니다. 하나님은 온전하여 흠이 없고 멍에를 메지 않아서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붉은 암송아지를 준비하도록 하십니다. ‘흠이 없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뭄מוּם은 ‘얼룩지거나 더렵혀지거나 손상되지 않아 흠과 결점이 없는’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건강하고 온전한 붉은 암송아지의 조건으로 털 하나라도 붉지 않은 색의 털이 있으면 온전하여 흠이 없는 붉은 암송아지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아직 멍에를 메지 않은’의 멍에(올עֹֹל)는 ‘심하게 다뤄지다, 함부로 취급받다’라는 뜻의 알랄עָלל의 수동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입니다. 이것은 붉은 암송아지의 조건으로 사탄이나 어둠이나 세상에 붙들려서 휘둘려지고 농락당하고 끌려다니지 않았던 존재가 붉은 암송아지로써 자격 조건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사람과 세상의 멍에에 메여 그 영향력 아래 있지 않았고 전혀 어둠에 붙들려 보지 않았으며 감염되지 않은 흠이 없고 온전한 붉은 암송아지는 예슈아를 예표합니다. 이 암송아지를 데려다가 진영 밖으로 끌고 가서 제사장 엘르아살이 잡게 합니다. 엘르아살은 그 송아지의 피를 손가락에 찍어 회막 앞을 향하여 일곱 번 뿌립니다. 하나님은 여러번의 반역, 특별히 레위 자손이었던 고라의 반역으로 더럽혀진 회막을 온전하여 흠이 없는 붉은 암송아지의 피로 덮으십니다. 그리고 암송아지를 엘르아살 앞에서 가죽, 고기, 피와 똥까지 불사르는데 불사를 때 백향목과 우슬초, 홍색 실을 가져다가 암송아지를 사르는 불 가운데 던져서 함께 태우게 합니다. 소를 잡고 태우는 과정에 참여했던 제사장과 불사른 자는 물로 몸을 씻고 진영으로 가고 다른 정결한 자가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영 밖 깨끗한 곳에 두어 ‘부정을 씻는 물’을 위해 간직해 두도록 합니다.

부정을 씻는 물은 시체에 접촉했거나 시체가 있었던 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뿌려졌습니다. 하나님은 시체에 접촉한 사람은 7일 동안 부정하다고 하셨고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부정을 씻는 물을 뿌려 정결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또 시체가 있었던 곳에 있었던 자들도 부정하기 때문에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부정을 씻는 물을 뿌려 정결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이 율례를 따르지 않으면 그들은 모두 백성 가운데 끊어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시체에 접촉한 자나 시체와 같이 있었던 자들은 모두 사망에 접촉되었던 자들이며 이런 자들이 정결하지 않은 상태로 있는 것은 여호와의 성막과 성소를 더럽히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부정하고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회중 가운데서 끊어질 것이니라 (민19:20)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생명과 거룩으로 충만한 상태를 유지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들이고 이들이 곧 성막이고 성소이기에 하나님은 백성들이 부정하게 되는 것을 성막과 성소가 부정하게 되는 것과 동일시하십니다. 그래서 부정을 씻는 물의 율례를 주심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망의 영향력에서 깨끗하게 씻겨지고 생명과 거룩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부정을 씻는 물에 사용된 흠이 없고 멍에를 메지 않은 온전한 붉은 암송아지, 그리고 그 붉은 암송아지가 태워질 때 사용된 백향목(굳건함), 우슬초(치유), 그리고 홍색실(피와 구원)은 모두 예슈아를 예표합니다. 암송아지가 태워질 때 진영 밖으로 나가 태워졌듯이 흠이 없이 온전하신 예슈아는 십자가를 지고 성문 밖으로 나가 희생제물로 드려지셨습니다. 암송아지가 완전히 태워져 남겨진 재는 거룩하게 남아 부정한 자들을 정결하게 해 줍니다. 십자가에서 피와 물을 모두 쏟으신 예슈아는 사망에 접촉하여 부정하게 된 모든 이들에게 생명으로 나아갈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붉은 암송아지의 재로 만들어진 부정을 씻는 물은 구별된 물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우리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별해 주고 정결하게 하는 물입니다. 죽음에 닿았던 사람을 정결하게 하고 구별하게 해주듯이 예슈아의 피는 우리를 사망으로부터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구원합니다. 붉은 암송아지의 규례는 죽음 가운데서 소망을 갖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붉은 암송아지의 잿물은 다시 오실 메시아가 마지막 날에 이스라엘의 사방으로부터 당신의 백성들을 불러 모으시고 그들을 모든 더러운 것과 우상숭배에서 정결하게 하는 맑은 물이 될 것입니다(겔36:24-25).

반복되는 거역과 불신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정결하게 하셔서 구원하시겠다는 의지를 꺾을 수 없습니다.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인자와 사랑은 확실한 구원을 보장합니다.

우물물아 솟아나라

반역과 심판의 반복적인 과정 중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을 향해 계속 전진하고 있었습니다. 에돔의 거절로 요단 동편으로 길을 우회해서 돌아가야 했기에 약속의 땅에서 멀어지는 듯했지만 사실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약속의 땅을 향하여 전진하고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불평과 반역 없이 하나님의 샘물을 공급받습니다. 길로 인해 마음을 상하게 하는 에돔 땅을 우회하는 여정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브엘בֵּאֵר이라는 지역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풍성한 물을 공급해 주십니다. 브엘בֵּאֵר은 ‘우물’이라는 뜻으로 원래 이곳에 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지도자들과 백성들 중 귀인들을 통해 이 우물이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이것을 노래로 불렀습니다.

우물물아 솟아나라 너희는 그것을 노래하라

이 우물은 지휘관들이 팠고 백성의 귀인들이 규와 지팡이로 판 것이로다(민21:17-18)

이전까지 백성의 지도자들과 영향력이 있는 귀인들은 악평을 백성 가운데 퍼트려서 선동하거나 모세와 아론에게 거역함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길을 우회하고 있는 이 시점의 지도자들과 귀인들은 우물을 직접 파면서 적극적으로 상황을 개척하며 백성들을 인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광야의 여정 가운데서 그만큼 이들이 다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이들의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대처에 하나님도 풍성한 물로 그들을 위로하십니다.

우리의 죄의 본성은 늘 하나님을 거역하지만 하나님은 인내로 우리를 다루어 주십니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않고 끝까지 다뤄 주시는 하나님 안에 있을 때 결국 생명의 물이 터져서 우리를 노래하게 할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을 따를 때 마침내 터져 나오는 생명의 물이 우리 자신을 회복시키고 주변으로 흘러서 닿는 곳마다 새롭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에덴의 강이 회복될 것입니다.

구원의 길

언제나 하나님은 구원의 길을 준비하십니다. 우리가 죽음이나 시체로 인해 더러워지든, 불평이나 원망으로 인해 죄를 짓든, 하나님은 부정을 씻는 물을 준비하시어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고, 놋뱀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우리의 부정을 깨끗하게 하는 물이 되시고(붉은 암송아지의 잿물), 그 반석이 되시며(하셀라), 높이 들리신(놋뱀) 예슈아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준비하신 구원의 길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모든 싸인과 기적이 구원을 위한 것이었고,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의 여정은 예슈아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7)

하나님의 심판을 보고도 왜 회중들이 깨닫지 못하고 계속 같은 죄를 반복하는가에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모습이고 지금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법의 율례를 허락하시고, 심판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반역과 심판, 죽음으로 가득찬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여정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치열하고 격렬한 다툼과 시험으로 가득차 있지만 그 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오래 참으심으로 그들을 구원하셨고, 그 구원의 예표인 예슈아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의 여정 가운데서 이스라엘처럼 열방도 하나님을 대적하겠지만 예슈아를 통해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고전10:6)

하나님이 인간을 향한 모든 구원의 여정을 스스로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우리의 삶에 치열함과 전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가 우리의 삶에도 있고,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이 우리에게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정의 시간은 우리를 탈진하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더 큰 승리를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불을 통해 태워 버리실 때 우리를 없애려고 하신 것이 아니고 주님을 바라봄으로 우리 안에 더러운 것들, 거룩하지 않은 것을 뿌리 뽑고 완전한 구원으로 나아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교정의 시간은 우리를 소진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더 거룩해짐으로써 강건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보고 믿으며 주님이 하라고 한 그 일을 할 때 승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출처: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적 관점으로 읽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Quoting from Reading the Torah Portion from the Hebrew Perspective in Jerusalem (Gen. Exod. Lev. Num. De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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