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st 피느하스

פִּינְחָס

비느하스

파라샤 Numbers (민) 25:10-29:40

하프타라 1Kings (왕상) 18:46-19:21

브리트 하다샤 Revelation (계) 19:11-21 / John (요) 2: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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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거룩한 열정, 킨아 קִנאָה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여정의 막바지에 요단 강 건너편 약속의 땅의 산지가 눈 앞에 바라보이는 모압 평지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발람은 발락의 청탁을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치밀하게 간섭하여 주심으로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인식할 수도 없는 순간에 그들을 저주하려던 악한 점술가 발람의 입술까지 하나님의 거룩한 영으로 개입하셔서 이스라엘을 축복하도록 바꾸어 놓으신 것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열정적인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일순간 잠시 하나님의 영의 개입으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본 발람이었지만 결국 그의 탐욕은 물고 들어온 청탁에 말려들어 발락과 악한 모의를 통해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는데 성공합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불타는 사랑을 이용합니다. 그가 사용한 방법은 사랑에 대한 배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미련하고 방종한 자들은 그들의 작전에 걸려들어 음행과 우상숭배로 어리석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합니다.

하나님의 질투(킨아קִנְאָה)와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머물고 수많은 백성들이 전염병으로 죽게 됩니다. 질투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킨아קִנְאָה는 동사 카나קַנָא에서 파생된 명사형태로 카나קַנָא는 ‘질투하다’는 뜻이고 킨아קִנְאָה는 ‘질투, 열정’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하나님의 질투로 인한 진노가 전염병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하던 그때 음란에 눈이 멀어 상황파악이 안되던 유흥에 빠진 시므온 지파의 족장 시므리(지므리זמְרִי, 음악에 뛰어난, 악기 연주를 잘하는)는 미디안의 귄위있는 우두머리의 딸 고스비(코즈비כזְִּבי, 거짓말에 뛰어난, 속이기를 잘하는)에 유혹되어 수만 명이 전염병으로 죽어가고 있고 온 회중은 회막 문에 모여 울고 있는 중에도 보란듯이 대담하게 그녀를 데리고 천장이 높고 넓은 대형 천막(하쿠바הַקֻבָָּה)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때, 울고 있던 회중 가운데서 이를 본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불타는 질투심(킨아קִנְאָה)을 가지고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대형 천막(하쿠바הַקֻבָָּה)으로 따라 들어가 이미 포개어 있는 두 사람을 찔러 그 여인의 배까지 꿰뚫어 죽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비느하스의 사랑과 열정은 그 순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가지셨던 열정과 하나되어 한 지파의 족장으로서 영향력을 가진 시므리의 더러운 배신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사랑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그냥 둘 수 없었고 또한 이 배신으로 다시 사망의 기운이 이스라엘 진영을 덮기 시작하자 그는 이 치욕스러운 상황이 종료되게 하기 위해 과감히 창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질투로 비느하스는 우상숭배와 음행의 추악함을 종식시키고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도 거둬지게 합니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민25:11)

하나님은 비느하스의 행동이 하나님의 킨아(질투심, 열정)로 행한 것이라 하셨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돌이켜져서 이스라엘 백성이 소멸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것이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민25:13). 하나님의 진노로 이스라엘 백성이 소멸되지 않고 그들을 속죄하여 하나님 앞에 있을 수 있도록 한 비느하스의 행동은 제사장이라는 사명에 충실한 것이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재자로서 중재자는 양쪽 모두에 속해있으면서 두 관계가 잘 유지될 수 있도록 힘쓰는 자입니다. 비느하스는 죄악에 대한 분노로만 행한 것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있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도록 제사장으로서의 직임을 감당한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비느하스에게 평화의 언약을 주시며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약속하십니다(민25:12-13, 말2:4-5).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이 이삭과 야곱에게 이어진 것처럼 레위와 맺으신 언약은 고핫과 아므람과 아론과 엘르아살과 비스하스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은 홍수 이후 노아와 영원한 언약을 맺으셨고, 아브라함과 야곱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셨으며, 비느하스와 맺은 영원한 제사장 언약처럼 다윗에게는 영원한 왕좌를 허락하시는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비느하스로 인해 레위 지파는 영원한 제사장의 직분을 확증받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다윗은 영원한 왕권을 약속 받았습니다. 예슈아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고, 하나님의 킹덤에서 그 왕권을 영원히 이어가실 것입니다.

비느하스의 질투(킨아)는 엘리야의 열심(킨아)으로 엘리야의 하나님을 향한 열심(킨아)은 세례 요한에게로, 세례 요한은 엘리야의 영으로 일평생 예슈아를 위한 길을 예비하였습니다. 예슈아의 열심(킨아)은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열심으로써 아버지의 성전을 사모하는 그 질투(킨아)가 그분을 삼켰습니다. 그분은 다시 오셔서 하나님의 성전과 킹덤을 영원히 세울 것입니다.

군대의 재정렬과 나흘라נחלה, 기업

비느하스의 사건 이후 이스라엘 군대는 재정렬에 들어갑니다.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광야를 지나는 동안 이들이 다른 민족들로부터의 공격을 쳐내고, 약속의 땅에 이미 살고 있는 악한 족속들을 척결해낼 수 있도록 성막 완공 이후 하나님은 먼저 이스라엘의 군대를 정렬시키시기 위해 그들을 계수하도록 하셨습니다(민1:2). 그러나 거듭된 반역, 권위에 대한 불순종, 불평, 이집트를 향한 사랑과 옛 습관들로 인해 많은 백성이 광야에서 죽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이집트에 매여있는 세대는 죽고 새로운 세대가 광야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거쳐야 할 불의 시험이 지나갔고 이제 곧 약속한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하나님은 다시 군대를 정렬하라고 명하십니다(민26:2).

첫 번째 인구조사와 두 번째 인구조사의 목적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계수의 목적은 싸움에 나갈 자, 군대를 편성하여 광야 길을 가기 위한 계수였습니다. 그러나 두번째 계수의 목적에는 이 명수대로 약속한 땅에 들어가 그 땅을 나누어주어 기업을 삼게 하기 위한 목적이 포함되었습니다(민26:53). 기업이라는 히브리어는 나흘라נחלה입니다. 나흘라נחלה의 동사형인 나할נחל은 ‘흘러가다’는 뜻입니다. 아버지의 축복과 소유가 자녀에게 이어지고 또 다음 세대에게 흘러가게 하여 받아 누리게 하는 것이 나흘라נחלה, ‘기업, 유업’입니다. 하나님은 두 번째 계수를 통해 이제 곧 들어갈 땅의 기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수대로 가지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기업을 얻게 할 때 두 가지 원칙을 따르도록 명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제비를 뽑도록 하셨습니다(민26:55). 제비 뽑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선택에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분배의 결정은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수가 많으면 많이, 적으면 적게 주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평등의 원리입니다. 더 많이 맡은 자에게 많이 주고, 더 적게 맡은 자에게는 적게 주시며, 많이 맡은 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시고 적게 맡은 자에게는 적은 것을 요구하십니다(눅12:48). 맡겨진 양과 역할에 따라 해야 할 것을 요청하시고, 또 그것에 합당하게 주실 것을 채워주

시는 하나님입니다. 얼만큼 맡길지는 하나님의 주권에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권한이 아닙니다. 더 많이 준 사람과 비교하면서 왜 내 것은 적습니까라고 말할 권리는 우리에게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하나님의 영역이며 그것에 대적하고 불평하는 것은 죄입니다. 나에게 맡겨주신 양과 역할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에 충실한 것이 곧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더 많이 주신 자를 존중하는 것이 그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업과 축복은 세대에서 세대로 강물같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축복이 막히길 원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아버지는 좋은 것들로 상주시길 원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가장 좋은 것을 자녀들에게 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 아버지의 마음으로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의 축복과 신앙의 유업이 흘러갈 수 있도록 통로가 되는 아비 세대가 되어야 합니다.

군대의 재정렬과 더불어 새로운 지도자로 여호수아가 뽑힙니다. 여호수아는 예슈아와 같은 어근을 가진 이름으로 예슈아가 ‘구원’이라는 뜻이라면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집트에서 이제 막 나온 연약한 이스라엘 백성을 비겁하게 뒤에서 공격한 아말렉과의 첫 번째 전쟁을 승리로 이꾼 장군이었고, 언제나 모세의 곁에서 수종을 들면서 모세가 시나이 산으로 올라갈 때도 함께 했으며, 모세가 회막을 떠나더라도 회막을 떠나지 않고 홀로 하나님의 임재 앞에 머물며 그분의 얼굴을 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여호수아를 ‘그 안에 영이 있는 자’라고 인정해주셨습니다.

ִאִיׁש אֲשֶר־רוחַ ּבוֹ

이쉬 아쉐르-루아흐 보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민27:18)

하나님은 모세에게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여 모세의 존귀와 목자로서의 정체성과 사명을 그에게 위임하도록 명령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대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 앞에서 그에게 안수하고 위탁하여 그를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새로운 세대의 지도자로 세웁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모세의 존귀를 여호수아에게 돌리라고 말씀하십니다(민27:20).

존귀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호드הוֹד는 ‘광채, 위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나님을 뵙고 내려왔을 때 그 얼굴에서 빛이 났는데 유대 전승에서는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모세의 존귀를 주라고 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이 모세의 얼굴을 빛나게 하신 그 영광과 존귀함을 여호수아에게도 허락하여 모든 회중들이 그의 영적 권위 앞에 복종하게 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모세의 존귀함, 영광의 광채가 여호수아에게로 전달되면서 모세의 영적 권위가 여호수아에게 계승되었습니다.

모세(건져냄)를 통해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 내신 하나님이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실 때에는 여호수아(구원)를 통해 완전한 구원을 성취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모세와 여호수아의 이름은 이스라엘이 걸어가고 있는 길을 예언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름은 한 사람의 정체성이자 곧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은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계획으로 이끌어 주시며, 하나님이 이끄실 때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을 취하러 들어가는 역사의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는 시점에 군대의 정렬과 함께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의 시즌과 타이밍이 다가오기 전부터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눈에 ‘그 안에 영이 있는 자 ִאִיׁשאֲשֶר־רוחַ ּבו’라고 인정받을 만큼 성실한 과거를 쌓아갔습니다. 한 시대가 마감하면서 영도력을 가진 새 목자를 필요로 할 때 우리가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있는 자’,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자’라고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역사의 남은 과업을 이어받는 지도자가 되길, 그래서 약속의 땅을 취하며 새 시대를 열어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킹덤을 리허설하는 시간, 모아딤 מוֹעֲדִים

출애굽 세대가 모두 죽고, 광야 세대를 새롭게 하나님께 계수하여 올려드린 후 모세의 뒤를 이을 한 사람, 하나님의 영이 머물러 있는 여호수아를 다음 세대의 지도자로 세우신 뒤 하나님이 다시 한번 가르쳐 주신 것은 하나님이 정한 시간과 그 정한 시간에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기 위하여 드리는 예물(코르반), 그리고 하나님이 받을 양식과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 올려드리는 향기로운 화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매일 아침과 저녁에 드리는 상번제, 일주일 중 안식일, 한 달 중 초하루의 시간을 향기로운 제사와 함께 하나님께 올려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일년 중 7번의 약속된 절기(모아딤מועֲדִים)의 시간마다 성회로 하나님 앞에 모여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누리라고 하셨습니다.

절기 때마다 하나님께 드릴 음식과 제물과 예물에 대한 세부적인 지침들을 통해서 우리는 첫째로, 이 모든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드려지셨음을 체험하게 됩니다. 둘째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양식으로 누림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잔치에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정한 시간, 약속된 절기(모아딤מועֲדִים)에 어떤 다른 일에 매여서 일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일하지 말라고 하심은 ‘이날은 모든 것을 하나님 쪽에서 다 하시는 날이니 이 날에는 너희 사람의 노력과 수고를 내려 놓으라’는 의미입니다. 이 날에는 우리가 무엇을 더한다고 더해지지도 않고 우리가 무엇을 덜한다고 덜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거룩한 집회(미크라-코데쉬מקְרָא־קדֶש)로 모이라고 하십니다. 성회로 번역된 미크라-코데쉬מקְרָא־קדֶש의 미크라מקְרָא는 ‘다함께 불러모아서 읽으며 리허설(예행연습)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정한 시간인 약속된 절기(모아딤)에 우리 쪽에서 해야 할 일은 모두 소집하여 다 모여서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읽으며 그 구원에 우리가 동참하는 예행연습(리허설)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가장 먼저 시간을 구별하신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 입성 직전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시간 사이클 안에 들어와 살아갈 것을 당부하십니다. 왜냐하면 시간을 다스리는 자가 물질과 땅을 다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공간이나 물질에 더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공간이나 물질을 더 많이 소유하면 안정감을 느끼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잘 다스리고 소유하지 못하면 공간과 물질도 우리에게 들어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 유한한 시간을 창조하시고 유한한 시간 속에 역사의 시작과 끝을 정해 두셨습니다. 시작과 끝을 정해 두신 이유는 정해진 시간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공간과 물질을 잘 다스려 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공간과 물질을 잘 다스리기 위해 어떤 특별한 시간을 정하시고 그 시간을 통해 지금까지 되어 왔던 일에 대해 기억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여 준비함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물질과 기회를 더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바로 이 시간이 모아딤מוֹעֲדִים, 절기입니다. 일 년 중 7번의 절기는 과거에 하나님이 행하신 일과 앞으로 행하실 일을 기억하고 현재의 삶에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모아딤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여 시세를 알게 하고 시세를 아는 자는 결국 땅의 것을 취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전에 하나님은 먼저 하나님이 정해두신 시간의 사이클과 그 시간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가르쳐 주십니다. 사람은 물질과 공간을 채우는데 시간을 소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이 가장 거룩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의 가치관도 시간을 더 소중히 여깁니다. 수천 년간 나라 없이 방황한 그들을 지켜준 것은 땅이 아니라 사실 샤밭과 모아딤이라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시간을 통해 시세를 알았고 결국 자기들이 머물러 있는 낯선 땅에서 물권을 누리고 다스렸습니다. 진정한 가치는 공간과 물질이 아니라 시간에 있습니다. 쉬운 예로 죽기 직전의 사람은 자기의 재산을 늘리거나 더 많이 소유하는데 집착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에 더 가치를 둡니다. 영적인 사람은 물건이 쌓이는 것에 관심이 없고 성스러운 순간들, 거룩한 순간들을 어떻게 지내느냐에 더 가치를 둡니다.

예레미야 8:7에서 ‘공중의 학은 자신의 정한 시기를(모아딤מועֲדִים) 알고, 산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도 정확한 시간에(에트עֵת: 시간의 흐름) 돌아오는데 하나님의 백성은 무지하다’고 말합니다. 잇사갈 자손 중에 200명의 우두머리는 시세를 잘 아는 것으로 인해 인정을 받아 형제들을 통솔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대상12:32). 시간을 알고 때를 분별하는 사람은 지혜롭게 행동합니다.

천년왕국에 들어가기 직전의 시간, 회복된 에덴-동산의 중앙으로 행군하며 들어가기 직전의 시간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무엇을 소유할 것인가가 아니라 이 시간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더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때가 악합니다. 그래서 세월,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 바울은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지혜 있는 자 같이 행동하라고 하면서 세월을 아끼라고 권면하였습니다(엡5:15-16). 그리고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시간의 사용에 대해 권고한 바울은 그 다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사람 사이의 관계, 질서에 대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은 시간, 예배, 그리고 지도자를 세우심으로 질서를 세우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인자가 다시 오셔서 다스리는 메시아 왕국이 오기 직전인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 사이클 안으로, 샤밭으로, 초하루의 시간으로, 여호와의 절기인 모아딤의 시간들을 회복하고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으로 들어가 예배와 질서와 영적 권위를 세워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시간 사이클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결국 영원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한 시간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영원히, 하나님이 누리고 계시는 것을 우리도 함께 누리게 되는 시간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영원을 누리는 시간을 샤밭과 초하루와 절기들의 사이클에 담아 두시고 매주, 매달, 매년 일곱 번의 시간의 사이클을 통해 우리가 미리 누리고 영원이라는 시간에 들어갈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리허설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제한된 시간인 이 땅에 속해 있지만 매주, 매달, 매년 일곱 번의 모아딤을 통해 영원의 시간을 미리 맛보고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하늘과 땅의 연합을 누리고 에덴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시간 사이클 안에서 모든 것이 이뤄지도록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것은, 창조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영원을 맛보는 것입니다.

출처: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적 관점으로 읽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Quoting from Reading the Torah Portion from the Hebrew Perspective in Jerusalem (Gen. Exod. Lev. Num. De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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